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에드몽 크로스 <별이 있는 풍경> 1905-1908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판화인가?” 그림을 보자마자 든 생각을 입 밖으로 무심코 뱉었다. 그 한 번의 중얼거림이 그렇게나 적막을 깨트릴지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가로세로 32센티미터 24센티미터. 눈으로 보기에 적당히 들어오는 크기의 그림이다.
Title: Landscape with Stars
Artist: Henri-Edmond Cross (Henri-Edmond Delacroix) (French, Douai 1856–1910 Saint-Clair)
Date: ca. 1905–1908
Medium: Watercolor on white wove paper
음악이 울리는 화면의 휴대폰을 꺼내 '앙리 에드몽 크로스'를 검색한다. 프랑스 신인상주의 화가인 앙리 에드몽 크로스는 프랑스 남부 해안과 풍경을 주로 그렸다. 1890년대 중반부터 신인상파 기법을 개발했다. 이후 야수파 스타일을 예고한 화가이다. 본명은 ‘앙리 에드몽 들라크루아’이다. 파리 살롱 참가를 위해 유명한 화가였던 ‘외젠 들라크루아’와 오인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어식 축약 이름 ‘앙리 크로스’로 변경했다. 그 뒤, 1886년 동시대 프랑스 화가 ‘앙리 크로’와 이름이 비슷해 지금에 알려진 ‘앙리 에드몽 크로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림에 금세 빠져든 탓에 주위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관에 방문 시에 가장 중요하게 챙기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기도 하다. 소음이 묵음이 되는 시간. pause. 세상이 멈출 때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적막이 흐르고 나만의 음악이 흐른다. 그림을 가만히 본 뒤 좋아하는 것을 먼저 찾는다. ‘밤이 허락된 시간.’ 신생아를 키울 때 밤이 허락된 시간 속에서 멀리서 살았다. 밤은 나에게 무슨 의미였었나 생각해 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쓸모없는 것을 소비하는 시간이기도 하였고, 때론 외로움을 더 외롭게 탐닉하며 주체 못 할 눈물을 흘리던 시간이기도 했다. 할 수 있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밤은 외출이 제법 위험한 시간이자 나만의 공간에서 오랫동안 방해받지 않고 호사를 누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선사한다.
판화인가? 라는 생각은 그림의 하단 부분이었다. 별빛이 무수히 반짝이는 이유는 별빛 외에 다른 광선이 존재하지 않을 때 더욱 빛난다. 캠핑을 떠난 수많은 밤에서 경험해 알고 있다. 어두울수록 빛났다. 방해받지 않을수록 반짝임을 뽐내어 주었다. 고요할수록 별들은 존재감을 마음에 각인시켰다. ‘그래서였구나.’ 별빛이 빛나기 위해서는 아래에서 조용히 그림자로 존재하여 기다릴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아이가 별처럼 계속 빛나기 위해서는 조용히 별빛을 돕는 어두운 나도 존재해야 했다. 서글프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처음이니까 오해했다.
파랑과 노랑
별은 노란색을, 하늘은 파란색을. 그림자로 내려앉은 아랫부분에 비해서 하늘은 듬성듬성 바탕색을 포함해 답답함에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붓 터치가 고스란히 다 느껴지고 배경의 빈 부분이 보이면서 대충 그린 듯한 습작처럼 이 그림은 나를 갸우뚱하게 했다. 재빨리 사람들이 오기 전에 이 그림을 감상할 시간을 더 가져야겠다. 붓 터치가 왠지 내가 나무를 그리며 나뭇잎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볕 같네. 수채화를 좋아한 이유가 그 이유 때문이었다. 빛을 그릴 수 있었고 빛의 존재감을 타인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이 그림도 그걸 이야기한 것일까.
은하수가 보이고 별의 공간과 하늘의 공간을 뚜렷하게 나타낸 붓 터치가 웬일인지 유치하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내 마음이 유치해서일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느낌이랄까. 마음속의 어린아이가 살아있어서일까. 유치한 마음을 가득 안고 오늘 미술관에 들어서서일까. 그게 최선이었나? 작가가 그릴 수 있는 최선의 그림이었을까 의문을 던진다.
미국 노부부가 지팡이를 한 손에 걸친 채 걸어왔다. 그림을 보시기 편하게 살짝 물러난다. 그러다 듣게 된 대화 소리에 미소가 지어졌다. 노부부의 할머니는 백발의 머리를 잘 말아 올리셨고 화장도 다소 진하게 하셨다. 살짝 불쾌하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으신다. 40대 초반 동양인인 내가 여기서는 퍽 튄다. 다국적 사람들이 모인 곳. 그 속에서 조용한 소음과 따듯한 대화와 다양한 생각이 퍼진다.
나의 별과 가까워지는 하루하루
2015년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다. 기존의 어린 왕자 이야기를 통해 각색된 영화이다. 친구 하나 만나지 않고 엄마가 짜놓은 계획표대로 살아가던 소녀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옆집에 사시는 괴짜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어린 왕자에 대한 추억을 듣게 된다.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조종사였을 때 사막에 추락해서 만나게 된 어린 왕자와의 추억을 나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의 우정과 다시 어린 왕자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다른 행성에서 어린이의 생각과 모습을 잊어버린 어른이 된 어린 왕자를 만난다. 곧 별이 될 할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너는 멋진 어른이 될 거야.”라는 말에서 가슴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어른이 돼버린 어린이 같은 나와 어린이 마음을 잊어버린 어른이 된 나를 만났다.
수많은 별 중 누구에게 더 반짝인다고 말하기 어렵듯, 다 같이 어우러져 반짝이는 별들은 외롭지 않다. 언젠가 그 별들로 떠날 날을 기다리며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