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새 사진은 내가 찍는 것이었다.
산책을 하다 청둥오리나 왜가리를 보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몇 년이 지나자 딸이 먼저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엄마, 창릉천에서 본 오리야.”
“왜가리가 완전 부동자세야.”
“먹이 놓칠까 봐 한눈도 안 팔아.”
사진이 몇 장씩 따라온다.
나는 그걸 오래 들여다본다.
요즘은 참새 사진까지 온다.
카페 창가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참새.
빵부스러기를 기다리며 가까이 내려앉은 모습.
“엄마가 궁금해할까 봐.”
그 한마디에,
사진이 조금 더 오래 머문다.
가끔은 딸 사진도 온다.
"엄마가 날 보고 싶어 할까 봐."
나는 그 사진을
쉽게 닫지 못한다.
웃는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이고
반찬 사진에 싱긋 미소 지어진다
"오빠가 좋아하는 반찬 만들어 줬어요."
좋아하는 미역국, 딸이 먹고 싶은 나물 반찬을
센스 있게 만든 사위.
어렵게 살았던 구세대 나와 달리
서로 잘하는 걸 나눠하는 합리적이고 현명하다.
참 고맙다.
가끔은 낯선 새들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한다.
되새의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에
"넌 내 딸을 닮았구나."
이국의 오리 사진엔 마음이 아프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새를 찍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딸이 보내오는 새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낯설거나 익숙하고 귀여운 새들이
반갑게도 드문드문 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