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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pectum Oct 08. 2023

들어가면서

나는 학위에 어떻게 들어오고 나왔는가.

[학위]

명사  

어떤 부문의 학문을 전문적으로 익히고 공부하여 일정한 수준에 오른 사람에게 대학에서 주는 자격. 학사, 석사, 박사 따위가 있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아이고, 내가 살다 보니까 우리 아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게 되네!"


 연인이자 예비신부와 함께 부모님을 찾아뵈었을 때 엄마는 기쁨과 세월이 얼마나 많이 지나갔는가에 대한 허망함을 담아 말했다. 기시감이 잔뜩 느껴지는 말.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클리셰를 직접 듣는 느낌은 새로웠다. 앞으로 잘 살기를 바란다는 말을 듣고 돌아온 뒤에 나는 자연스럽게 과거를 반추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은 기록은 어릴 적 내 모습이 담긴 앨범이나 구석에 쌓아놓은 짐들이 아닌 학위논문이었다. 나의 20대 중후반이 고스란히 담겨 굳혀진 성과. 빠르게 넘겨본 후 나의 논문이 게재된 사이트에 들어가 수치들을 빠르게 훑어본다. 


[1755 Accesses, 4 Citations, 7 Altmetric]


 성공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꽤나 큰 곳에 실렸기에 실패라고 하기도 애매한 내 기록. 아래로 스크롤하면서 수록된 데이터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점 하나, 선 하나에 숨어있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학사를 지나 대학원에 처음 들어설 때, 섬광처럼 지나간 설렘과 잔상으로 오래 남아 나를 괴롭히던 불안감, 초조함, 열패감과 피곤함, 결과를 얻었을 때의 뿌듯함을 지나 벽을 마주했을 때의 좌절감까지. 문득 엄마의 말에서 기시감을 왜 느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입학식에 오면서 말했다. 


"아이고, 내가 살다 보니까 아들 덕분에 이런 곳을 와보네!"





 학위를 가져가는 동안 참 많이도 울고 웃었었다. 초중고 때의 기억은 가면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데 대학원에서의 일들은 나이를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나에게 대학원을 추천하냐고 물을 때가 있다. 나는 답할 수가 없다. 그저 내가 겪은 이야기정도를 해줄 수 있을 뿐이다. 

 E-나라지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박사학위 취득차 추이가 10년 단위로 70%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22년 기준으로 17,760여 명에 달한다고 하니 진짜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석사 대비 박사의 증가 비중이 굉장히 높다고 하니 말 그대로 고학 위 자체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R&D 예산은 33여 년 만에 16%가량 삭감되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가중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학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어떻게, 왜 학위를 하게 되었을까? 아니 그전에 난 왜 학위를 했었는가? 논문이 무엇이길래 진통제를 먹고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매달려 왔었는가? 그리고 난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했었는지에 대해서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지 쌓인 논문과 기억들을 다시 여기에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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