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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1달 간의 유럽 부부 여행 - 3. 베네치아

by 탱강사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를 탔다. 여기는 기차역 플랫폼에서도 비즈니스룩의 여자가 연신 담배를 피우는구나. 역시 이탈리아? (공항 입국심사관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을 정도니.)


도착 시간이 다 돼가나 싶더니 기차가 바다 위에 놓인 철로를 지나간다. 오오, 베네치아 들어가는 길인가? 기차가 향하는 쪽으로는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건물들이 가득한 육지가 이어져 있다. 여기까진 그냥 그런가 보다 싶었다.


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길. 정말 마을이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진 조금 색다른 풍경이네... 라는 정도


베네치아의 첫인상은 그 이전의 상상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일깨워 줬다. 007 영화 같은 데서 늘상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보트 추격전이 들어가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 멋진 곳을 어떻게든 영화에 채워 넣어서 근사한 장면을 만들고 싶었겠지. 그런데 지금 와 보니, 스크린에서 받은 느낌과는 천지차이로군!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구나!


기차역 앞 광장 너머로 바로 그냥 바다다. 그리고 그 너머에 웅장한 성당과 멋진 집들이!
기차역 건너편에 보이는 성당은 산 시메오네 피콜로라는 이름의 성당


베네치아에는 아예 자동차가 없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바포레토라는 이름의 여객선이다. 수상 버스인 셈이다.


승강장에서 가고자 하는 곳에 따라 노선 별로 선택해서 타야 한다. 으레 그렇듯이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따라가서는, 이미 타고난 후에야 우리가 원래 타려고 했던 배가 맞는지 확인을 했지.


이것이 말하자면 버스 승강장
이런 수로를 따라가면서 보는 풍경이 바로 영화에서 나오던 풍경이긴 하다.
단지 스크린에서 보던 것과는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비릿한 물 냄새도 나고. 이곳을 떠다닌다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조금 넓은 바다로 나오자 등장하는 거대한 크루즈선! 아니, 마을보다 큰 배가 이곳을 들어오는구나?!
크루즈보다 훨씬 럭셔리해 보이는 거대 요트도 보인다. 세상에나, 저런 배는 도대체...
범선처럼 보이는 배도 다니는데, 그냥 장식용은 아니어 보인다. 도대체 뭘까???
부자 나라라던 베네치아의 위상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군!
21세기 인간도 눈이 휘둥그레 해질 지경인데 옛날 사람들도 이 풍경 그대로 봤을 것 아닌가?
이곳이 그 유명한 산마르코 광장이로군!


베네치아 섬 안의 호텔은 숙박비가 비싼 편이라 베네치아 섬 바깥에 조금 떨어진 동네인 메스트레라고 하는 곳에서 저렴한 숙소에 머물면서 아침저녁으로 베네치아를 드나드는 것이 비용 절약 여행의 일반적인 유형이라 한다. 우리는 그런 내용도 잘 몰랐고, 아마 알았다 하더라도 시간과 편의성을 중시하는 취향 상 그대로 베네치아에 숙소를 잡았을 거다.


우리의 숙소는 베네치아의 가장 중요한 곳인 산마르코 광장과 멀지 않은 곳. 숙박비가 비싸다고 해도, 유명 관광지 수준의 호텔에서 등급을 조금 조정하여 합리적인 곳으로 선택할 수 있다. 시간과 편의성을 생각하자면 이쪽이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라는 건 더욱 확실했다.


우리 숙소 앞은 곤돌라들이 정박해 있어서 분주한 기운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 같다.




베네치아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산마르코 광장을 제일 먼저 찾아갔다.


어찌된 일인지 산마르코 광장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지구 온난화 때문에 해수면이 높아져서 베네치아가 물에 잠길 위기라는 얘기다. 가끔씩 뉴스에는 넘치는 물을 건너기 위해 나무상자로 다리를 만들어 둔 곳이 나오는데, 그곳은 항상 산마르코 광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물이 차올라 도시가 물에 잠기는 것은 매년 겨울이면 반복되는, 꽤나 오래된 일이라고 한다. 요즘 그 정도가 심해졌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지금은 더없이 파란 하늘에 살을 뚫을 듯한 황금빛 햇살이 광장으로 내리꽂고 있다. 찬란한 아우라가 넘쳐흐르는 광경도 좋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지.


아! 여기가 산마르코 광장!
뜨겁고 복잡한 산마르코 광장


우리는 그늘 회랑을 따라 산마르코 광장을 둘러싼 상점과 카페들을 구경했다.


베네치아에 대해서 아는 바도 별로 없고, 싸돌아다니기 바쁜 일정이라 눈으로 사진을 찍듯 하며 계속해서 움직였다. 아마 다시 가면 산마르코 광장 주변만 돌아보는 데도 며칠 쓸지 모르겠지.


흡혈귀도 아닌데 저 밝은 태양빛에 나가면 재가 되어 사라질 것 같다.
산마르코 대성당. 여기도 일단 겉만 보고 가지만... 다음엔 꼭 내부를 볼 거야...
외벽의 대리석 무늬도 비범하다. 화려한 무늬의 종합 선물세트로 지은 듯.
이 화려한 외관이 두칼레 궁전. 여기도 안에는 못 들어가 보고... 으흐흑...




이미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었다. 더 배고파지고 힘들기 전에, 맛있는 음식을 먹자 하고 음식점을 찾았다. 바다가 보이는 노변의 음식점으로 갔다. 관광객을 위한 전형적인 식당이지만 베네치아라면 분명히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을 위한 메뉴판에는 또박또박 정자체로 쓰인 한글 이름과 설명이 있었다. 문제는 음식의 정체가 뭔지 도저히 못 알아먹겠다는 거. 웃기고 재밌었지만 우리는 음식 주문을 해야 하니까. Sophy가 서버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Can I have an english "메뉴판"?"


다행히 서버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영어 메뉴판을 갖다 주더라.


"국제 카페"라는 이름에 걸맞게도...
정말 신경 써서 만든 듯한 한글로 쓰인 메뉴판
여기까진 그래도 봐 줄만 했지.
아앗! 그런데 이게 뭐람. 뭘 번역한 건지 대충 알겠다만. 이쯤 되니 다른 외국어들은 어떤 말로 쓰였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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