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 System™ — 움직이는 마케팅 아키텍처의 시작
우리는 앞서 '마케팅 6단 하이라키'라는 지도를 그렸다.
지도를 갖는 건 중요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지도는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이 지도를 펴놓고 고민하는 사이에도 시장은 바뀌고 있다. 경쟁사는 가격을 낮추고, 알고리즘은 로직을 바꾸며, AI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고객은 어제와는 다른 이슈를 던진다. 이게 지금 마케터들이 서 있는 현실이다.
2025년 Gartner CMO Spend Survey에 따르면, 마케팅 예산은 매출의 7.7%에서 2년째 멈춰 있다. 코로나 직후 10%를 넘던 시절과 비교하면, 예산은 줄어든 채 회복되지 않았다.
반면 채널은 계속 늘어난다.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쇼츠, 릴스, 스레드, 레딧, 디스코드, 팟캐스트, 뉴스레터… 브랜드에서 고객 한 명을 데려오는 비용(CAC)도 크게 뛰었다. 2025년 현재도 이 구조적 비용 압박은 여전하다.
즉, 예산은 정체. 채널은 폭증. 광고비는 상승.
이 상황에서 지도만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전술이 아니라, 이 모든 변화를 견딜 수 있는 운영 구조, 즉 시스템이다.
그래서 요즘 여기저기에서 구조, 맥락,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보이는 거다. 지금의 마케팅 환경이 전술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바꾸는 사고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술을 나열하는 단계를 지나, 시스템을 설계하는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나는 이 새로운 접근을 MARC System™이라 부르기로 했다.
Marketing Architecture for Response & Cycle
이름 그대로다. 반응하고 순환하는 마케팅 구조.
기존에 우리가 배워온 프레임워크들—4P/8P, STP, 퍼널, 플라이휠, 이중 루프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이것들이 따로 논다는 점이다. 2025년 현실—예산 축소, 채널 폭증, 추적 제한, AI—을 동시에 다루기엔 각각이 너무 흩어져 있다.
그래서 MARC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라기보다, 지금의 환경에 맞게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의 구조로 재배치한 것에 가깝다. 쉽게 말해, '어디에 무엇을 둘 것인가'를 다시 설계한 아키텍처다.
이 구조는 1개의 기반(INFRA)을 토대로 한 5개의 층(Layer)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의 역할을 간단히 보자.
CORE — 브랜드의 본질.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Purpose),
시장 어디에 서 있는가(Position).
쉽게 흔들리지 않는 축.
VALUE — 고객에게 건네는 제안.
누구(Target)에게
어떤 가치로(Proposition) 설득할 것인가.
FLOW — 그 가치가 고객에게 흘러가는 경로.
어떤 채널에서 만나고,
어떤 여정을 거치고,
어디서 신뢰를 얻는가.
ACTION — 실제 실행.
광고, 콘텐츠, 캠페인, 프로모션.
매일매일 손이 가는 일들.
FEEDBACK — 실행 결과를 보고 배우는 것.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됐는지.
그리고 그걸 다음에 어떻게 반영/반복할 것인지.
INFRA — 이 모든 걸 지탱하는 기반.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고,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
기존 프레임워크들은 이 구조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정렬되는 것이다.
구조만 있으면 그냥 그림이다. MARC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쓸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스템을 움직이는 세 가지 원리를 먼저 짚어보려 한다.
AI와 데이터 파이프라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 “누가, 무엇을, 언제 결정하는가?”
MARC의 인프라는 기술이 아니라 합의의 구조다.
데이터와 거버넌스가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조직이 흐른다.
• Intelligence: 데이터, 분석, 자동화
• Governance: 의사결정 규칙, 역할 분담, 운영 리듬
기술을 연결하는 것보다 사람을 연결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거버넌스가 인프라에 포함된다.
과거의 마케팅은 단순했다. 브랜드가 말하면 고객이 듣고 반응했다. 지금은 다르다.
고객은 브랜드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대신 제3자의 말을 믿는다.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 커뮤니티, 리뷰, 댓글.
그래서 FLOW 안에는 Trust Gate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말 그대로 신뢰를 얻는 관문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가치를 만들어도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고객에게 닿지 않는다.
고객이 "남들은 뭐라고 해?"를 확인하는 지점, 그게 Trust Gate다.
이 시스템은 한 가지 속도가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한다.
• Fast Loop — 빠른 순환. 전술의 속도
ACTION과 FEEDBACK 사이를 매일, 매주 돈다. 광고 소재/썸네일 커버를 바꾸고, 입찰가를 조정하고, 반응을 보고 또 바꾼다. 실무자와 AI가 움직이는 영역이다.
• Slow Loop — 느린 순환. 전략의 속도
FEEDBACK에서 CORE로 올라가는 흐름이다. 분기마다, 혹은 1년에 한 번. "우리가 말하는 가치가 여전히 맞는가?", "포지션을 바꿔야 하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리더·경영진이 책임지는 영역이다.
전술은 빠르게 바꾸되, 본질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이 이중 순환(Dual-Loop)이 작동할 때, 브랜드는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변화에 적응한다.
MARC System을 이해하면 이제 마케터의 역할은 달라진다.
캠페인을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 판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사람. 굳이 표현하자면, 마케팅 아키텍트에 가까워진다.
다음 편부터는 각 층을 하나씩 뜯어보려 한다. CORE부터 시작해 VALUE, FLOW, ACTION, FEEDBACK까지. 그 안에서 실제 브랜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MARC의 렌즈로 읽어볼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다.
지도는 방향을 알려준다.
하지만 속도와 순환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걸 설계하는 것.
그 시점에서 MARC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