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현실적인 동해 스쿠버다이빙
이 글은 아래 내용과 이어집니다.
· #3. 나는 동해에서 죽고 싶지 않다
2024년 9월 16일 추석 아침 7시.
나는 다시 동해행 버스에 올랐다.
창문 밖 풍경을 보며 오픈워터 시험 첫날을 떠올렸다.
당시 수영장과 달리 끝없는 어둠이 보이는 바다가 무서워서 두 번이나 하강하지 못했다. 결국 약 50만 원을 다시 지불하고서야 오픈워터를 딸 수 있었다.
이번 여정은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따는 과정으로, 1박 2일 동안 총 다섯 번 다이빙해야 한다.
다이빙을 생각하면 여전히 동해에서 나 홀로 수면 위에 표류했던 순간과 그때의 공포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두려움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다섯 번이나 다이빙해야 하는 상황. 이번에도 비싼 수험료를 두 번이나 지불하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동해는 여전히 낯설고 두렵지만 나는 다시 동해를 향해 달린다.
제주도나 해외에서는 더 좋은 시야와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호기심 때문일까? 아니면 이 두려움과 싸우는 것이 어쩌면 내가 해내야 할 과제라고 느껴서일까?
이번 여정을 통해 취득할 어드밴스드 자격증보다, 다이빙을 포기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는 기대가 더 크다.
추석이라 차가 조금 막혔고, 네 시간 걸려 숙소에 도착했다.
샵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정도였고, 내 다이빙 시간은 오후 2시로 시간적으로 다소 여유가 있었다.
숙소는 오전 다이빙을 끝내고 점심 먹을 준비로 분주했다. 긴장을 풀 겸 점심을 먹고 숙소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내가 착용할 장비나 강사님들을 구경하면서 바닷속에서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조금이나마 덜 긴장된다.
건물 밖에는 장비를 착용할 테이블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산소통을 고정할 구멍도 있었다. 약 한 달만의 다이빙이기에 장비 착용을 잊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도 돌려봤다. 이제는 다이빙에 좀 익숙해졌는지 3mm, 5mm 드라이슈트도 골라서 입게 됐다. 9월 동해는 아직 춥다. 5mm 슈트를 집어들었다.
다이빙 샵에서 불과 30m도 안 되는 거리에 우리가 타고 나갈 배와 선착장이 있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몸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아도.. 장비를 착용하고 움직이는 건 무거우니까.. 역시나 샵과 선착장은 가까운 게 최고다.
하늘이 흐렸다..안 그래도 동해 시야가 좋지 않은데 행여나 구름 낀 날씨 때문에 더 안 보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배가 고장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던 다이빙 일정이 5시쯤으로 미뤄졌다. 오늘 오후에 두 번, 내일 세 번 다이빙 일정에 변동이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은 커졌다. 오후로 갈수록 해가 져서 시야가 더 안 보이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배 수리가 끝나고 드디어 어드밴스드 여정이 시작됐다. 5-8m 정도의 수심이 얕은 바다에서 체크 다이빙하기를 기대했지만 15m 옹기종기 포인트로 향했다. 바닥 온도는 18도로 낮은 온도는 아니었지만 긴장해서인지 5mm 슈트를 입었음에도 살짝 추웠다.
하지만 추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같이 어드밴스드를 취득하는 인원은 두 명 더 있었는데, 그들은 프리다빙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하강줄을 잡고 내려가는 속도는 매우 빨랐고, 강사님도 그들의 속도에 맞춰 하강했다.
동해는 바닥에 도착하기 전까지 하강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홀로 남겨지지 않기 위해 나도 하강을 서둘렀다. 그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빨리 하강한 날이었다.
하강을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귀에도 대미지를 입었다. 이퀄라이징을 수시로 했음에도 역시나 너무 빨리 하강한 것이 문제였다. 내 몸은 아직 빠른 하강에 익숙하지 않았다.
중간에 홀로 남겨진 것도 살짝 무서웠고 귀까지 아파서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버스에서 떠올렸던 오픈워터 때의 아픔이 생각났다. 다시 그 비싼 돈을 지불할 수는 없었다. 호흡기를 꽉 물고 천천히.. 내 속도로 하강했다. 10m 지점을 지났을 때 물 온도가 확 내려감이 느껴졌다. 오픈워터 때의 나였다면 처음 겪는 온도 변화와 조류에 당황해서 출수했겠지만, 그래도 몇 번 경험이 쌓였는지 이제는 제법 견딜만했다.
바닥에는 버디들과 강사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괜찮냐는 사인에 나는 애써 귀 통증을 무시하고 괜찮다는 사인으로 회답했다. 동해 시야는 여전히 좋지 않았고, 귀 통증으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과 패닉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런 충동을 억누르는 법을 안다. 아무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눈앞의 구조물들에 집중하는 것. 호흡기를 꽉 물고 두려움보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신경 쓰면 조금이나마 나아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왜 굳이 이렇게 까지 해서 다이빙을 하려는지 여전히 의문이었다.
