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ispectum
Sep 25. 2023
2023.09.25
일과 조직이 주는 좌절에 대한 극복, 맞춤법에 대한 단상.
1.
하루에 8시간은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일기를 쓸 때, 일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부서 이동을 원하였으나 좌절된 뒤에
조직개편을 할 것이라 전달받았다.
이번 변화를 통해 나는 지금 파트에서 나와서
팀장님의 직속 및 관리를 받게 된다는 말,
앞으로 하게 될 일을 지금 팀에서 계속하게 된다면
경력에 긍정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을
상관에게서 듣는 경험은
정말이지 불안과 불쾌함을 함께 느끼게 했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서운해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 높은 연차, 더 높은 직급에서
지금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돌이킬 수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직장이 내 마음에 완전히 들 수는 없다.
여기는 배움을 주는 학교가 아니다.
개인도 소중하지만 조직이 그래도 더 중요한 곳이며,
회사는 복지시설이 아니지 않은가.
본질적으로 냉혹할 수밖에 없다.
그저 이 경험들이 내가 몰랐던 나의 부족한 면을 돌출시킬 것이며
이 시간과 성실하게 싸워내면 성장한다는 믿음을 가질 수밖에...
그래도 다행이다.
나에게는 삶이 회사보다 더 중요하고 커다랗다는 대전제가
연필의 심처럼 박혀있으니까.
그래서
견딜 수 있다.
2.
맞춤법을 지킬 필요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보통 틀린 단어 철자를 쓴 이들을 조롱하는 다수와
'뜻만 전달되면 되는데 하여튼 사소한 거라도 잡으려고 난리다.'
'그러는 너는 맞춤법 안 틀리냐?'
라며 항변 내지는 짜증, 분노를 표출하는 발화자,
이를 옹호하는 또 다른 다수가 뒤엉켜서 싸우는 일이 빈번하다.
이런 과정에서 마지막은 '결국 문해력이 문제다.' 정도로만
결론을 내리고서 다른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
같은 싸움을 역할만 바꿔서 반복하는 게 요즘인가 싶다.
맞춤법은 지켜야 할까?
지키지 않으면 안 될까?
내가 성급하게 내려본 하루간 고민의 결론은 이렇다.
'틀릴 수는 있지만 지키려고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맞춤법은 규칙이자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규칙의 면은 춤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왈츠를 추는 무대에 파트너와 같이 나와서 춤을 추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상대방은 왈츠를 위한 자세, 스텝을 밟으려고 하는데
나는 살사를 추면 어떻게 될까.
곡은 어찌어찌 연주는 된다.
춤은 왈츠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둘은 춤을 춘 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로가 배려했다고는 하기 힘들다.
맞춤법을 지킨다는 건 규칙, 장르를 맞춘다는 의미이다.
'저는 우리가 서로 말하기 위한 규칙을 지키고자 합니다.'는
존중과 상호 동의를 지키는 자세를 전달한다.
그릇의 면은 음식에 비유해 보자.
파스타를 담는데 머그컵에 담으면 어떨까?
더 나아가서 쓰레기통에 담는다면
이게 먹어도 되는 건지에 대한 의문부터 생긴다.
맞춤법은 말하는 화자, 문장을 쓴 작자에 대한 신뢰도를 가늠하게 해주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
맞춤법에 맞지 않는 문장은
내용에 대한 신뢰도와 청자, 독자들의 개방성을
꽤나 많이 훼손시킨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맞지 않는 용기에 받으면
그곳에 대한 평가가 안 좋게 내리게 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춤법은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고치거나
최대한 노력하는 것을 통해
규칙과 그릇의 태도를 지킬 수 있다.
문제는 틀린 점에 대해서 고칠 생각이 없다거나
'난 원래 이렇게 쓰니까 받아들여라.' 같은 답은
어떠한 플러스도 얻을 수 없을 거라 본다.
같이 맞춤법을 지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 빼고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자신이 생각하는 어떠한 선이 각자 있으며, 이를 넘으면 가차 없이 무식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