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의의 문턱
예술의 본질은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을 느끼는가’다.
창작자가 사람이든 AI든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마주한 순간, 내 안에서 어떤 울림이 일어나고 어떤 기억이 흔들리느냐,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술은 완성된다.
샤갈의 울림과 AI의 한계
샤갈의 그림이 주는 감동은 단순한 색채의 조합을 넘어서 있다. 푸른빛 속에는 전쟁의 상처가, 기묘한 인물의 시선 속에는 사랑과 상실의 기억이 숨어 있다. 그는 자신의 시대와 삶을 담아냈고, 보는 이들은 그 이야기를 각자의 삶과 겹쳐 읽는다. 그래서 샤갈의 그림은 ‘그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나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하지만 나는 호기심에 AI 툴에 ‘샤갈’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이미지를 생성해 본 적이 있다. 결과물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하늘을 나는 연인들, 몽환적인 소와 인간의 형상, 자유롭게 부유하는 인물들과 환상적인 색채의 조화까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안에는 작가의 숨결도, 그 시대의 체온도 없었다. 감탄은 잠깐 스쳐갔을 뿐, 마음속에 오래 남는 울림은 없었다. 결국 형식만 완벽하게 흉내 낸 결과물은 진짜 감동을 낳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MoMA와 Refik Anadol의 집단적 감동
그렇다고 해서 AI 예술이 언제나 공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22년, 뉴욕 MoMA에서 전시된 Refik Anadol의 「Unsupervised — Machine Hallucinations」는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MoMA의 200년 아카이브, 13만 점이 넘는 작품 데이터를 머신러닝으로 학습시켜, AI가 ‘꿈꾸는 미술사’를 시각화했다.
이 전시는 단일 전시로는 이례적으로 약 300만 명이 다녀가며 화제가 되었다. 비평가들의 평론은 엇갈렸지만, 관람객들의 피드백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명상적이고 거의 최면에 가까운 체험 속에서 많은 이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디지털 태피스트리에 경외와 경이로움을 느꼈다. 일부는 기술적으론 인상적이지만 예술적 울림은 부족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각자의 내면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단순한 AI 예술, 멀티미디어 아트로서 색채와 규모만 인상적인 전시라 여겼다. 그러나 작품의 스토리와 맥락을 알고 다시 보니 감동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MoMA가 이 작품을 영구 소장하기로 한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기술 기반 예술이 제도권에서 인정받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https://refikanadol.com/works/unsupervised/
협업으로 확장된 창의성과 윤리의 과제
이 프로젝트는 Refik Anadol 혼자 만든 결과물이 아니었다. MoMA 큐레이터, 아티스트, 글로벌 IT/테크 기업, NFT/블록체인 플랫폼 등 다양한 주체가 모여 완성한 ‘예술+테크 드림팀’의 산물이었다. 단순히 기계가 이미지를 출력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기술이 함께 만든 집단 창의의 무대였던 셈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혁신은 있으나 창의성은 부족하다”라고 했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방대한 데이터를 예술로 전환하는 비전, 다양한 전문가와 협업을 총괄하는 기획,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통합한 과정 자체가 이미 새로운 창의다. 중요한 건 미학적이거나 어떤 도구를 썼느냐가 아니라, 기존에 없던 관점을 얼마나 현실로 구현했느냐에 있다. 다만 이런 흐름이 확산될수록 원작자 보호와 데이터 윤리에 대한 고민도 반드시 함께 다뤄져야 한다.
일상 속으로 확장되는 예술 경험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술 경험은 더 이상 미술관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미지와 영상, 디자인을 접하며 크고 작은 감동을 경험한다. 스마트폰 필터에 머무른 찰나의 순간, SNS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상, 브랜드가 펼치는 창의적인 캠페인까지 모두 예술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 흐름은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세계로도 이어진다. 삼성은 Art Basel과 협업해 ‘Art Store’를 통해 세계적 작품을 가정의 스크린으로 불러왔고, 발렌시아가는 AI가 생성한 클럽 이미지를 활용해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만들었다. 구찌는 Apple Vision Pro와의 협업을 통해 사용자가 가상공간 속에서 3D 렌더링 된 제품과 상호작용하도록 했는데, 이는 예술적 감각과 브랜드 경험이 한 무대에서 맞닿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작품이든 브랜드든, 의미를 결정짓는 건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감정이다. 브랜드들이 기술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이유 역시 단 하나다. 사람들의 감정을 흔드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새로운 정의의 문턱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 느낀 울림처럼, Refik Anadol의 전시에서 경험한 전율처럼, 브랜드 역시 소비자의 감정 속에서만 완성된다.
따라서 질문은 “AI 예술도 진짜 예술인가?”가 아니다. 예술의 본질은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그 앞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이야기를 다시 만나는가에 있다.
예술이든 브랜드든, 가치를 완성하는 건 창작자가 아니라 경험하는 사람이다. 창작자가 아무리 의도를 담아도, 받아들이는 이의 해석과 감정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정의를 새롭게 써 내려가야 한다. 어쩌면 중요한 건 AI가 예술가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 앞에서 내가 어떤 나 자신을 새롭게 만나고 있는가 아닐까.
결국 예술이든 브랜드든, 그 가치는 창작자의 손끝이 아니라 설계된 경험 속에서 감동하는 나로부터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