해가 지는 시간대의 다이빙은 처음이었고, 걱정도 들었지만 이 또한 경험이려니 생각했다. 야간 다이빙과 유사한 경험을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즐겨하는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라는 게임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밤에 다이빙을 해서 물고기를 잡는 심정이 이랬을까'..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와중에 이런 상상을 하는 내가 어이없으면서도 웃겼다.
배가 고장 나 예정에 없던 야간 다이빙(?)이 끝난 첫날이 끝나고 이튿날이 밝았다.
오늘은 오전 두 번, 오후 두 번 총 네 번 다이빙하는 날이다. 하루에 네 번 다이빙은 처음이었다.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긴장에따른 정신적 피로도가 염려되었다.
다행히 날씨는 맑았고, 얕은 수심에서의 다이빙도 있었다. 수심 9m의 돌산 포인트는 수심도 얕고 시야도 매우 좋았다. 내 다이빙 인생 중 가장 볼 것도 많고 재밌었다. 자격증을 따러왔지만, 잠시나마 펀다이빙의 재미도 느꼈다.
이번 포인트에서 SMB 사용법을 익혔다. 지난 펀다이빙에서 홀로 표류했을 때, SMB가 있었다면 다른 배에게 내 위치를 조금이나마 쉽게 알렸을 것이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언제 조난당할지 모르고, 그걸 실제로 겪어서인지 SMB 수업이 몹시 반가웠고,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당시 몰랐는데 강사님이 유사시에 내게 빠르게 보조호흡기를 주기 위해 준비하셨다고 한다. 긴장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게 눈에 너무 잘 보였나 보다.
바다에서 다른 사람 눈이 그렇게 잘 보일까 생각했는데 아래 사진을 보고 바로 납득됐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마스크 때문에 더 크게 보였다. 사람이 긴장하고 패닉을 느끼면 동공이 확장되는데, 바다에서는 마스크 덕분에 그런 동공 확장이 잘 보인다고 한다.
세 번째 다이빙까지 마쳤지만, 두 번의 다이빙이 남아 있기에 긴장을 유지해야 했고, 내가 왜 다이빙을 계속해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 포인트는 꽤 깊다. 26m 돔포인트였다.
나는 다이빙을 하기 전에 CD님(코스 디렉터였던 걸로 기억한다)에게 우리가 가는 포인트 수심을 물어본다. 내가 어느 정도 깊이를 들어가는지 알게 되면, 하강줄을 잡고 내려가는 시간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해 다이빙에서 초보 다이버들이 고통을 겪는 구간은 아마도 바닥에 도달할 때까지 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강줄을 잡고 내려가는 순간일 것이다. 그 시간을 사전에 미리 알 수 있으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26m는 내가 내려가는 최대 깊이였고, 도전의 의미가 컸다.
이곳에서 나는 독도법 그러니까 물속에서 나침반(내비게이터)을 보고 길을 찾는 법을 배울 것이다. 내 긴장을 풀어주시려는지 강사님께서는 스쿠터 강습도 포함해 주셨다.
어드밴스드를 취득하며 느낀 점은 어드밴드스의 목적은 어쩌면 깊은 수심에 적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독도법이나 SMB 사용법, 중성 부력 등 스킬적인 것들도 배우지만, 오픈워터 때와 강습 수심부터가 다르다. 아무래도 자격증 취득 후에는 최대 30m(이전엔 40m까지였다고 한다)까지 다이빙이 가능하다 보니 깊은 수심에서의 다이빙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수심 26m까지 하강 줄을 잡고 내려가는 시간은 역시나 꽤 걸렸다. 5분 정도는 소요된 것 같다. 사전에 강사님께 긴장이 되니 내 하강 속도에 맞춰달라고 부탁을 드렸고, 내려가며 긴장될 때마다 강사님과 아이컨택 했다. 남자와의 아이컨택을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시야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긴장될 때마다 눈앞의 구조물들과 물고기들에 집중하며 최대한 수업만 생각하도록 애썼다. 이 과정에서 수심이 깊어질수록 색은 다르게 보인다는 것도 알게 됐다. 형형 색색의 물고기들과 산호들도 수심이 깊어질수록 점점 회색빛으로 보이는데, 수심에 따라 RGB 색상이 필터링되어 색을 잃는다.
처음으로 스쿠터도 타봤다. 오토바이와 비슷하게 핸들을 당기는 방식이라 예상했는데,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동작했다.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서 당황했지만 방향을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고, 조금만 타도 금방 익숙해졌다. 긴장했지만 확실히 이 장비가 있으면 물속에서의 이동이 쉽기 때문에 유사시 쉽게 수면 위로 올라가거나, 표류해도 육지까지 이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꽤 믿음직한 물건으로 보였다. 시야가 좋지 않은 동해에서 혹시라도 버디들을 놓칠까 봐 차마 스쿠터를 타고 멀리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역시나 이번 여정에서도 사건이 터졌다. 하강줄이 풀린 것이다.
