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먹는 즐거움
여행의 즐거움은 결국 먹는 데서 완성되지 않을까.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맛을 만나게 될까, 출발 전부터 괜히 들뜨고 기대감이 차올랐다.
여정의 첫 식사는 담양 관방제림의 국수거리였다. 멸치 육수의 잔치국수는 맑고 시원했으며, 함께 나온 부추전은 바삭하니 자꾸만 손이 가 한입 두 입 먹다 보니 접시가 금세 비어갔고, 정작 저녁 식사인 국수를 남기게 되어 조금 미안해졌다.
이튿날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아침 식탁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신선한 채소 샐러드, 정아 씨 남편이 직접 구운 통밀빵, 그리고 향숙 씨의 특허품 당근 라페, 갖가지 챙겨 온 샐러드 재료들. 글벗들의 손길로 준비된 식탁 앞에서 괜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 마음을 숨기듯 헤헤 웃으며 좋아하는 샐러드를 아낌없이 먹고, 접시에 남은 소스까지 설거지하듯 빵으로 싹싹 문질러 먹었다. 때맞춰 정아 씨가 내린 커피가 입안에서 천천히 퍼지자 여행의 여유를 완성시키는 기분이 드는 최고의 아침이었다.
점심은 어제 함께 하지 못한 죽녹원을 혼자 걷고 난 뒤에 이어졌다. 목적지는 ‘윤선도 11대손이 운영한다’는 전통식당. 그곳은 간판보다 설명이 더 인상적이었다. 설명을 읽는 동안, 알 수 없는 기대가 천천히 마음을 채우며 단정한 장독대와 낮은 툇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 순간, 오래전 외갓집에서 뛰놀던 기억이 스며오듯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곳은 향숙 씨가 남편과 여행 중 우연히 들렀다가 반해, 꼭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며 안내한 곳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대통영 밥상> 반상은 놀라울 정도로 풍성했다. 처음 접해보는 홍어삼합에 전복찜, 육전, 낚지 탕탕이, 새우튀김, 보리굴비까지....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의외였던 것은 홍어삼합이었다. 삭힌 특유의 향 때문에 겁을 냈지만, 입에 넣자 불쾌함 없이 오히려 조화로운 맛이 남았다. 한 접시가 더 나온다 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쇠고기 전골은 향이 깊었고, 그 안엔 버섯과 채소가 아낌없이 들어 있었다. 반찬들은 간이 세지 않고 심심해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배추김치는 구매욕이 일어날 정도로 맛이 있고, 열무김치는 질기지 않아서 모두가 좋아했다. 된장국은 구수하면서도 시원했다. 음식 하나하나 흠잡을 데 없었고, 먹는 동안 우리는 허겁지겁이 아니라 천천히 감탄하며 숟가락을 움직였다.
결국 보리굴비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여행가방 속으로 들어갔고, 서울까지 따라와 며칠 동안 밥상 위의 주인공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이번에도 정아 씨가 넉넉히 준비해 온 통밀빵과 차를 나눠준 덕분에,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나는 샐러드와 빵으로 느긋한 식탁을 이어갔다. 여유롭게 즐기는 찻잔 위로 번지는 꽃차 향은, 여행의 따뜻한 기억처럼 오래도록 머물렀다.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