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라 생각했다.

Song of the sea

by 김배용


바다가 바람으로 10대의 나를 불렀다. 내 나이 중년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만 바람 부는 바다에 도착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낚싯대를 놓지 않는 10대의 내 뒷모습이 보였다. 바람이 어떤 방향에서 얼마나 강하게 불어오는 건 의미가 없었다. 왼손으로 쥔 낚싯대 릴, 낚싯대 아래 끝부분을 허리춤에 받치고, 적당한 힘으로 당겨 약간의 입질을 놓치지 않을 기세로 바다를 향해 서있었다. 내 눈과 귀 역시 바다로만 향했다. 지금 다시 보니 어렸지만 흡사 군인이 나라를 지키는 모습과 유사하지 않았을까. 3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바람이 가진 향과 내 주변을 스치는 바람소리. 난 어쩌다가 그리고 왜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고 또 좋아했을까?


중학생이 되기 전부터 바다와 낚시를 좋아했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낚시를 가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짐을 쌌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마음만 들떠있으면 금방 모든 게 준비가 되었다. 그렇게 매주, 몇 년을 바다로 다녔다. 첫 직장을 다니면서도 취미생활은 바다로 몰린다. 수영, 다이빙 그리고 해루질. 거리와 낮과 밤의 경계 없이 나는 기회가 되면 바다에 있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바다 때문에 첫 직장을 그만둔다. 중요하고 큰 변화였다.




취미가 아닌 직장으로써 바다 근처에서 일을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좋은 조건의 첫 직장보다 바다를 선택했다. 일자리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요구하는 급여 조건도 관대했고, 근무 조건도 깐깐하지 않았다. 바다와 관련되고 내 관심과 일치하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가족의 반대에도 직장을 옮기게 된다.


그렇게 바다를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1년을 보내고 있을 때. 다시 큰 결정을 하게 된다.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근무하는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나는 분명 기회라 생각했다. 모든 조건이 그 기회를 잡으라고 재촉했다.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서 다양하게 고민해도 결과는 늘 같았다. '놓치면 난 뭘 해도 후회한다.' 그렇게 머리와 가슴에 굵고 깊은 글자가 새겨졌다. 아니 내가 스스로 새겼다. 아주 굵고 깊게. 이번에도 가족의 반대가 있었지만 해외로 직장을 옮기게 된다.


그렇게 나는 가족과 이별을 한다.




앞으로 내가 일을 하면서 한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나라. 노르웨이. 내 이야기를 브런치를 통해 글과 사진으로 남기려고 한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당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게 많다. 지금은 결과를 알지만 당시에는 몰랐을 내가 기록한 다이어리를 참고한다.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는 나의 이야기, 깨우침과 반성.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새로운 기회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