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5

편 가르기

by 디로

나는 생각보단 친구가 많고, 생각보단 많이 없는데, 이유는 생각보단 사람을 좋아하고, 생각보단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보단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고, 또 생각보단 관심이 없다. 다시 그렇기에 생각보단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 생각보단 싫어한다.


그런데 내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특히 새로운 사람들과) 이런 일이 많이 생긴다.


예컨대 내가 '일본을 좋아한다'라고 하면 나를 매국노라고 비난하거나, 반대로 나에게 애국자인 것을 증명(?)하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 한편 내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주권을 침탈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라고 하면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또 내가 '동성애는 주장이 아닌 현상이기에 찬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라고 하면 엄지를 치켜세우지만, '나는 동성애 축제에 가고 싶지 않다'라고 얘기하면 미개인처럼 쳐다보고는 한다. 내가 '문신은 개인의 자유'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문신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이라고 말하면 연신 의문을 뿜어낸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여성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의 남아있는 숙제'라고 하면 개념남(?)이라며 환호를 하다가, 내가 다시 '성매매가 불법이어야 하는 마땅한 근거를 못 찾겠다'라고 얘기하면 벌레 보듯 바라보기도 하고, '경찰력을 강화해 범죄의 빠른 검거를 도모해야 한다'라고 하면 훌륭한 법조인이 될 거라고 했다가, '범죄자(피고인)의 인권은 타협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 또 저주를 퍼붓는다.


그 누구도 나에게 '왜?'냐고 묻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설명을 해줘도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편 가르기'에 미친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도 내 주장이나 근거를 궁금해하지 않고,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내가 '같은 편인지 아닌지'에만 관심이 있다. 내가 같은 편이라면 무슨 말을 해도 박수를 치고, 그렇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해도 돌을 던진다.


그러니 '대화다운 대화' 같은 건 이 나라에서는 꿈만 같은 일이다. 심지어 위와 같은 말들이 논쟁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마치 내가 '자동차를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가볍게 이슈를 던진다. 술자리 농담처럼 말하고는 자기들끼리 깔깔거릴 때도 있다.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게 아니라 '사상검증'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연스레 '옳고 그름'에 대한 말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같은 편이면 무엇이든 옳고,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서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하는 것도 꿈만 같은 일이다.

약간의 상식과 조그마한 양심을 기대하는 것조차 크나큰 사치다.


이제야 대화 시리즈를 연재한 이유가 나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그것이 왜 옳고 왜 그른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길 바란다. 또한 그 설명에 반박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다른 편이어도 자비를 베풀길 바라고, 같은 편이어도 '논증'에 있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길 소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수적이다.

대화란 공화국의 시민에게 당연히 필요한 자질이고 지성인으로서의 의무이며 합리적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을 구분 짓는 기준이다.


추억팔이 좀 해보자면 내 마지막 대화는 대학을 졸업하며 끝이 났던 것 같다. 그때는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쩔 때는 강의실을 빌려 2시간을 토론하고도 시간이 부족해 밤새 술을 마시고 해가 뜰 무렵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논쟁을 벌이며 이놈 저놈 욕도 해봤지만 술 한 잔 기울일 때는 누구나 평등했고, 다음날이 되면 (다른 편이어도) 다시 술잔을 기울였었다.


22살엔 이런 적이 있었다. 내 기준에서는 별로 어렵지도 않은 설명이었는데, 그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이 내 말을 이해를 못 하는 것이었다. 한 3번 정도 설명하다가 포기하고 화를 씩씩 냈었다. 그러다 뒤풀이를 갔는데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3번이나 얘기했는데 아무도 못 알아들으면 네가 빡대가리인거지"

나는 이 말을 듣고 엄청나게 웃었다. 그래, 남들이 바보도 아니고 내가 천재인 것도 아닌데 아무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내가 멍청한 거지. 그리고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기뻐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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