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전에 다녀와서

고향으로부터 온 피카소

by 안신영

예술의 전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맑은 가을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오늘 만나게 될 그림들을 미리 축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 전시는 〈피카소전 – 고향으로부터의 방문〉.
피카소 전시는 언제나 나를 다시 미술관으로 불러들이는 힘이 있다.

피카소는 학창 시절부터 즐겨 보던 화가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피카소 전시도 떠오른다. 세 딸의 손을 잡고 전시장으로 들어서던 날, 아이들보다 더 들뜬 쪽은 오히려 나였다. 그림 앞에서 아이들은 잘 몰라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시간마저도 오래 남는 기억이 되었다.

전시를 모두 보고 나오니 입구 부스에서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게르니카>가 인쇄된 손수건을 보자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그림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날의 감정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지중지하던 그 손수건은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졌다. 잃어버린 물건 하나에 그렇게 허탈해질 줄은 몰랐다.

그날 나는 딸들에게 머그잔을 하나씩 골라 주었다.
비둘기가 그려진 컵, ‘PICASSO’가 텔레그래피처럼 새겨진 컵, 그리고 네 번째 연인 마리 테레즈를 모델로 한 <꿈>이 담긴 컵. 그림보다 머그잔을 더 좋아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아직도 또렷하다.
문득, 어른이 된 딸들이 지금 내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어릴 적과는 전혀 다른 감상과 질문들이 오갔을 것이다.

피카소를 만나는 일은 늘 경이롭다.
그는 그림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도자기, 삽화, 시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오래 붙잡은 것은 도자기였다. 도자기 공예를 전공했기에, 그의 도자기 앞에서는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졌다.

우리가 배워 온 도자기의 틀을 과감히 벗어난 형태들.
주전자의 몸통 전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삼아 돈키호테와 말을 그려 넣은 작품, 칼라 꽃의 부드럽게 말린 곡선을 그대로 살려낸 주전자. 흙 위에 그림을 얹은 것이 아니라, 형태 자체가 그림이 된 듯했다. 강렬한 색감과 자유로운 선에서 동양과 유럽의 미감 차이도 읽혔다.

피카소는 소설가와 시인들의 책에 삽화를 그렸고,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속에는 인간과 신의 삶을 생생하게 풀어 넣었다. 그림은 설명이 아니라 또 하나의 언어처럼 작동했다. 그의 삽화를 보고 있으면 이야기가 더 쉽게, 더 깊이 이해되곤 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고향 스페인 안달루시아 말라가에서 출발해 왔다. ‘고향으로부터의 방문’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 불렸던 피카소.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여인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전시장 한쪽 벽에 펼쳐진 여인들의 계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에게 여인들은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작품의 영감이자 원천이었음을. 삶이 격렬했던 만큼 그림도 변화했고, 그 변화 속에서 피카소의 세계는 더 깊어졌다.

전시는 다섯 개의 주제로 나뉘어 그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아흔둘의 생을 몇 시간 안에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의 말들이 그림을 이해하는 작은 실마리가 되어준다.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작품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 의해서만 살아 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전시의 마지막에는 스페인 왕립 사진작가 히메네스가 촬영한 피카소의 모습들이 걸려 있었다. 그림 속의 피카소가 아닌, 인간 피카소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자유롭고 고집스러우며, 여전히 무언가를 발견하고 있는 눈빛.

미술관을 나서며 생각했다.
피카소는 끝내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삶도, 예술도, 사랑도 끊임없이 변주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 갔던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고향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이렇게 먼 곳까지 와 나를 다시 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또, 다음 피카소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

*40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은 연인 젊은 예술가 프랑수와즈의 두상

*평생 사랑한 마지막 연인이면서 눈을 감기까지 곁을 지켰던 부인. 자클린의 새침하고 우수에 찬 측면상.

프랑수아즈는 정면 두상 그림이 많았으며 자클린은 측면 두상 그림이 많았다.

*전시장 앞의 현수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