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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Apr 03. 2021

노라는 아니었다고 말할래.

노라의 변명


노예처럼 살았다고?


단편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남편이라는 거대한 성안에 갇혀 길들여졌지.

결혼을 거창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

하나,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고개 드는 자아를 누르며 살았지. 그게 편하니까.

노예처럼 살아도 노예인 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한 여인에 불과했던 거야.

열망하던 문학으로의 꿈을 등단으로 이뤄내고, 세상을 다 얻은듯한 기쁨도 잠시,

문학활동도 숨 죽여해야 했지. 처음으로 밤 9시 넘은 귀가로

"며느리가 이렇게 늦어도 되느냐." 그 한마디로 위축으로 점철된 삶의 연속.


사랑하는 사람과 현해탄에 몸을 던진 '사의 찬미' 윤심덕,

남자와 대등하게 사랑하며 그 시대를 이끌어 갔던 죠 루주 상드,

추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던 동성애자 시인 사포(

sappho)도 되지 못했던 나의 자아는 무력한 마음으로 사는 거였어.

인형의 집을 뛰쳐나갈 기운도 명분도 내겐 없었어.

인형으로 사는 삶은 아니었지만 정신분열증 조차도 치열하게 나를 찾는 삶이고자 했던 거야.

내게 주어진 삶이 잡동사니 같았어도 들여다보면 기쁨, 슬픔도 공존하는 세계.

안주하듯 포기하는 삶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어.

詩人의 끈을 놓지 않은 세월을 견뎌내며 문학이라는 돌파구를 향한 꿈이라도 있기에

현실은 그저 버거운 나의 겉치레에 불과했지.

그래도 꿈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아픔이야 누구에게든 있는 거겠지?

아픔 없는 사람은 없어. 자유롭지 못했다고, 구속에서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고

다 서럽고 불쌍한 인생은 아니야.

보석 같은 아이들 그 안에 별처럼 빛나도록 보듬으며 살았지.

그게 다인 줄 알았지.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어. 터져 버릴 것 같은 심장을 이미 소유했잖아.

때를 기다리며 언젠가는 날개를 펴고 훨훨 날 수 있을 기대감으로 부풀어 살았어 조용히.

거미줄처럼 얽힌 사람들과의 속박이, 산더미 같은 일에 치이는 생활이 사람의 정신까지는 빼앗지 못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깨닫곤 했던 거야.

내게 좋아하는 음악이 없었다면, 열망하는 문학이 없었다면, 내게 소중한 아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귀족처럼 살았다고?

마음만은 늘 귀족이었다고 생각해. 난 언제나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위했지.

비록 손톱만 한 엄지공주였어도 거인처럼 살아야 했던 세월.

내가 먼저 박차고 나오진 못했어도, 비록 타인에 의해 내몰리듯 했어도

종지부를 찍고 싶은 마음의 단 1%라도,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옳은 방법은 아니었어도 지금은 오히려 감사해.

아이들과 나 자신이 옳은 숨을 쉬고 편한 잠을 잘 수 있었으니.

지나간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와 아이들도 없는 거겠지. 다만 책임지는 인간이길 원해.

이젠 하늘을 날고 싶은 날개가 돋으려는 통증을 즐기고 있어. 간지러워.

꿈을 키우는 것도 내 몫. 자유로운 마음의 향유를 실컷 누리고 싶은 거야.

새로운 사랑, 김우진과 현해탄에 몸을 던지는 윤심덕의 용기도 내게 있음을, 10년 연하의 시인을 사랑하고 아니면 가차 없이 떠나고, 앓고 있는 쇼팽을 모성으로 돌보던 낭만주의 작가 상드처럼, 여성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주어 레즈비언의 단어를 탄생시킨 사포는 되지 못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발전이라고 생각해.

억눌려 살아온 그 긴 세월의 억압이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새로운 문학으로의 완성이 되길 바라 우지. 내 정신만은 고고해서 현실을 살면서도 살짝 비켜 바라보는 객관과 주관의 조화를 그리고 싶어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명철하게 창조적으로.


헌신하지 말라고?

감사해.

죽도록 한 헌신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이젠 헌신이란 낱말을 잊기로 할래.

사랑만 할 거야.

그리워하고

보고파하고

불현듯 만나고

바라만 보아도 기쁨이 차오르는 그런 사랑을 하겠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던 어떤 시인의 말이 아니라도

난 이미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함을  깨달으며 살았거든.

그리고 감사해.

세상이 나를 바라보며 웃어 주어서.

사람들은 나를 염려하며 사랑을 베풀어 주지.

소박하게 살아가며 작은 일에 감사하기로 할 거야.

이젠 울지 않을 거야.

갈기갈기 찢겼던 상처는 이미 새 살이 돋아 나며 희망만을 노래하고 있어.

결코 어둡지만은 않은 내 삶의 뿌리. 새로운 삶으로의 여정이 기다려주는 곳,

문학 그가 초대하는 길로 가볍게 떠날 거야.

(*만만하지 않았던 세월에도 나를 견디게 했던 문학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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