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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Jun 04. 2016

뭔지도 모르고 따라간 10년 전의 스쿠버다이빙 여행

스쿠버다이빙? 그게 뭐하는 건데? 2006년 8월

그때는 우울했다. 뜨거운 에너지가 넘치는 여름은 활기찬 느낌이라 겨울보다 훨씬 좋아하는 계절이지만, 그 해의 여름은 그렇지 않았다. 오래도록 사귀던 여친과 헤어진 지도 수개월. 인생의 목적이 사라졌다라기엔 좀 거창하지만, 주말에도, 평일의 저녁에도 달래 할 일이 없어졌다.

인생의 목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의 하루하루가 맥이 없다. 분명 매일 다른 영화를 보지만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고 주말의 조깅 코스인 한강변은 몇 주 동안은 뜨거운 기온조차도 그대로인 것 같았다. 분명히 찾아보면 할 수 있는, 기똥차게 신나는 일이 널렸을 터인데, 나는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해야 되는지에 대한 아무런 답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곧 여름휴가 시즌이다. 지금은 언제고 내가 원하는 때에 휴가를 쓸 수 있는 (꿈의) 시대이지만, 어째서인지 그때는 생산 라인이 돌아가는 공장도 아니면서 굳이 직원들은 휴가 스케줄을 미리 허락을 받아야 했고, 여름 한 시즌에만 갈 수 있었다. 뭐, 일주일을 온전히 다녀올 수라도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 일인가?

아무튼, 내게 주어진 일주일의 (강제) 휴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휴가 때 뭘 할지 빨리 정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집에서 계속 영화를 보든가, 야심차게 산 Logitech G25 드라이빙휠과 Test drive Unlimited 게임으로 혼자서는 가 볼 엄두도 안나는 하와이 오하우섬을 폴리곤 슈퍼카로 일주일 내내 돌아다니면서 가상 여행을 하든가, 아니면 "집에 있을 거면 잠깐 나와서 보고서 좀 써야겠다."라는 끔찍한 말을 들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일하다 말고 한숨을 쉬며 화장실에 앉았더니, 잡지꽂이에 때 맞춰 프로모션 중인 호주의 케언즈 여행안내 전단지가 있었다. '호오, 케언즈...' 그럴싸하다. 그래, 케언즈에서 누군가가 스카이다이빙을 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어. 스카이다이빙은 꼭 한 번 해 봐야지 않겠어? 혼자 여행하더라도 친구가 생길 수도 있겠지? 운이 좋으면... 우후훗. 여담이지만, 그날 이후 10년이 넘도록 아직 케언즈엔 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때 가지 않은, 아니 가지 못한 편이 다행이었을 듯. 남국의 바다라더라도 그때는 호주는 겨울. 그 생각은 미처 못했었다. 그리고 케언즈라면 대보초로의 스쿠버다이빙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가서 배웠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여행안내 전단지를 들고 화장실을 나와 휴게실에 앉았다. 케언즈... 케언즈... 호주 달러를 바꿔야 되나? 근데 뭘 하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나면? 등등의 막연한 공상만을 하고 있던 무기력한 내게 같은 부서의 친구인 "Young"이 말을 걸어왔다.


  Young: "야, 뭐해?"

  나: "아... 휴가. 뭐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렇다. 케언즈 여행안내 전단지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뭘 할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생각이 없었다.


  Young: "야, 나 이번에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따러 태국 갈 건데 같이 안 갈래?"

  나: "뭐? 스쿠버다이빙?????????????"


그게 도대체 뭐지? 물론 스쿠버다이빙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걸 도대체 왜 하는 건데? 그리고 자격증은 또 뭐야?


  Young: "어, 나 혼자 가려고 했던 건데 같이 갈 생각 있으면. 이번엔 완전히 가난하게 다닐 거야. 진짜 옷도 안 갈아 입고 수염도 기르고 음식도 완전 싼 거 현지식만 먹고..."

