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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Jun 17. 2016

처음 들어간 바다

바닷물 속에서는 차라리 해초가 되어라. 2006년 8월

수영장에서의 교육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속이 편안했고, 공기 방울 소리만 들리는 그 느낌이 너무도 신기하여 재밌기만 했다.


오후에는 이제 드디어! 바다로 나간다. 본인이 쓰는 스쿠버 장비는 본인이 챙겨야 했다. "망가방"이라 부르는 그물 가방 안에 내가 쓸 스쿠버 장비를 넣어서 들고 처음 리조트에 들어올 때 탔던 픽업트럭의 뒷자리에 탔다. 덜컹거림과 엉덩이에 만져지는 딱딱한 자리, 뜨거운 태양은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지만, 설렘은 새롭다. 


트럭은 우리가 처음 배에서 내렸던 그 부두로 다시 왔다. 짐을 모두 내리고, 우리는 각자의 망가방을 든 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배에 올라탔다. 어? 배에 올라타니 다른 누군가가 다시 어딘가를 가리킨다. 배들은 여러 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우리는 우리가 타야 할 배에 가기 위해서 마치 징검다리 건너듯 출렁거리는 배들을 넘어 다녔다. 아! 이런 박진감 넘치는 출발이라니!


출발부터 흥미진진한 첫 바다 속 다이빙의 여정은 계속해서 기대감과 설렘을 더해 갔다. 몇 백 명씩 실어 나르는 여객선이 아닌 이 정도 크기의 작은 배도 처음 타 보는 일인 데다, 그냥 늘 보던 바다도 이 배 위에선 내가 알던 바다가 아니었다. 


옆사람 말이 안 들릴 정도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 뜨거운 햇볕과는 대조적으로 끊임없이 물보라를 튀겨주는 바람, 그 속에서 틈틈이 코를 스치는 엔진의 기름 냄새까지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배 위에서 느끼는 바다는 완전히 새로운 곳이었다. 그리고 이제 물결 밖에 안 보이는 그 수면 아래에 직접 들어가 보려는 중이다.


처음으로 바다 속 입수를 앞두고 Karin 강사님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한 절차, 바다에 뛰어들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이번 다이빙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비상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어련히 알아듣지 않았을까 싶었을 때, 옆에 있던 현지인(?) 혹은 폴리네시아인처럼 생긴 분이 다시 설명해 줬다. 한국말로! 알고 보니 이 분은 우리의 오픈워터 다이버 교육을 도와주시는 한국인 다이브마스터였다. 입을 열지 않으면 절대 한국인이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교육을 받는 동안 우리는 그분을 "마오리 샘(선생님)"라고 불렀다.


오른쪽에 검은 풍채를 뽐내시는 마오리샘. 한국인일줄이야!


두 명의 교육생에 강사 한 명과 다이브마스터 한 명이니, 별 걱정 없이 의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장비를 입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 데는 나의 첫 다이빙 버디인 Young과 서로서로 도와야 했고, 알게 모르게 강사님이나 배의 선원들이 능숙하게 도와주었다. 


강사님의 입수 시범에 따라 배의 끝자락에 섰다. 이것은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해적선에서 사람을 밀어 바다 밑으로 수장시키는 장면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뿐, 망설임은 없었다. 내게는 BCD와 호흡기가 있으니까. 


한 발짝 크게 내딛자 내 몸은 바다로 던져졌다. "첨벙!"하는 소리가 그렇게도 크게 느껴진 이유는 곧바로 정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다시 내 몸은 BCD의 부력 덕분에 떠 올라 출렁이는 파도와 배 소리를 느낄 수 있는 바깥으로 나왔다. 


어안이 벙벙한 느낌인지 뭔지도 모르지만 나는 잘 뛰어들었고, 곧 강사님의 도움으로 줄을 잡았다. 파도가 잔잔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파도는 연신 내 얼굴을 얄미울 정도로 찰싹찰싹 때리고 있었고, 내가 몸이 솟아오르면 배도, 강사님도 Young도 다른 모든 것들이 밑으로 꺼지는 널뛰기 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 


드디어 입수. BCD에 공기가 "슈우우-" 하고 빠지다가 "슈우우우-웃" 하고 멈추자 곧이어 눈 앞에는 파란 세상, 귀에는 뽀글거리는 공기 방울 소리, 그리고 다른 것은 없었다. 그 순간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바다에서의 첫 다이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섭거나 불편한 게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혹은 있었는데 까먹었거나) 수중에 떠 있다는 것, 숨 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이 편안하다는 것, 눈 앞에는 파란 배경에 수많은 물고기들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 그리고 뽀글거리는 나의 숨소리만으로도 나의 첫 다이빙은 성공적이고도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바다 속에서는 수영장에서 배웠던 것들을 복습했다. 수심은 아마도 그리 깊이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슬쩍 머리를 들어 위를 올려 보면 출렁이는 수면이 보였다. 한... 7~8미터쯤 되려나? 사실 수영장보다는 조금 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뿐, 몇 미터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높이, 아니 깊이를 눈대중으로 재 볼 기회가 언제 있었겠는가? 기껏해야 대충 몇 층 건물 높이 정도 돼 보인다는 느낌으로 환산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더 깊이 내려왔다고 특별히 무섭다든지 불편하다든지 한 건 없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닥이 모래인데, 우리가 배우는 스킬을 연습한다고 조금만 움직이면 먼지가 자욱해졌다. 더 당혹스러운 일이 있었으니, 도통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다. 강사님은 태연히 잘만 앉아 있는데, 우린... 이게, 이게 도대체 뭐 이런 건지!


