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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Jun 11. 2016

설렘이 두려움으로, 그러다 편안함으로

발이 닿지 않는 물에 "떠" 있다는 것. 2006년 8월

빠듯하리라 생각되는 일정에도 첫날은 그럭저럭 여유롭게 지냈다. 여유로우면서도 지루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처음부터 혼란스러웠던 여행으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편이 강행군을 가는 것보다는 나았을 터이다.

첫날 진행된 일정은 교실 수업이었다. 시원하면서도 썰렁한 분위기로 기억되는 교실에서 비디오 시청을 했다. 고등학교 때를 마지막으로 봤던 압력이니, 부피니, 혈관이니 하는 내용들이 가득했다. 비디오는 썰렁하던 교실에 음침함을 더해 주었고, 재미라고 할 만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다행히도 최근에 PADI의 오픈워터 다이버 비디오 교재는 재밌게(?!) 개편되었다.)

그런데, 이 내용들로 나중에 시험을 본다 하니 없던 재미도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교재를 봐 가면서 매 단원의 마지막에 나오는 문제들을 또 열심히 풀고 써야 했다. 금방 끝날 일이 아니라, 이건 그날 저녁에 숙소에서 해야 할 숙제가 되어 버렸다. 여행 와서 숙제에 시험이라니!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자격증 발급이 안된다니 어쩔 수 없다.


   '이거 즐겁자고 하는 거 아니었어?!'


여행의 기분을 느끼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더 이상 우울해지고 싶지는 않아서, 숙제와 시험은 닥치면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설렁설렁 놀기로 했다. 그래도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러 온 지라, 제일 먼저 발길이 간 곳은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파는 리조트 내의 장비 샵이었다.

마스크와 오리발이 벽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마스크와 오리발인데, 평범하다는 것 말고는 스쿠버다이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 이상의 내용은 알 도리가 없었다.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었고, 사 두면 계속 쓸 수 있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사님이 이런 조언을 해 주셨지만, 여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말하자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호기 때문인지 뭔가를 사야만 할 것 같았고, 결국 가장 부피가 작으면서도 사 두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으로 마스크와 스노클을 샀다.

그렇게 비싸지 않으면서도 가격 대비 성능과 디자인이 좋은 것으로 샀는데, 다행인지 10년이 다 된 지금도 그 마스크와 스노클은 멀쩡하게 잘 쓰고 있다. (애초에 괜찮은 걸 사야 된다.) 그것만 사기도 좀 아쉬워, 마스크 스노클을 넣을 수 있는 조그만 드라이백 (방수백)을 샀다. 이것도 여전히 멀쩡하지만, 넣어야 될 것들이 늘어나면서 좀 더 큰 백을 쓰고 있다. 드디어 나의 첫 장비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 뭔가 의욕도 샘솟고 빨리 써 보고 싶은 생각도 들어야 할 텐데, 그렇지는 않았다. 여전히 스쿠버다이빙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2006년에 바다에 발도 안담가 보고 샀던 장비들. 아직도 멀쩡히 쓰고 있다


첫날의 오후는 그렇게 그냥 쉬는 시간으로 보냈다. 동네를 둘러보고, 뜨거운 햇빛을 온 어깨와 무릎, 콧등으로 받아내고, 파도소리를 듣고, 시큼한 깔라만시(그때는 그냥 라임으로만 생각했던.) 즙을 뿌린 볶음밥과 Young이 미국보다도 싸다고 좋아하던 복숭아 맛 네스티 한 캔에 행복해했다.