  나: "(그건 니맘대로 하시고. 그래서 스쿠버다이빙이란 게...) 어, 머, 그러지"


혼자가 된 이후 아무런 구심점 없는 의사 결정에 그나마 Young이 길을 열어 주었다. 스쿠버다이빙이 어떤 건지, 왜 하는 건지도 모르고, 심지어 그래서 정확히 어디를 어떻게 가는지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고 그냥 따라가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나의 의지의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지금은 4000원짜리 물건을 사더라도 인터넷 검색으로 가격을 비교하고 그게 정말 필요한지 찾아보고, 아내가 들러서 받아달라는 백화점 화장품 매장의 샘플을 받으러 가면서도 동선과 출입구를 미리 인터넷 지도로 확인하고 가는 것이 내 성격인데, Young과 태국에 스킨스쿠버인지 스쿠버다이빙인지 오픈워터인지를 하러 갈 때는 정말 아무런 준비도, 조사도, 공부도 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솔직히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단지 휴가 일정이 결정되었다는 것, Young만 따라가면 되겠지라는 그런 태평한 생각으로 휴가를 나섰던 것이다. 아마도 Young이 나를 잘 이끌어 가 주리라는 믿음이라도 있었나 보다. 그 믿음 그리 오래가지 않아 깨져 버렸지만.


태국 방콕의 국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한 시간은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간이었다. 우리나라랑 동남아 노선은 어쩜 이리 밤을 좋아하는지. 하루하루 쪼개서 여행 다녀야 하는 한국인들에겐 이 편이 더 나을 테지만. 나는 여전히 Young만 따라다니고 있었다.

늦은 밤 처음 와 본 방콕,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는데, Young은 "카오산로드"에 있는 현지 여행사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했다. 그래, 아무런 문제도 없군. 자정이 다 된 시간에 택시를 타고 "카오산로드"로 향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명문대를 나온 Young의 영어 실력은 거의 Native Speaker 수준이었다. 유창한 영어로 택시 기사와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나누는 것 같았다. 방콕의 명물이나 음식 등을 물어봤다.

그때의 나는 영어를 그다지 잘 하지는 못했지만 대화의 분위기는 알 수 있었다. 방콕이 국제적으로 각광받는 여행지이긴 하지만 택시 기사랑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굳이 유창한 영어 실력이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연신 웃음을 지어 보이는 택시 기사가 영어 비슷한 언어가 섞인 말로 얘기를 해 줬지만, Young이 물어본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혼자 하는 것 같았다.

자정 무렵의 카오산로드. 세계의 모든 배낭여행자들이 집결한다는 그곳. 그렇게 대단한 곳이라면 우리의 여행 스케줄을 책임져 줄 바로 그 여행사도 우리 앞에 금방 나타나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던 것 같다.

뭐, 금방 나타나기는 했다. 그런데 아무리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지만 자정에까지 문을 열어두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정말로 순진하게 그 시간에도 여행사가 문이 열려 있을 줄 알았다. Young이 스케줄을 다 짜고 여행사랑 다 맞췄다고 해서 어련히 알아서 해 줄 줄 알았지. 심지어 Young은 유창한 영어로 여행사랑 대화도 잘 했을 텐데.


카오산로드의 PC방은 나름 쾌적했다. 잠을 자기엔 편치 않은 자리였지만 그 정도 싼 가격에 열대지방의 밤을 서늘하고 깨끗하게 머물 수 있는 곳도 드물 것 같았다. 차라리 방을 잡아서 편히 쉬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Young이 이번 여행의 컨셉으로 잡은 가난한 배낭여행이라는 관점에서 그런 건 애초에 생각도 안 했던 것이다. 미련하게도. 그리고, 편히 쉬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날이 밝는 즉시 여행사로 가서 당장에 우리의 여행 스케줄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라고 항의(?)를 해 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방콕에서의 첫날밤은 하릴없이 아침을 기다리며 PC방에서 시간을 보냈고. 날이 밝자 뜬 눈으로 지새운 뒤의 퉁퉁 부은 눈으로 어젯밤 가 봤던 여행사 앞으로 갔다. 날은 밝았지만 시간은 아직 새벽. 여행사가 문을 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문이 열리겠지라는 생각으로 둘이서 그 여행사의 여러 가지 안내 포스터를 보며 한동안 서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 둘은 나름 명문대를 나온 똑똑이여서 하염없이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은 뭐라도 안 해 보면 불안해서 못 있을 것 같았다.)

