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선글라스)을 쓰고

멍이 듦, 총체적 난관

by 안신영


막내 내외가 오기로 한 날이어서 콩나물밥을 하기로 했는데...


콩나물은 어젯밤 사다가 다듬어 놓았기에 교회 다녀오는 길에 쇠고기와 수저 한 벌 사 오면 되는 일.


어제 하루 종일 아픈 다리 마사지하며 찜질을 하고 나서 좀 나아졌다 싶어 조금 먼 길에 있는 마트에 다녀왔는데, 마음에 드는 수저가 없어서 에스프레소 잔 두 개와 와인을 사들고 온 것이 전부다.

찬 바람을 무릅쓰고 걸으며 돌아갈 때는 택시를 타야겠다며 마트에 들어갔다. 북적이는 인파는 대보름 전날이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바람이 차고 걷는 게 여의치 않아 택시를 탈까 했는데 오히려 올 때는 바람이 잠잠해서 그냥 걸었었다.


이런저런 일로 인해 컨디션은 별로인 것 같다.

입안은 헐어 부어 있고, 걷는데 빙판에 미끄러져 부딪힌 허벅지가 아직도 통증이 간간이 온다. 마트가 쉬는 날인걸 아침에서야 깨닫고 교회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 타고 백화점으로 향한다. 정육코너에서 쇠고기 다진 것과 닭날개 한팩을 사든다.

애피타이저로 상추와 참치를 곁들인 샐러드, 그리고 콩나물밥을 메인으로 생각했는데 잠시 생각이 바뀐다.

콩나물 밥은 양념장을 만들어 담아 주며, 재료도 다 싸주고 집에 가서 만들어 먹으라고 해야겠다.

캘리포니아롤을 보니 새로운 메뉴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어와 새우 초밥, 캘리포니아롤, 야채 쌈밥 세트를 준비한다. 애들도 좋아할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수저 한 벌을 사기 위해 10층까지 올라가서 좋은 수저 한 벌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샐러드 준비를 한다. 육수를 빼기 위해 어제 아몬드와 호두를 사면서 얻어 온 북어대가리를 멸치와 함께 끓인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아이들.

나의 계획을 얘기해주며 이런 메뉴도 괜찮지?

하면서 준비한 음식을 차린다. 그 사이 양념해 놓았던 닭날개를 직화구이에 올리고 불을 조절한다.

아이들은 오히려 좋아했다.

"마트에서 이런 것 먹고 싶어도 뭔가 찝찝해서 사 먹지 못했어요."

"아침 일찍 같더니 밥이 따끈따끈 하더라. 맛이 괜찮아. 전에 한 번 사다 먹은 적 있어."

다행히도 아이들이 맛있게 잘 먹어 주니 고맙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날개도, 샐러드와 함께 잘 어울렸다. 뒤늦게 와인을 꺼내 입가심으로 한 잔씩 하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콩나물밥 재료는 전부 쇼핑백에 담아 주고, 국물 만든 것도 페트병에 적으나마 넣어준다. 큰 딸이 챙겨준 참치 통조림을 넣어주며


"이거 부산서부터 갖고 왔어. 언니가 너 주라더라."

"참치 좋아하는데, 김치찌개도 하고 여러 가지 만들어 먹으면 되겠네."


그렇게 애들은 본가로 떠나고 혼자 남아 창문을 열었다 닫으며 조용히 독서에 열중한다.

잠시 쉬고 나서 찬장 밖으로 나왔던 그릇들을 정리하며, 찬장 높은 곳에 올려야 할 그릇인 야채 바구니 세트를

들고 둥근 의자에 발을 올리는 순간 의자가 넘어지며 나는 바닥에 나딩 그러 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한참을 꽁지뼈 쪽이 얼얼해 정신을 못 차리고 사태를 파악하느라 가만히 있는다.


손으로 더듬더듬 만져 본다. 뼈엔 이상이 없는지, 통증이 심해지는지 감지하기 위해 천천히 일어나 본다.