왜 이렇게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지!


게다가 버둥대는 모습이 영 꼴사나울 것 같다. 수영장과 다른 것이, 바다 속은 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를 이렇게 흔들어 재끼고 있는 중인 거다. 아니, 이거 뭐 별로 세게 몰아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랑살랑 움직이는 물 같은데. 강사님 쪽은 물이 안 움직이고 딱 우리 주변 물만 움직이는 건가? 이건 진짜 우스꽝스럽다. 한 뼘 살짝 바닥에 뜬 상태일 뿐인데 어째서 다시 바닥에 내려앉지를 못하는 거니. 양 손은 허부적대고, 오리발을 낀 발로는 주체할 수 없이 먼지를 일으키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대로 계속 보고 있기가 안쓰러운지 마오리 샘이 자애로우신 손을 뻗어 우리를 새털처럼 가볍게 자리에 앉혀 주셨다. 그래서 결국 어째 어째 스킬 연습은 자욱한 먼지 속에서 재주껏 마칠 수 있었다.


스킬 연습을 마치고 나니, 우리가 머물러 있던 먼지 구덩이에서 벗어나 진짜 바다를 보려 유영을 나간다. 바닥에 가만 앉아 있지는 못해도 오리발을 차며 앞으로 나가는 건 그럭저럭 할 만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Karin 강사님과 마오리 마스터님 곁에 바짝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재밌고, 신기하고, 또 희한하게도 편안한 느낌이었다. 각양각색의 산호와 말미잘, 수많은 물고기들도 예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편안함이었다. 이렇게 첫 다이빙부터 물속과 나는 궁합이 잘 맞았던 모양이다. 첫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와 Karin 강사님은 다시 우리에게 여러 가지 기억해야 할 주의점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바다에서의 첫 다이빙이 무사히 끝났다. 아! 이 푸르고도 신선한 태국의 바다라니! 고맙다, Young!


첫 다이빙을 마친 기쁨의 Thumb up. 쥐뿔도 모르던 때


첫 다이빙을 마치고, 다음 다이빙을 하기 전에 휴식 시간을 가진다. 배의 선원이 커다란 쟁반에 수박과 파인애플을 가득 담아 왔다. 원래도 수박을 좋아하지만, 이 수박은 말도 안 되게 달고 시원하다. 배에 탄 사람들은 우리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염치 불구하고 닥치는 대로 수박을 먹어 버렸다. 눈치를 아예 안 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수박에 손을 뻗었을 뿐. 


수박은 금방 동이 나 버렸고 (Young이 나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 파인애플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이 그닥 푸짐하진 았았던 것 같지만, 다이빙을 해서 그런지 유난히 식욕이 솟구쳐 오른다. 마오리 샘이 커다란 식용유통 같이 생긴 양철 사각통의 뚜껑을 열더니 거기서 눈으로도 꼬리꼬리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딱 봐도 불량하게 생긴 생선포를 꺼내셨다. 뭔가 두렵지만 먹을 테다! 생선포를 집어 질겅질겅 씹었다. 불량스러운 달콤짭쪼름한 맛이 흘러나왔다. 아하하, 이거 맛있잖아. 그렇게 먹고 나니 갈증도, 허기도, 불량스러운 식욕도 어느 정도 달래 졌다.




"스쿠버다이빙" 하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궁금증 - 몇 미터까지나 내려가 봤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바다 속"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아래를 보면 끝도 보이지 않고 검은 암흑만이 존재하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스쿠버다이빙을 하면 어드메까지 가겠다는 건지 스쿠버다이빙을 해 보지 않은 분들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궁금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스쿠버다이빙의 목적은 깊이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레저스포츠로서 스쿠버다이빙으로 내려갈 수 있는 깊이는 40m로 정해져 있습니다만, 그것은 안전을 위한 제한사항이지, 몇 미터를 내려가 보았다는 것은 기록을 위한 극한의 심해 탐험이 아닌 이상 중요한 사항이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인 자격증인 Openwater Scuba Diver는 18m까지, 그다음 단계인 Advanced Openwater Scuba Diver는 40m까지 잠수가 가능합니다. 여기서 "가능하다"라는 것은 인솔하는 사람 (다이브샵, 강사, 가이드)이 이들 다이버의 수준을 알고 데리고 갈 수 있는 수심을 말합니다. 


깊은 수심은 어둡고 살짝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기도 하지만, 사람의 본성이 그런지 저 아래에는 무엇이 더 있을까 호기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깊은 수심에는 얕은 수심에서 보이지 않는 수중생물들이 있기 때문에 더 다채로운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얕은 수심에는 햇빛이 더 많이 들기 때문에 작고 알록달록한 물고기와 산호가 많아서 풍경으로 치면 깊은 수심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스쿠버다이빙에서 깊이가 크게 중요치 않다고는 하지만, 많은 다이빙 포인트는 18m 이상의 수심을 탐험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다이버들은 Advanced Openwater Diver 자격증을 따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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