A Lesson In Storytelling #5
※ 영화 <갤버스턴>(2018)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당신은 작가가 되었습니다. 영화 작가도 좋고 드라마 작가도 좋습니다. 마감 기한이 다가왔어요. 어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많은 작가가 자연스럽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취합니다. 자기 이야기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 자기 이야기는 자신 주변의 실제 이야기를 쓰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실제 내 가족 이야기, 내 어린 시절 이야기, 혹은 옆집에 사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 말이죠.
자기 이야기를 쓰면 디테일이 훌륭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설정들을 가져다 쓰기 때문이죠. 그래서 생생해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딘가에 진짜 저런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되죠. 현실감이 넘쳐요. 그러나 현실감이 넘치면 그만큼 극적인 느낌을 손해 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내 주변 가족 이야기를 쓰는데 갑자기 미국 대통령이나 킹콩이 나올 수는 없으니까요.
반면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평소 관심 있었던 주제나 자신의 흥미, 혹은 생각해봤더니 뭔가 재밌을 것 같다, 하는 특정한 분야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장르 영화나 드라마가 여기에 속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전쟁, 탐정물, 초능력자가 등장할 수도 있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쓰면 컨셉이 좋습니다. 일단 단박에 흥미를 끌 수 있고요. 뭔가 그럴듯한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죠. 장르적으로 이미 검증된 문법이 있어서 이야기를 대했을 때 관객의 거부감이 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극적인 만큼 현실감이 떨어져요. 여기에 얼마나 디테일을 부여할 수 있느냐가 좋은 장르 이야기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죠.
그럼 오늘 이야기할 <갤버스턴>은 어느 쪽의 영화일까요? 맞습니다. 컨셉으로 출발한 영화예요. 그런데 출발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수렁에 흠뻑 빠져버린 케이스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갤버스턴>은 컨셉만 존재하고 디테일을 붙이는 데는 실패한 대표적인 예시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컨셉은 범죄 누아르입니다. 누아르는 프랑스어로 검다(black)는 뜻인데요. 범죄 누아르는 어두운 색감, 어두운 분위기, 어두운 주인공이 등장해서 마피아, 갱 등의 폭력조직에 연루되는 범죄영화를 말합니다. 범죄 누아르의 핵심은 주인공이 안티 히어로(Antihero)라는 것일 텐데요. 그러니까 범죄 누아르는 정의를 부르짖는 영웅이 주인공이 아니라, 선도 악도 아니거나 혹은 악에 이미 물들어 있는 반영웅이 그 자신보다 더 큰 악과 상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단 이야기는 로이(벤 포스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조직에 속해있는 살인청부업자입니다. 악인이죠? 빼박 범죄 누아르네요. 자 이제 로이가 더 큰 악인을 만나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그려지겠군요. 보통 누아르는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불행한 운명이 예견되어 있고 주인공은 운명을 향해 몰락해요. 아니나 다를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로이는 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불행한 운명이 예견되어 있네요. 그는 의사의 설명을 듣던 와중에 뛰쳐나와버려요.
한편 보스의 여자는 로이에게 흥미를 느끼고 추파를 던집니다. 그런데 그걸 알아챈 보스가 함정을 파네요. 로이를 죽일 생각이에요. 보스가 더 큰 악인이었군요. 보스는 로이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주고, 무장하지 않은 상태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총도 안 들고 거길 또 갑니다. 습격을 받아요. 하지만 살아남죠. 로이는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흠, 디테일이 조금 아쉽지만 뭐 컨셉이 좋으니 일단 넘어갑시다.
왜냐면 이제부터 더 아쉬워지거든요. 로이는 그곳에서 의자에 앉아 묶여있는 젊은 백인 여성을 발견합니다. 로이는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를 데리고 나와요. 그녀의 이름은 록키(엘르 패닝). 콜걸입니다. 보스는 로이를 죽이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 테고 그를 계속 쫓아올 것이 뻔한데, 로이는 록키를 데리고 함께 도망칩니다. 록키는 처음 보는 남자와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동행하죠.