Buddahview Resort라는 이름은, 섬의 절벽에 부처 모양의 돌산이 있는데, 이 돌산이 잘 보이는 곳이라고 하여 Buddahview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그렇게 설명을 들었지만, 얼추 저 돌산을 부처 닮았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만 들뿐, 정말로 부처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Buddahview Resort는 이보다 더 유명한 것이 있었는데, 매일 밤마다 있는 바비큐 레스토랑(?)이었다. 이 리조트에서는 매일 저녁 바비큐, 우리로 치면 꼬치를 즉석에서 구워 파는데, 옥수수, 감자 같은 싼 것에서부터 소시지, 새우, 비싸게는 랍스터까지 가격도 맛도 다양하게 있어서 주변의 다른 리조트 손님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길거리 음식은 별로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먼 곳에 와서 길거리 음식 비주얼의 바비큐를, 그것도 저녁으로 먹는다고 생각하니 사뭇 기대가 되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주위에 보이는 레스토랑과 바에서도 음악과 불빛이 흘러나오고, 어느새 모인 저녁 식객들로 바비큐 그릴 주위에는 사람들이 시끌벅적 몰렸다. Young과 나는 들뜬 기분으로 바비큐를 이것저것 집어보려 했지만, 의외로 비싼 가격의 바비큐들은 선뜻 들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크게 비싼 가격도 아니었는데, 가난한 여행이라는 컨셉 때문이었는지 주저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는 San Miguel 한 병과 비교적 싼 옥수수나 치킨 바비큐 정도로 타협을 보았다. 그리고, 이후로도 매일 저녁은 저렴한 바비큐 음식과 San Miguel 한 병으로 때우는 식이 되었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스쿠버다이빙 교육이 시작되었다. 오픈워터 스쿠버다이버 교육은 수영장부터 시작이다. 첫 교육은, 아니 테스트라고 해야 하나? 수영이었다.

뭐? 수영? 그런 게 있었단 말이야? 나는 물에 빠지면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아서 수영을 배우기는 했지만, 그건 생존의 수준이었을 뿐 "수영"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스쿠버다이빙 실습 교육의 첫 관문이 수영이라니! 게다가 강사님은 "다 하는 거"라면서 그냥 수영장에 우릴 내버려 뒀다. 심지어 그 수영장의 한 쪽은 바닥이 저 밑에 있는 것이 내 키보다도 훨씬 깊은 곳이었다.

다행히(?) 당황해하는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어제 같이 들어온 어린 친구들 역시 이런 수영 해 본 적이 없다며 아우성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어떻게 다른 수를 써 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 없고 같이 당황해하던 어린 친구들이 하나 둘 무작정 수영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들 어떻게든 수영을 하고 있었다. 뭐야? 그게 젊음이라는 건가? 뭐, 그렇다면 나도 수영을 배우긴 했으니까, 수영을 할 수밖에 없겠군. 하고 그냥, 남들 다 하는 것처럼 수영을 했다. (훗, 나도 아직 젊...)

무사히 수영 테스트를 마쳤지만 뭔가 당한 느낌? 나중에 알고 보니 수영을 못하면 스노클을 물고 해도 된다고 한다. 그래도 수영을 한 번 하고 났더니 물에 대한 적응이 어느 정도 되는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강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실습을 하게 되는데, Young과 나는 빡빡하게 일정을 짜야해서 따로 강사님이 배정되었다. 특별 대우를 받는 것 같기도 한데, 한국인 강사님은 다른 팀을 가르치시고, Young과 나를 가르치기로 한 강사님은 우리가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해서 서양에서 온 (북유럽 쪽이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Karin이라는 금발의 여자 강사님이었다. 오히려 여행의 기분이 훨씬 고조되었다랄까.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면서 배우는 내용들은 스쿠버 장비에 대한 것들, 어떤 식으로 조립하고 어떤 식으로 해체하는지, 사용법, 주의 사항 등이었다. 그리고 마스크에 흘러 들어오는 물 빼는 법, 레귤레이터를 입에 물고 물속에서 숨을 쉬고, 입에서 빠졌을 때 다시 찾는 방법, BCD (부력조끼)를 부풀려 물에서 뜨는 법 등등의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위한 기초적인 기술들을 배웠다.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지금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는 인상은 발이 닿지 않는 물에서 떠 있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방금까지 수영으로 수영장을 왔다 갔다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물이 무서웠던 나는 BCD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불안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스쿠버다이빙의 기술들을 여러 가지 배웠는데, 다행히도 나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모든 기술을 금방 익힐 수 있었다. 오로지 깊은 물에 대한 느낌 하나만이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는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었던 그 느낌이 놀랍게도 편안함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BCD를 부풀린 채로 불안하게 떠 있던 우리는 처음으로 스쿠버 장비로 숨을 쉬면서 "수중"으로 들어갔다.

