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이야기
3화. 그리다. 그리고, 기도하다.
엄마는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었다. 엄마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보다는 동양적인 추상화를 더 추구하셨던 것 같다. 내 기억 속 엄마의 그림들은
항상 거실과 안방의 가장 큰 벽면을 차지할 정도로 큰 그림이었다.
기억에 남는 그림 두 점이 있다. 눈물을 흘리는 소의 등허리가 바다로 표현된 그림 속 아이는 뱃머리에 앉아 등불을 들고 수평선을 향했다.
또 한 그림은, 나를 모티브로 했었는데, 날 닮은 한 아이가 연꽃을 들고 한껏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에 찬 그림이었다.
엄마는 항상 그림을 부엌의 한편에 두고 그렸었는데, 그때마다 스케치 위에 스케치를 계속 덧대며 그림을 그려나갔다. 이제 와서 생각하기에 엄마의 그림은 매번 스토리가 덮혀져 매일 새로운 그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엄마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색체에 대해 자신이 없다고 하시며, 엄마는 배워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내면에서 그때그때 일으켜지는 색을 쓴다고 하셨다.
내면에서 떠오르는 영감으로 색을 고르는 게 아니라, 불현듯 떠오르는 어떠한 색체에 대한 이끌림을 통해 자의보다는 어떠한 끌림에 의한 붓질을 기법으로 쓰신다는 말이었다.
훗날 알게 된 명상법에 라티한 명상법이라는 오쇼 라즈니쉬의 명상법이 이런 자동기술법에 의한 명상이라고 알게 되었는데, 엄마는 무의식 중에 이런 끌림에 의한 그림을 그리셨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엄마가 미술 선생님을 그만두고, 인도로 향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엄마는 인도의 유명한 오쇼 명상센터에서 마스터(한국의 사범 격) 에게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는 후문도 들었다.) 이 일담은 후에 담기로 한다.
어쨌든 내 기억 속 미술선생님으로서 엄마의 그림 은 일반적인 미술의 범주라기 보다는 엄마의 심미적 체험의 표현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 가부장적인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는 힘겨움을 표현할 곳이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그림을 통해 엄마의 내면과 계속 조우를 하면서 엄마의 삶에 존재했던 많은 고민들을 스스로 그려나갔던 것 같다. 이 과정이 엄마의 신에 대한 사랑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어린 나에게나 지금의 나에게나 그 당시 엄마의 그림은 소리 없는 기도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