차로 함께 도망치던 중, 록키는 잠시 차를 세워달라고 하더니 자신의 집으로 갑니다. 집에서 새아빠를 총으로 쏴 죽이고 아직 한참 어린 여동생 티파니를 데리고 나오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과연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싶네요. 로이는 화를 내지만 또 록키와 티파니를 잘 데리고 다닙니다. 세 사람은 모텔에 들어가 방 두 개를 나눠 씁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랑 어울리기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어쩐지 급해 보이지 않아요. 도망자 신세인 줄 알았는데요. 모텔에서 며칠을 잘 지냅니다. 지금 조직이 그를 죽이기 위해 쫓아오고 있을 텐데 말이죠. 거기서도 몇 가지 사건이 벌어지는데요. 그 사건들은 로이가 빨리 도망쳐야 할 이유를 만들어요. 그런데 도망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이는 록키와 근사한 저녁을 먹으러 가기까지 하죠. 거기서 술도 마시고 춤도 춥니다. 이쯤 되면 디테일은 그냥 신경 쓰지 않는 영화가 됩니다.
역시나 저녁을 먹다가 조직에 잡힙니다. 잡혀야 하니 저녁을 먹은 것으로 보일 지경이에요. 거기서 록키는 죽고요, 로이는 많이 맞네요. 록키라는 인물은 새아빠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한 끔찍한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로이와 달리 힘도 없고 돈도 없어 숙박비를 구하기 위해 몸을 팔기도 하죠. 그런데도 어딘가 낙천적인 구석이 있어서 관객이 충분히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인물이었어요. 잘만 만들었으면 말이죠.
그러나 록키는 너무 얄팍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디테일이 없고 인물의 컨셉만 있어서 그렇죠. 젊은 백인 여성, 콜걸, 잠깐의 행복을 느끼지만 허무하게 죽는다, 그녀의 죽음은 로이를 각성하게 한다. 뭐 이런 정도의 컨셉이요. 록키는 설정된 컨셉을 충실히 따르다 장기말처럼 버려집니다. 그녀의 죽음은 영화를 위해 소모되었다는 느낌이 강해요.
한편 보스의 여자는 로이가 탈출할 수 있게 돕습니다. 이것 역시 로이가 각본상 탈출해야 하므로 탈출시켰다는 의심이 드네요. 탈출해서 차를 뺏어 타는데요. 우연히 차 사고가 나요. 디테일은 실종되었네요. 로이는 병원으로 가고 거기서 폐에 이상이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아, 이때까지 곧 죽을 것처럼 막살아왔는데 모양이 좀 빠지네요. 시한부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다 착각이었다니요.
좋은 이야기는 인물이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이것이 디테일이에요. 디테일이 훌륭한 이야기는 다른 모든 선택지를 막아놓고 인물을 한 곳으로 몰죠. <갤버스턴>은 디테일을 쌓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영화입니다.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 영화예요. 컨셉으로 밀어붙이려는 영화죠.
컨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컨셉만 있는 것은 나쁩니다. 컨셉으로 출발한 이야기는 디테일이 약점이 될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하고, 디테일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컨셉을 활용해 더 극적이고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컨셉과 디테일은 이야기를 만들 때 한 번쯤 고려해야 할 상호보완적인 조건이에요.
물론 <갤버스턴>은 컨셉에 몰빵한 만큼 그만의 장점을 가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벤 포스터는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 보여줬던, 거칠고 투박하면서 앞날을 생각하지 않는 인물을 훌륭하게 연기하고, 엘르 패닝은 다소 작위적인 연기에도 이제는 다코타 패닝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 그만의 아우라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게다가 <갤버스턴>은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로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적 파문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순간 영화는 다른 차원으로 훌쩍 넘어가 버리죠. 누아르로 까맣게 무장된 앞부분의 범죄 스토리보다 짧지만 깊은 뒷부분의 드라마가 더 기억에 남아요. 그러나 여러 가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을 너무 많이 놓쳐버린 <갤버스턴>은 여전히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