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눈이 많이 내리면 운천에 있는 산정호수로 선영 엄마와 온천 여행을 했던 일이 생각난다.
선영 엄마와 알고 지낸지도 벌써 4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양쪽의 둘째 딸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중학교도 같은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했으니 긴 시간을 알고 지냈음이 분명하다.
2001년 초에 부산생활을 정리하고 애들하고 서울로 이사와 생활을 하다가, 선영 엄마도 두 딸의 학교로 인해 서울로 이사와 살고 있음을 뒤늦게 알고는 얼마나 반가웠던지.
두 사람의 이사 형태는 내용이 다르지만 모두 아픔은 조금씩 있었다.
부산에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졸업 무렵부터 모임을 하며 매월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부부 모임도 함께 한 적이 있으니 막역한 사이라 할 수 있다.
경기도 포천의 운천이라는 소읍에서 지인이 일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는데, 낯선 곳이지만 문학 작품에서 본 산정호수. 산속의 우물이란 뜻인 산정호수는 주변의 풍광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었다. 늘 가고 싶어 하며 동경하던 곳이라서 선뜻 허락을 하고 지인의 사무실에서 일 년 정도 일을 하게 되어 틈이 날 때마다 호야와 함께 호수에 올라가 둘레길을 산책을 하기도 하고, 리조트 안에 있는 온천에서 온천욕도 즐기며 지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선영 엄마가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호수와 리조트의 온천에 데려갔더니 엄청 좋아했다. 그 후에는 서울로 돌아와서도 가끔 그곳엘 갔다. 우리들은 똑같이 온천욕을 좋아하고 수영장이 있어서 수영도 하며 즐거운 추억 쌓기를 하기도 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내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 뒤로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온천에 함께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오게 되면 저녁에 올라와 선영 엄마와 함께 자고 새벽에 일어나 산 정호수로 출발하여 온천욕을 즐기고 민물 매운탕과 묵사발로 유명한 그곳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곤 했다. 선영 엄마가 운전을 잘해서 나는 옆에서 길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하고 선영 엄마는 운전을 하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다시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선영 엄마가 알았을 때 함께 온천에 가자는 약속을 먼저 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도록 서로가 시간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서울 생활 접고 부산으로 다시 가야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많이 서운하다며
"아영 엄마 가기 전에 온천은 꼭 하고 가야 해요."
"그래요. 꼭 온천 갔다가 내려갈 테니 염려 말아요."
그렇게 말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몇 주 전 전화를 걸어
"선영 엄마 주말에 온천 갑시다."
"어쩌누?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될까? 선영이랑 여행하고 있는데..."
"그래요. 다음에 가지 뭐."
어저께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일기예보가 하도 요란하여 우리는 우울해하며 다음에 날씨 좋을 때 갑시다, 했는데 날씨는 춥지도 않았으며 비와 눈도 오지 않고 포근했다.
어제 막내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날씨가 너무 좋아 억울하다는 듯 전화가 왔다.
"아영 엄마 날씨가 참 좋다. 안 좋을 거라더니."
"그러게요. 예보에선 동장군이 온다고 겁을 냈는데..."
"그럼 우리 내일 온천 갑시다."
"그래요. 첫 예배 마치고 바로 센트럴로 갈게요."
오늘은 운전을 하지 않고 시외버스로 움직이기로 했다.
2시간여를 운전하여 가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한 번씩 갈아타야 하는 불편한 일이 있지만 오히려 여유로운 여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포근해서 차 안에서는 더워 외투와 장갑을 벗어야 했다.
금요일 저녁 서울에는 비가 내렸는데 그곳엔 눈이 왔었는지 산에 들에 눈이 쌓여 있다.
안개와 눈이 많은 고장이라서 겨울엔 눈을 질리도록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리조트 마당으로 들어서니 전나무에 녹지 않은 하얀 눈이 솜털을 얹은 듯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서서 반겨 주어 난 어린애 마냥 뛰어가 사진을 찍었다.
난 걷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기도 했고 생각이 많아 호야랑 매일 같이 그곳의 개울가를 산책하고, 산정호수를 한 바퀴씩 도는 걷기를 했다. 호수 둘레 아래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가파른 길로 올라 가면 오른쪽에는 김일성 별장이라는 건물을 지인이 일러 줬는데 6.25 전쟁을 치르면서 별장은 사라졌고 매점 비슷한 것으로 바뀌어 운영이 되는 듯했다. 풍광이 좋은 곳이라서 김일성도 탐을 내서 별장을 지었었나 보다. 호수 위로는 유명한 명성산이 있는데 명성산은 일명 울음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궁예가 건국 11만에 왕건에게 쫓기어 이 곳에 피신하다 1년 후 피살된 곳으로 알려져 있고, 궁예의 말로를 이산의 산새들이 슬퍼해서 명성산이라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또 전국의 5대 억새 군락지에 속해서 5만 평의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고 주말이면 억새 축제기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람의 물결로 넘쳐 났지만 한 번도 억새를 보러 산으로 올라가지 않았던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지난달에 만났던 선영 엄마가 올 해가 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자고 했는데 산정호수로 온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떻겠느냐 해야겠다.
* 눈꽃 전나무
*산정호수에서 내려오는 폭포. 철분이 많아서 바위가 붉게 물들어 있다.
*겨울바람에 흔들이는 갈대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