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들에게서 오는 전화나 회사와 관련된 여러 곳에서 전화가 수시로 오기 때문에 오는 전화를 무시할 수 없어서 다 받아야만 한다.
그래서 마케팅 전화에 가끔은 상냥하게 응대하다가
"지금은 업무 중이니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 내용을 메일로 전송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며 끊는 것을 때때로 듣는다.
며칠 전 그날도 방에서 들으니 컴퓨터를 켜고 울린 핸드폰을 들고 몇 마디 주고받더니 저 말을 하고 내려놓은 것으로 알았다. 보통 창고에서 자동차 부품을 포장해서 배송기사에게 실려 보내고 오면 집에서는 서류 작업을 해야 해서 오랜 시간을 책상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일만 한다.
딸이나 나나 올빼미형이라서 늘 12시, 1시 넘기는 것은 보통이고 딸이 유일하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은 플레이스테이션을 켜고 게임을 한두 시간 집중해서 하고는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평소보다 오래 말도 없이 게임을 하고 있어서 많이 피곤한 모양이네, 원래 막내는 게임을 하며 스토리에 말을 붙여가며 생방송으로 중계하기 때문에 진행이 잘 되는지 어렵게 안 풀리는지 목소리 톤만 들어도 알 수 있을 만큼 재밌게 한다. '하하하하...' 웃기도 하고 '아! 하!...' 안타까운 탄식도 해가며 하기 때문에 나 혼자 슬그머니 웃을 때도 많아서 내가 게임을 하지 않아도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 애가 스트레스 제대로 푸는 모양이네 하는데 그날은 조용했다.
이윽고 거실 불이 꺼지면서 열린 문 틈 사이로 얼굴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엄마~ 주무세요" 한다.
"그래, 너도 잘 자." 어? 이상하네? 고개만 갸웃하고 말았다.
브런치에 올라온 작가님들 작품 읽고 글도 쓴다고 밤낮이 바뀌어 거의 새벽에나 잠을 자는 나는 열심히 응원해주시는 작가님들의 작품 읽느라 새벽녘에 잠들었다.
저녁을 먹으며 그 날 있었던 텔레마케터와의 불쾌했던 전화 얘기를 한다. 고운 말도 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말문을 연 막내.
딸- "주식 안 해요. 전화로 듣기 그러니까 필요한 것은 메일로 보내 주세요."
마케터- "아니 매일 주식 정보를 문자로 보내 드릴 수 있어요."
딸- "아니 주식 안 합니다."라고 딸이 말하자
마케터- "사랑해 여보!" 하며 끊었단다.
알지 못하는 남자가 마케팅 전화로 '사랑해 여보' 하고 끊어 버리니 순간 [어? 이게 뭐지? 야!!!!]라고
반격을 할 사이도 없이 끊어 버린 전화에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아 잠시 멘붕이 올 정도였단다. 너무너무 바보가 된 느낌이어서 머릿속이 하얘졌단다.
"참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지? 전화를 한 저는 기분 나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완전히 넉다운시키는 방법. 와 마케팅의 고수인 것 같아." 딸은 그 전화 뒤에 몇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단다.
그때서야 게임을 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조용했던 딸의 불쾌감이 나에게도 전염인 된 듯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해서 마케팅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알지만 어떻게 저런 말을 그처럼 쉽게 할 수 있지?
전화받는 사람들 모두가 텔레마케터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 준다면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은 하나도 없을듯하다.
결혼한 여자들이 다시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전문직을 갖지 못하거나 작게나마 개인 사업을 열지 못했을 때, 사회에 나와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보험 영업이었는데 한 때는 잠시 보험 텔레마케터의 일을 한 적이 있다. 회사에서 주는 인적자료에 나온 분들께 전화해서 보험계약을 이끌어 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딸들은 엄마의 고충이 전해져 가능한 상냥하게 대하고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끊었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내게도 보험 권유 전화는 많았는데 나조차도 나의 힘듦이 상배 방에게 전해져 웃으면서 수고 많다, 나도 **지점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며 몇 마디 주고받고 끊을 수밖에 없는 현상도 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인지 보험 권유는 많이 오지 않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동산, 비트코인 투자를 권하는 전화가 대세가 되었다.
어떻게든 정보는 본인들 모르게 팔려 나가서 하루에도 3~4통의 전화를 받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요즘은 정보통신법이 강화되어서인지 예전보다는 지능적으로 바뀐 보이스 피싱, 문자 스미싱도 많고 해외에서 날아오는 광고 카톡도 가끔 있다. 식당이나 카페에 출입할 때 인적 사항 적은 것이 이미 하이에나 같은 암흑의 범죄자의 손에 먹잇감으로 들어갔나 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중의 하나인 수많은 광고성 전화와 문자들. 손 안의 컴퓨터인 휴대전화로 온갖 일을 다 처리하면서도 팔려 나간 개인의 정보로 인해서 조용한 삶에 돌 벼락을 맞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 딸이야 마케터의 한마디로 불쾌했던 감정은 시일이 지나면서 빛바래 삭아 없어지지만, 보이스피싱 전화와 문자로 수천만 원씩 한 순간에 잃고 허망하게 삶의 의지를 꺾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 나니 여간 속이 상하는 게 아니다.
엊그제 만난 퀼트선생인 친구가 남편이 보이스피싱으로 1억 2백만 원을 날렸다는 얘기를 하며 흘리는 뜨거운 눈물에 난 어떻게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해결이 된다면 함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이스 피싱은 마케팅과는 무관해 보이지만 같은 전화인지라 말을 하게 되었다.
제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간절히 바라지만 요원한 것 같아 가슴속에 화禍만 가득 들어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