Young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어디선가 배를 타야 한단다. 그래서 그 항구를 찾아가야 하는데, 배가 떠나는 시간은 이른 아침이나 낮 두 번뿐이란다. 그때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그러면 그 항구를 찾아가면 되는 것인가, 역시 Young이 잘 알아서(?) 해 주겠지 정도로 생각했다. 그 이른 아침의 배 시간을 맞춰서 항구에 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던 모양인데, 이미 그 시간은 지났을 시점이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항구는 방콕에서 버스로 6시간을 달려서 가는 곳이었다.

뭐라도 해 보려는 우리의 조바심은 결국 일찍부터 일을 나온 젊은 툭툭 기사에게 아침부터 짭짤한 일감을 제공해 줬고,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체 Young이 가자고 하는 곳으로 툭툭에 몸을 싣고 달렸다. 아마 Young은 어디 가는 줄은 알고 있었겠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툭툭을 타고 도착한 곳은 조금 일찍 연 어떤 부지런한 여행사였다. Young은 직원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었지만,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 다시 그 젊은 툭툭 기사의 툭툭을 타고 움직였다. 이번엔 Young도 어딜 가는 건지 모른단다. '뭐? 모르면 어떡해?' 툭툭 기사가 어딘가 멈추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옆의 집으로 들어가더니 곧 나왔다. 아까의 화려한 셔츠가 더 화려한 셔츠로 바뀌어 있었다. 그냥 옷 좀 갈아입고 온다는 것이었다. 허허... 어차피 멘붕이었던 우리는 이 툭툭 기사의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태도에 오히려 긴장이 풀려 버렸고, 결국 원래의 여행사로 돌아왔다.

드디어 그 여행사가 문을 열었다. 비록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열대 지방의 여름은 덥고 습하다. 여행사 사무실은 더위도 금방 식힐 정도로 이미 시원해져 있었고, 그나마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로 약간의 안도감도 생겼다.

현지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우리 나이 또래의 백인 남자였다. 흠, 그럼 Young이 대화하는 데도 크게 어렵지 않았을 텐데, 뭐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또다시 나는 소외된 체, 아니, 나는 굳이 두 사람의 대화에 신경도 쓰지 않은 체, 잠깐의 대화가 이어졌고 잠시 후 Young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기가 뭔가 잘못 생각했었다고 실토했다. Young이나 나나 막연하게 배낭여행의 낭만에 대한 기대만 있었지, 온실 속에서 잘 크기만 했던 아무것도 모르는 헛똑똑이였던 것이다. Young의 말로는, 항구를 가는 버스는 저녁 9시에 출발하니 그때 버스를 타야 한단다.


결국 우리는 하루의 시간을 날려 먹게 생겼다. 그 전에, 일단 좀 쉬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더니 눈두덩이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밤새 PC방에서 죽치며 아낀 돈으로 게 중에서도 좀 고급스러워 보이는 마사지샵에서 타이 마사지를 받았다. 눈을 잠깐 감았다 떴더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쉬었으니 이제 뭘 좀 먹어야겠다. 아예 하루를 보내 버리기로 해서 그런지 오히려 낙천적이 되어 버렸다. 아무 곳이나 그럴싸해 보이는 노천카페에서 컨티넨탈 브렉퍼스트를 먹으면서 셀카를 찍었더니 비록 수염도 못 깎고 꾀죄죄해 보였지만 배낭여행의 낭만이 조금 묻어나는 것 같았다.


하루의 강제 방콕 자유 투어가 생겨 버렸다. Young은 지쳤는지 백화점의 시원한 곳에서 쉬겠다고 그랬고, 나는 박물관과 사원을 갔다. 외국에 왔으니 하나라도 이 동네에 대해서 알고 지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서이다. (이후로도 나는 가능하면 새로이 가는 곳에 대해서는 역사적, 문화적 공부를 미리 하고, 역사박물관을 들르려고 하는 편이다.)


