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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선용 May 24. 2019

먹고살아야 한다는 단상

노동자로서 요리사

처음 요리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단지 배우고 싶었고 그리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반복되는 작업들과 사사로운 규율과 규칙은 이 일을 하는 내게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숙련된 작업과 과학적인 요소들이 나에게 쾌감으로 다가와 더욱 이일에 빠지게 되었다. 어떤 철학과 신념은 없었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맞춰 어쩌면 도피하기 위해 차가운 스테인리스 공간에 나는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이라면 다 잊고 오로지 일에만 집중했으니까. 더욱 집중했다. 결과가 좋든 안 좋든 말이다. 물론 좋은 음식이 나오면 더 좋았다.

그렇게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해 이유가 되었고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많은 부분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일을 하며 나를 통제하고 통제된 상태에서 생각하는 법과 육체적 한계를 견디면서 동료들과 소통하는 법. 사실 이 부분들이 어쩌면 지금 제일 중요한 부분들이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일이 좋다고 마냥 행복하진 않다.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한 상황들과 그리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혹은 관계의 불호로 그 공간을 떠나야 했던 순간들, 허영한 야망만 가지고 오만하게 행동했던 순간들과 확실한 현실을 버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하며 감내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지금에 감사한다. 허나 본질을 잃은 채 나는 뜨거운 오븐에 머리를 쳐밖는 행동을 반복했던 지난 날들. 난 지금도 평범한 도전은 사실 와 닿지도 않지만 그 평범함이 얼마나 힘들고 유지하기 힘든지 알아가는 과정이기에. 지금 처음 하얀 조리복을 입고 들어섰던 마음과 그날의 다짐을 생각하고 오늘 주방에 들어간다. 노동하는 이의 당당함을 가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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