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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pectum Sep 08. 2021

2021.09.08

방향이 없으나 찾고자 하는 노력에 대하여

 지금 쓰는 글이 처음 쓰는 글은 아니다. 하지만 쓰기 시작하기 가장 힘들었던 글이다. 글을 쓰고 싶은 느낌은 분명 내 안에 잔존해있었으나 실재하는지도 모를 검열들에 대하여 대항하고자 하였으나 가만히 있는 게 안온하고 편했으므로 결국 몇백 번을 봐왔던 천장을 향해 눕기를 몇 년째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심술궂게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하는, 방향은 없으나 어떻게든 새어나가는 생각들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다시 글을 써보기로 한다.


 김영하 작가는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많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 방에 앉아서 글을 쓰려고 하는 순간 저 말에 모든 언어를 빼앗겨버렸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떠한 실수도 없는 현명한 자신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나에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점멸하는 커서와 모니터를 제외한 모든 공간에 새겨진 내가 저질러버렸던 수많은 아픔과 어리 석음들이 무거웠다. 글을 쓰겠다고 달려드는 내가 너무 같잖았다. 네가 뭐라고? 그러게,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도 되나? 글을 쓴다고 나댈만한 자격이나 되나? 나를 쉬게 하고 먹게 하는 공간이었지만, 자괴감이 잔뜩 배어버린 침대와 책상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오히려 내가 없는 근처의 카페로 무작정 나왔고 이렇게 방향 없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잠들기 전까지 곽재식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쓰고 싶었던 생각들이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이 글을 쓰는 것조차 어렵다. 써내려 갈 때마다 나를 미워하게 만든 이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했던 말들도 떠오른다. 그런 말들과 장면들에 대해서도 '뭐 어쩌라고'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움받을 용기라고 해야 하나. 곧잘 시도 쓰고 글도 여기저기에 넣어보았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는 기억이 너무 낯설다. 많은 일들을 그르친 내가 부끄러워서 버겁다. 그래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이라도 잘해볼까 싶다. 기대는 희박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새로 사놓은 노트들의 첫 장에 무언가를 썼다가 그 노트들을 다시는 펼쳐보고 싶지 않게 되었다. 어제 다시 펼쳐본 곳은 시작이기를 바란다. 여기에 끄적였던 문장들을 다시 시작한 기념으로 적어본다. 


- 새로운 노트에 대한 열망은 지나온 상처에 대한 회피이다.

- 내가 써본 첫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기.

- 물티슈는 어째서인지 뽑을 때 두-세장이 한 번에 나올 때가 있다. 몇 년 전의 나였다면 한 장을 골라내고 나머지를 다시 불티 슈의 본체에 넣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 물티슈 뭉텅이들을 무신경하게 잡아 햇빛에 녹아내린 필기구를 닦는다. 이럴 때면 새삼스레 내가 돈을 조금은 여유 있게 버는 건가 싶다.



다음 글에는 내가 처음 써본 소설에 대한 경험에 대한 기록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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