하강줄이 풀리거나 끊어진 것을 사건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몇 번 겪다 보니 이젠 이런 일이 일상으로 느껴진다.
가장 걱정됐던 것은 풀린 하강줄이 아니라 40 bar 남은 잔압이었다. 70 bar 남았을 때 강사님께 말씀드렸고,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상승 포인트를 찾았지만 나쁜 시야로 인해 우리가 내려왔던 하강줄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우리는 넓게 퍼져 상승 포인트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약 30 bar를 썼다. 40 bar를 아껴가며 상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찌어찌 상승 포인트를 찾았고 잔압이 얼마 없는 나를 먼저 올리기 위해 강사님께서는 내가 하강줄을 먼저 잡도록 배려해 주셨다. 그러나 힘없이 딸려오는 하강줄에 나는 당황했고, 내 주변 버디들도 당황했음이 느껴졌다. 비록 내 표정을 못 보셨겠지만, 아마 뒤에서 지켜보던 강사님도 내 동공이 커졌음을 느끼셨을 것이다. 잔압 생각에 패닉이 왔고, 나는 그 즉시 BCD에 바람을 넣고 수면 위로 튀어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꾹 눌렀다. 참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수심 26m였고, BCD에 바람을 넣는 순간 중간에 멈추지 못하고 바로 수면 위로 튀어 올라갈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내 머리 위를 지나는 배를 볼 수 없고, 최악의 경우 나는 배에 치이거나 스크류에 갈릴 수도 있었다.
강사님은 내 상태를 계속 살폈고, 나는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침착함을 유지했다. SMB를 사용해 다 같이 올라왔고 그렇게 네 번째 다이빙을 무사히 마쳤다. 육체적인 피로보다 정신적 피로감이 더 힘들었다. 그러나 이전 표류 경험이 큰 도움이 된 것은 확실했다. 만약 그때의 경험 없었다면 이번 하강줄이 풀린 것이나 상승 포인트를 못 찾았을 때 분명 패닉이 왔을 것이고 더 큰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다이빙이다. 이번 다이빙만 통과하면 30m까지 다이빙할 수 있는 어드밴스드를 취득한다.
이번 포인트는 수심 23m의 삼돔구장이었다. 직전에 잔압이 거의 고갈된 26m에서 하강줄이 풀린 경험을 했던 터라 행여나 마지막에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길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
다이빙은 즐거워야 하는데 신께 간절히 빌정도면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일단 자격증 비용은 지불했고, 이번 한 번만 통과하면 자격증을 취득하니까 여기서 그만두지는 않겠지만.. 이런 심리상태로 이후에 펀다이빙을 계속하는 게 맞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머리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한가득이지만 막상 사진을 찍을 때는 세상 신나게 찍는다. 인지부조화가 올 것 같았다. 누가 봐도 근심, 걱정, 염려 투성이인데 사진 앞에서는 세상 까분다. ..이렇게 다이빙에 익숙해져 가는걸까.
마지막 다이빙이라고 생각하니 덜 긴장됐고 마지막에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다이빙을 즐기게 되었다. 함께 다이빙하는 버디들과 강사님이 많은 사진과 영상을 찍어주었고, 긴장을 풀어주려고 배려하는 것이 너무나 잘 느껴졌다.
여정이 모두 끝난 후 동료들이 공유해 준 사진과 영상을 보며 느낀점이 있다. 결국 내가 이번 여정에서 자격증을 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마주한 공포스러운 상황에 익숙해지거나 마인드컨트롤이 능숙해져서가 아닌, 주변 동료들의 배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내가 담긴 사진과 영상이 많았고, 그만큼 나를 지켜본 시선들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긴장 때문에 시야가 매우 좁아서 내가 처한 상황 밖에 보지 못했지만, 로그 수가 많은 주변 동료들은 마냥 펀다이빙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초보자들도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즉, 유사시에 강사님만 나를 신경 쓰거나 챙기는 것이 아니었다.
두려움은 나를 멈추게 했지만, 동료에 대한 믿음과 의지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다이빙을 포기하지 않는 나를 드디어 이해했다. 깊은 바닷속과 같이 내 힘만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두려움에 마주했을 때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깨닫고 싶었던 것이다.
늘 두려움이 생기면 나 스스로 해결하고 극복하려했다. 그것이 강함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바다와 심해 공포는 나 혼자 해결하기에는 너무 큰 존재였고, 혼자 감당하기에 벅찬 존재와 상황에 대해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낀다면 나 혼자 해결하려는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동료들을 믿고 의지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