이래저래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밥을 사 먹으며 다시 어둠이 깔린 카오산로드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정말로 Young이 다 알아서 해 주겠지. 어찌 보면 참 태평하고도 우유부단한 나였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이벤트도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핑계 참 그럴싸하다.)

낮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배낭여행객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어디론가 줄줄이 따라가고 있었고, 어디엔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Young은 나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여기저기 물어보더니 우리가 타야 할 버스를 찾았다.

Young에게 해답을 가르쳐 준 이는 "아일린"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기골이 장대한 아일랜드 출신의 젊은 여자였다. 혼자 왔다는 얘기에 Young은 이제야 진정한 배낭여행이 시작됐다는 기대에 부푸는 것처럼 보였다. 둘은 연신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반쯤은 알아듣는 단어, 반쯤은 뭔 얘긴지 모르겠는, 결국 아무것도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웃으며 말하던 아일린이 갑자기 나에게도 뭔가를 물어봤을 때 나는 바보처럼 얼버무리며 말을 하는 둥 마는 둥 했고, 아일린은 금세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내게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이때가 내 인생에서 영어공부의 충동이 가장 컸던 때였다.

버스는 처음 보는 2층 버스였고, 아래칸은 짐칸으로, 안에 화장실도 있는 그런 투어링 버스였다. 밤을 새워 달려 새벽에 항구에 도착한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항구는 Chumphon. 함께 간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그제야 정말로 스쿠버다이빙이란 것을 배우러 어딜 가긴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방콕의 PC방에서 본 것과는 다른 새벽하늘이 밝아오고 있었고, 배를 타기 위해 꽤 긴 jetty를 걸어 바다 가운데로 들어갔다.

춤폰(Chumpon)에서 꼬따오(Koh Tao)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한 선착장(jetty)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언제인지 모르게 여전히 피곤했던 나는 잠깐 눈을 감았었다가, 배의 엔진 소리가 낮아짐을 느끼면서 잠을 깨었다. 어딘가 도착한 모양이다. 갑판 쪽을 나갔더니, 여기는! "으아앗! 오길 잘했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우리의 목적지인 꼬따오(Koh Tao) 옆의 낭유안이라는 섬이었다. 아주 작은 세 개의 섬이 모래톱으로 된 삼거리로 이어져 있는 환상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섬이다. 그리고 그 주변엔 옥빛 바다가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곧 배는 꼬따오(Koh Tao)의 항구에 정박했다.


우리가 갈 곳은 Buddhaview Dive Resort. 푯말을 든 가이드를 만났고, 우리의 상상 속의 배낭여행의 로망처럼 픽업트럭의 짐칸에 걸터앉았다.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한국 여행자들이 대거 나타난 것이다. 물론 다이브샵에 한국인 강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방콕에서 본 수많은 외국의 배낭여행객들을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여행을 안 다니나 보다고 생각했던 나에겐 가벼운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모두 스무 살 언저리의 젊은 친구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누구랑 같이 온 사람은 나와 Young 둘 밖에 없고 모두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이미 서른이 넘어 있었던 나로서는 그동안 난 뭘 하고 살았었나 하고 지나온 나의 20대에 살짜기 아쉬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순간이었다.

해변에 위치한 Buddhaview Dive Resort. 열대의 분위기만으로도 마냥 설렜다


동남아의 열대 기후와 시골스런 분위기, 쏟아지는 배낭여행객들 모두 나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덜컹대는 픽업트럭의 짐칸은 새로운 낭만을 시작하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였지만, 이제 막 중천에 이른 햇빛과 아파오는 엉덩이는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있던 나에게는 견디기 쉽지 않은 고행이었다.