천만다행으로 골절은 안 입은 것 같은데 의자에 부딪친 정강이 아래쪽에 움푹 파인 자욱이 있고 금세 멍이 들었다. 집에서 응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타박상에 바르는 마사지 크림으로 마사지하는 일 외엔 없다.


지난겨울 빙판에 엉덩방아 찧고 눈길에 넘어지지기를 몇 번이었나?


금요일에도 침 맞고 통증이 심해져서 들어오는 길에 한의원에 들려 간호사가 발라주는 약을 바르고, 달인 약 두 첩을 받아와 먹고 겨우 통증이 멎는다 싶었는데 또 사고가 났다.

지난해 끝 달에 일어 난 사고 두 번, 이 달에 또 한 번, 다시 오늘의 사고.

꽤 조심성이 있다고 자부해왔는데 요즘은 툭하면 빙판에 넘어지고, 눈길에 넘어졌다.


오늘의 사고는 대형 사고.

내일 아침이 걱정이다. 출근을 제대로 할 수 있을는지 걱정이다.

부위가 특별해서 침을 맞을 수는 있을지.... 아마도 정형외과로 가야 할 것 같다. 내일은

수개월 동안 침을 맞으러 다녔고, 주말엔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며 겨우 몸을 추슬렀고,

마지막엔 보름간 먹을 한약을 맞췄다. 나 스스로 나를 위한 한약을 짓기는 난생처음이지만 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안간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약도 열심히 시간 맞춰(?) 먹었다. 걸핏하면 잊어버리는 탓에 한 번씩 거르기 일쑤지만 마치 그 한약을 다 먹고 나면 체력이 왕성해질 것 같은 느낌이 충분했다.

한의원 담당 선생님이 얼마나 친절히 침을 놓아주시고 나의 기력 회복에 신경을 써 주셨던지. 정성에 감복을 한 나였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 침을 맞지 않고 수영을 하면서 근력을 키우기로 했지만 수영을 하다 감기에 걸려 그것도 중단되었다. 한 달에 4번밖에 가지 못했다면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 변명해야 하나?


기운 없던 나는 물속에 들어가면 기운이 펄펄 나는 체력이다..


조심해야 하는데 괜찮다고 느끼면서 무리를 했다 하면 바로 몸살이 났고, 감기가 들어 수영장을 지나쳐 집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슬픔에 빠졌다.

워낙 수영을 좋아하는데 체력이 바닥인 데다 앓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은 감기 몸살이 재발되어 3월 한 달 4번 수영을 했다.

4월도 여지없이 수강신청을 했지만 연기하고 5월에 있을 둘째 딸 결혼식 끝내고 6월부터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쉽지만 따라 줄 수 없는 체력이 가장 문제니까 참자.


한약을 먹으며 식사량을 늘리라는 원장님의 말씀을 떠올리고는 애를 쓰며 많이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다. 음식도 여럿이 먹어야 맛이 있고, 가족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있어줘야 만들게 되는데 혼자 있다 보니 음식은 잘 안 만들어지고 간편한 음식만 만들어 먹게 되니 식사량도 늘지 않는다. 그래서 늘 저녁을 동료와 함께 먹고 들어 왔다. 한참 동안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을 먹는 일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밥을 사 먹는 일도 어쩌다 한 번이지 자주 할 일은 못되었다. 어떤 식당은 장바닥같이 소란스럽고, 입에 맞는 음식이 있는 곳은 음식값이 너무 비싸다.


그래도 한약의 효과가 있는지 밤에는 절대로 물 이외에는 대지 않던 음식을 입에 넣고 먹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치즈와 와인 한 잔씩 하면서 체중이 불어나기를 고대했다.

그렇게 지내면서 조금은 살이 오른 것도 같았는데 난 여전히 세상 밖을 뛰쳐나가기엔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가슴속에 열정의 불덩어리를 수년 동안 억누르며 감추고 살아왔는데, 작년부터 서서히 가슴속의 불덩어리를 밖으로 표출해내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그러면서 좌충우돌하는 나 자신을 본다.

몇 년 동안 앓았어야 할 아픔을 한꺼번에 거의 죽을 듯이 심하게 앓고 났다.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것 같더니 이젠 넘어지고 떨어지고, 부딪치는 악순환이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 세상으로 나가는 길은 험한 것인가 보다.