"바깥"과 수중을 가르는 순간의 느낌은 소리가 지배한다. 일상의 공기 중에서 듣던 소리와 물속에서의 소리는 완벽히 다르다. 1cm도 안 되는 귓구멍을 수면이 차 올리는 1초가 안 되는 그 찰나에 나는 다른 세계로 들어와 있었다. 나의 숨소리는 다스베이더의 숨소리 같기도 했고, 순간적인 적막 사이에 뽀글거리는 공기방울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편안했다.




"그래도 난 물이 무서워"라고 한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스쿠버다이빙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른 체 그냥 "호흡기 달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 정도로만 알던 상태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러 왔습니다. 그냥 재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또 뭐가 재밌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머리 속에서 맴도는 것은 '불보다 물이 더 무섭다던데...' 네. 맞습니다. 바로 물에 대한 두려움이죠. 저의 물에 대한 두려움은 막연한 것이었습니다. 물에서 놀아 본 일이 별로 없었지만 그냥 물은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딱 한 번, 물에서 놀았던 유일한 기억이 있는데, 또한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였던 것 같습니다. 단체로 여행 간 바다에서 무언가를 강습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게 언제였는지, 어떤 여행이었는지, 무슨 강습이었는지, 그 바다가 어디에 있던 곳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단 한 가지, 해변에서 몇 발작 떨어진 해수욕장 안쪽이었고, 저 말고도 다른 어린 친구들이 강사의 말에 따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물속에서도 잘 움직였습니다. 이 친구들이 모두 수영을 할 줄 아는 애들이었을지도 모르구요. 아니면 모두들 저보다 키가 컸던 걸지도... 그런데 저에게는 그 바다가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해변과 가까운 곳에 파도가 파 놓은 깊은 곳이 있는데, 여기는 발이 잘 닿지가 않았습니다. 게다가 파도는 왜 그렇게 매서웠는지!(아마도 저에게만)


사실 저는 우리나라에서 "바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부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때 부산에서 전학 온 저에게 서울 친구들은 "우와~ 그럼 바닷가에서 살고 맨날 수영도 하겠네!"라며 놀라 했습니다. 저의 대답은 "아이다~! 우리도 해운대 갈라믄 버스 타고 한 시간 가야 된대이!"였지만, 부산이 어떻게 생긴 동네 인지도 모르는 깍쟁이 서울 친구들은 바다 얘기가 신기한 건지, 제 사투리가 신기한 건지, 아니면 부산이란 동네에도 사람이 산다는 게 신기한 건지 제 얼굴만 쳐다보더군요.

저는 대학 졸업 이후에나 수영을 배웠고, 그 이유도 곱게 물에 빠져 죽기는 싫어서였습니다. 바다에서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물이 무서워졌던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그때는 어쨌든 수영을 못하던 때였습니다. 어릴 때는 눕기만 해도 몸이 바다에 떴었는데, 그때는 또 그렇지가 않더군요. 물도 좀 먹구요. 인솔하던 사람도, 모래사장도 한 대여섯 발작만 가면 될 것 같은데, 그 대여섯 발작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으니까요. 어찌어찌 파도에 밀려 허우적대던 그곳은 빠져나왔지만, 발이 닿지 않는 물에 대한 공포는 역시나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물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얘기를 너무도 많이 들어서 막연히 갖게 된 두려움일 수도 있구요. 아니면 사주카페에서 올해는 물 근처는 가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바다라고 해 봐야 해운대보다는 송정 해수욕장이 더 조용하고 좋은 것 같다는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위해 처음 수영장에 들어갔는데, 발이 닿지 않았습니다.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위한 수영장은 수심이 대략 3m에서 5m 정도 되는 곳입니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들었던 여러 가지 내용들은 싸악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직 드는 생각은 '아...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땅에 발이 닿지 않는다... 발에 땅이 닿지 않는다... 땅이 발에 닿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고, 언제 내 코가 수면 아래로 들어가 버릴지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쿠버다이빙은 그 두려운 물에서 나를 물에 뜨게도 해 주고, 또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무언가 익숙지 않고 어색한 느낌이었지만, 저는 물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었던 바다를 만지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고, 더 알게 되었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은 여전히 두려운 대상이지만, 무엇이 두려운지,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면 바다에서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알아보기를 포기하기에는 그 놀라움과 즐거움이 너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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