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세요?"
나는 종종 소개팅에서 저런 굳어버린 찰흙 같은 질문을 상대방에게 던진다.
(물론 얘깃거리가 떨어졌을 때만)
그러면 여성분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인데, 무라카미를 모르거나 좋아하거나,
아니면 잘못 알고 있는 경우다. 당연하겠지만.
언젠가 내 물음에 "그 작가 야한 소설을 주로 쓰는 분 아닌가요?"라고 말했던 분이 있었는데,
나는 그분의 잘못된 이해에 대해 설명하려다 조용히 커피나 마셨던 적이 있다.
소설에 딱히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녀에게 괜히 설명충이라는 비난을 듣기는 싫었고
하루키 소설에는 분명 다른 작가들 대비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오기도 하는 건 사실이니.
그녀가 "그래도 야한 소설이지 않나요?"라고 되묻는다면 딱히 할 말도 없다.
(참고로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훨씬 야하다.)
나는 하루키의 팬으로, 그의 작품을 대부분 읽었다. 이십 대 초반부터 이십 대 후반까지 근 10년간
나는 그의 소설을 꾸준히 붙잡고 있었다.
IQ84부터 상실의 시대, 어둠의 저편, 여자가 없는 남자들, 그 외에 단편집, 에세이.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따로 적어 모아두는데, 하루키 문장이 가장 많다.
그의 화려하지 않은 하드보일드, 거기에 유머러스함이 가미된 그런 문체와 글 소재, 심플한 흐름을
나는 좋아하는데, 이런 걸 그의 작품이 야한 소설이라고 알고 있고 사람에게 제대로 설명하기엔
내 능력이 부족하다.
하루키는 29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교통사고처럼 일순간 일어난 욕망에 의해서였다.
불현듯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데,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서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해된다면 되고 안 된다면 안 되는 그의 충동.
그는 그날부터 야심한 새벽에 맥주를 마시며 글 쓰기에 집중했고,
그의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일본 군조 신인상을 영예를 얻으며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그 당시 운영하던 재즈 카페도 문을 닫고 글쓰기에 열중했다.
사활을 건 그는 헐크처럼 거대하게 성장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다.
그가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고 나갔을 때가 29살이니 현재 내 나이다.
하루키의 그런 과거는 끊임없이 나를 상기시킨다.
"너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목표를 못 따라가는 재능과 현실에 대한 회의 같은 거 랄까.
빛바랜 내가 쓴 초라한 소설과 글을 보면서,
재능 없는 늙은 작곡가의 음표를 바라보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든다.
그럼에도 자신의 인생 목표를 이루는데, 동일 영역 위인의 인생 전기를 아는 건,
자신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이 됨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그가 내 나이 때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거지? 나도 다시 추슬러보자고"
이런 식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위대한 인물과 그 업적을 이룬 그들의 나이가 있다.
의상 디자이너가 꿈인 여성에겐 코코 샤넬이 그런 인물일 거라 생각한다. 코코 샤넬은 27세에 의상실을 연 후 점차 유명해져 지금의 샤넬 브랜드를 만들었다. 만약 내가 코코 샤넬에 대해 무지했을 때, 소개팅에서 코코 샤넬을 꿈꾸는 여성분이 "코코 샤넬 좋아하세요?"라고 내게 물었을 때,
"코코 샤넬? 샤넬이요? 알죠, 엄청 비싼 가방 브랜드 아닌가요?"라고 답한다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에게 코코 샤넬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줄까?
그건 역시나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이건 이렇고요, 저건 저렇고요 하며 살아있는 눈빛으로 내게 설명한다면
그녀는 충분히 멋져 보일 것 같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