오래지 않아 도착한 리조트는 이런저런 사념들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곳이었다. 이런 이국적인 숙소라니! 이런 여행이 처음이었던 내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는 것들이었다. 주위에 가득한 나무들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눈 앞에는 옥색 푸른 바다와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한국인 직원이 우리를 안내해 주었고, (알고 보니 다이빙 강사였다.) 리조트의 생활, 교육 일정 등에 대한 안내나 조정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다이빙 교육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는 무료 숙소가 제공된다고 한다. 무료인 만큼 시설이 썩 좋지는 않겠지만, 지내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단, 에어컨이 없으며 화장실과 샤워시설은 공동이라고 했다. 그리고 에어컨과 화장실, 샤워실, 깨끗한 침실이 제공되는 숙소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Young은 애초에 이번 여행의 모토로 삼은 가난한 배낭여행에 맞춰 무료 숙소로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늘에서도 줄기차게 떨어지는 땀과 끝을 흐리는 목소리가 그닥 자신 있어 보이진 않았다. 어차피 돈이 크게 아쉽지 않은 회사원인데다,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여기까지 데리고 와 준 Young의 노고에 고마움을 담아 숙소 비용은 내가 내기로 할 테니 좋은 곳에서 지내자고 했다. Young은 하등 필요 없는 머뭇거리는 시늉을 하며 나의 제안에 동의를 했다. 그래, Young 넌 나의 호의를 받을 자격이 있어.

문제는 우리의 스케줄이었다. 애초에 기대했던 스케줄에서 하루가 날아가 버렸다. 원래 Young은 Open Water Diver 과정과 Advanced Open Water Diver 과정을 한꺼번에 다 하려고 했는데, 귀중한 하루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Young 이 녀석이 방콕 구경을 더 해야겠다고 원래 일정에서 하루를 앞당겨 리조트를 나가야겠다는 거다. 이걸 똥고집이라고 해야 하나, 여행에 대한 열정이라고 해야 하나 고민도 잠시, 한국인 직원, 아니 강사님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렇게도 교육 다 진행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기대하던 바 다 이루게 되니 만사가 OK다. 이제 그동안의 혼란은 모두 정리되고 신세계로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참이다.




스쿠버다이빙을 접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


영국 BBC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신 분들은 화면의 영상들이 얼마나 놀라운지 잘 아실 겁니다. 이 자연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에는 영국식 발음의 한결같은 내레이션이 있는데, 바로 자연 다큐멘터리의 전설로 불리는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Sir David Attenborough)의 내레이션입니다. 이 분이 2015년 백악관을 방문하여 오바마 대통령과 대담을 나눕니다. 아니, 오바마 대통령이 애튼버러 경을 인터뷰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얘기일 텐데요. 아래의 링크는 그때의 영상입니다.


https://youtu.be/NZtJ2ZGyvBI



8:00 지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애튼버러 경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하여 기쁨을 나누고 싶은 곳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애튼버러 경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대통령께서도 동의할 겁니다. 처음으로 공기탱크를 메고 바다 속을 들어가 아름다운 산호초들 사이를 무중력 상태로 떠다니던 그 순간이죠. 상어와 다른 생물들이 내 주위를 맴도는 경험은 최고로 놀라운,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죠.

제가 스쿠버다이빙을 처음 접한 때가 그리 젊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저를 스쿠버다이빙의 세계로 이끌어 준 친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는 아직도 스쿠버다이빙이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아니, 그냥 나랑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첫 스쿠버다이빙 "버디" Young은 내 인생에서 정말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평소엔 좀 귀찮은 녀석이었지만...


새로운 일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스쿠버다이빙이란 것을 어디에서 접하든 한 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스쿠버다이빙 또는 바다의 물속 세상은 낯선 세계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운전면허 다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많이 발급되는 "라이선스"가 스쿠버다이빙 라이선스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사실 스쿠버다이빙은 인생에 있어서 언제고 한 번은 해 봐야 하는 경험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빠르다면 더 좋겠죠.


저는 도대체 왜 이런 세상을 좀 더 일찍 스스로 찾아볼 생각은 못했는지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 아쉬움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와 그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만일 여러분께 아직 Young과 같은 좋은 친구를 만나는 행운이 없었다면, 부디 저의 글이 그 행운을 대신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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