그리고 그때 사고가 끝인 줄 알았다.


악! 빌딩 유리문에 사정없이 부딪쳤다.

사무실에 출근을 하다가 딴생각을 했는지 늘 다니던 유리문을 밀어 들어가지 않고 고정문에 얼굴부터 디밀다 꽝!!

어떤 모습을 볼 때는 한없이 완벽한 보습을 보이면서도 너무나도 허술한 자신을 종종 느끼는데, 지금의 나를 보면 허술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웅크렸던 세월의 부피만큼 내 몸이 쩔쩔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이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지탱하고자 했던 나의 몸은 지금 비로소 자유롭기 위한 몸부림으로 고정 유리문을 세상 밖으로 나가는 환한 문으로 보고 나가기 위해 부딪치고 탁구공만 하게 부풀어 오르고, 시퍼렇게 멍이 들고 그것들이 가라앉으며 아픔과 멍이 차츰차츰 가라앉아 제 피부색을 찾아가는 동안 제정신을 차리는 시간을 벌어 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언뜻 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얻어맞았다고 하겠다 다들."

"그럼 그렇다고 하죠."


뭐가 대수인가. 남편에게 맞았으면 어떻고, 부딪쳤으면 어떤가?


막내딸이 한 참을 쳐다보다 하는 말


"어쩜 그렇게 강아지 눈을 닮았어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퉁퉁 부은 눈, 시퍼렇게 멍든 눈이 너무 순한 눈빛이라나?


밍크 딸은 여전히 엄마바보인 것이다. 하기사, 어떤 이도 몇 년 전 찜질방의 양머리 사진을 보고서 "저 눈빛을 어쩔 거고?"라고 한 적이 있기는 하다.


하여 요즘 눈이 멍든 핑계로 색안경을 쓰고 다니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며 근무를 하기 때문에 저녁이면 눈이 시리고 따가워 그저 감고만 있고 싶은데, 엷은 아침 햇살에도, 구름이 끼었어도 괘념치 않고 색안경을 쓰고 다닌다.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보는 일도, 전자책을 보는 일도 당분간 중지되었다. 시력이 좋지 않아 선글라스를 쓰고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눈은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햇살에 눈부심도 없을뿐더러, 어둠이 깔린 저녁에도 시침 뚝 떼고 흔히들 말하는 공항패션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선글라스를 쓰고 퇴근을 한다. 아마도 눈 성형을 했을 것이라고 상상들을 할 것에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 워낙 흔한 성형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이럴 때는 상당히 편리하다.


보고 싶지 않은 풍경조차 한 겹 걸러서 눈에 들어오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직접 마주치지 않으니 한결 편하다.


이러한 과정들을 겪으면서 내 몸, 내 정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부딪쳐서 멍이 들었을 때 특효약은 꿀이 제일이라고 가르쳐준 친구의 말을 듣고 꿀을 틈틈이 발라 주어 몰라보게 멍이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덕분에 생전 처음 꿀을 얼굴에 발라보는 호사를 누린다.


내 열정의 불덩어리는 툭 건들기만 해도 터지는 봉숭아 씨앗주머니처럼 툭툭 터지고 있는 것일까?

글 한 줄도 남편의 검열을 받고, 문학 활동도 어른들의 눈치 속에 마음 졸이며 했다. 혼자 하는 밤의 외출도 절대로 하지 못했던 세월을 바보처럼 말없이 보내고서 이제,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으며 누구의 간섭도 필요 없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비로소 나로 돌아와 살고 있는 것일까 하고 자문해 본다.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말이 있다.

어떤 것에 대해 그릇된 발상? 말하자면 본질을 알려하지 않고 선입견에 가려져 올 바르지 않은 시선으로 대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혹여라도 주위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까 봐 주의하라는 것이었다면 내겐 너무 가혹했다는 생각을 뒤늦게 해 본다.

지금의 삶은 주위의 색안경을 신경 쓰지 않는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폐 끼치지 않고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201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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