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예술가이며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사진작가 그리고 각본가인 다재 다능한 아네스 바르다가 최근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남긴 필름 속의 소소한 풍경들은 자연과 사람의 본질과 예술의 역할과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며 사람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선사해왔다. 거대한 문명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담아냈던 바르다의 시선을 다시 한번 따라가보며 앞으로 예술과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을 나눠보고자 한다.
광부와 광촌, 마을의 전령사 우체부, 공장의 직원들, 철거되는 마을의 마지막 거주자가 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너무도 일상적인 풍경과 모습들이 빠르게 변하는 것을 보며 허탈함과 무력함을 느낀다. 여기서 이들의 말과 표정을 통해 가치의 상실을 느낄 수 있다. 일상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인간은 자신의 기억이 소멸되기시작함을 느낀다. 기억을 잃어버리기보단 기억의 주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소멸은 생동감 넘치는 우리의 표정과 특정한 장소에만 반응하는 감정들을 사라지게 한다. 우리의 기억의 대부분은 결국은 우리의 삶의 과정과 함께한다.
무엇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하는가? 우리가 살아온 장소가 변화할 때 우리의 감정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리고 만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곳. 나를 나답게 만드는 곳. 우리의 얼굴과 표정들은 이 모든 시간과 장소들의 부산물이다. 매개체이다. 기억이다. 추억이다. 그리고 정체성이다. 수 많은 시간과 감정의 조각들이 모여 우리의 얼굴과 표정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살아있는 표정과 얼굴의 형태는 완성되어간다. 더 많은 세월을 담을 때 또 다른 굴곡과 음영이 드리우겠지만 그것도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과 장소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수 많은 감정들이 우리의 얼굴을 만들어간다.
자전거를 타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동차로 우편물을 배달하게 된 우편배달부. 과거의 모습과 시대상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의 말 속에 흩어지고 있던 과거의 조각들이 역사라는 찬란한 이름아래 모아진다.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은 결국 잊혀짐을 방치하던 우리와 세상의 책임이 아니던가?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이들의 발자취와 피와 땀으로 시간과 함께 성장했던 장소들. 아네스 바르다는 이들의 가치를 너무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우리의 시간은 함께 있음의 역사이다. 마을도, 도시도, 시장도, 공장도, 농장도, 광촌도 모두 사람들과 장소의 역사라는 것을 바르다는 JR의 사진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벽을 멋들어지게 장식한 수 많은 이들의 얼굴들은 이 시대의 표상이다. 역사의 증거이며 시간의 기록이다. 미래의 지형도이며 인간의 본질이고 순환되는 가치의 흐름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차츰 사라지고 있는 옛 모습들은 인간의 모순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거울보다 더 적나라한 표정의 사진들은 기쁨과 설레임 그리고 슬픔과 상실을 표현함으로써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거리의 예술도 결국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그러기에 거리의 예술의 대상이 된 이들 그리고 자신만의 색채와 철학을 담는 예술가들 모두 보호받아야 할 대상 들이다. 예술은 언제나 인간의 희로애락과 사상, 철학, 그리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쳐왔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다양한 색채에 담아 사람이 살고 걷는 거리에 그 아름다움을 여지없이 쏟아낸다. 바르다는 그러한 풍경 속 주인공인 사람을 보았고 JR은 그들을 사진에 담아 거리와 공간을 품는 매개체로 펼쳐 보였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언제나 새로우면서도 익숙하다. 각 국가별로 전 인구의 60%이상이 점점 도시로 몰리는 도시화 현상이 지속되면서 점점 익숙했던 자연과 풍경 그리고 본질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바르다가 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을 여행하며 담고 싶어했던 것들은 바로 인간다운 모습, 자연과 사람이 아닐까? JR은 그러한 바르다의 마음을 사진과 벽화를 통해 사람의 호흡이 담겨있는 숨쉬는 작품으로 보여준 것이다. 우리 자신의 얼굴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색과 빛의 아름다움에 더 열광하고 몰입하는 이유는 우리의 얼굴과 모습이 형형색색의 빛 대신 단조로운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마치 치열한 현대사회의 일면처럼 말이다. 예술은 인간의 자유로움과 창의로움을 끝까지 지키고자하는 최후의 마지노 선이 아닐까라는 조금은 서글프지만 일말의 희망을 담은 마음을 피워본다.
모든 기술의 중심에는 목적이 있고 방향이 있다. 또한 기술의 과정에서 언제나 기술에 의미를 더하는 것이 바로 데이터이다. 예술은 언제나 작품을 남겨왔다. 그 작품 속에는 예술가들의 피와 땀이 베어 있고 창작자와 그 대상이 살아온 인생의 여정과 굴곡 그리고 시간들이 조각조각 맞춰져 하나의 통일된 색으로 보여진다. 만드는 이와 보는 이 모두에게 의미와 깨달음 그리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가치중심적인 활동이 바로 예술이기에 이렇듯 고고한 가치를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바로 기술의 진정한 가치 구현이지 않을까?
항만에서 일하는 아내들의 모습을 컨테이너 벽화를 만든 바르다와 JR은 그 작품을 항만의 토템이라 칭했다. 대형 컨테이너들이 쌓여서 만든 토템 사이에 작품 속의 주인공들인 세 명의 아내들이 각각의 컨테이너 칸에 앉아 새처럼 팔을 휘이 저으며 비로소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장면은 인간 본연의 모습과 얼굴을 되찾아주는 예술의 위력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얼굴이 칠해진 컨테이너 위에 앉아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전에 예술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 룩셈부르크 무담 국립현대미술관장인 수잔 코터는 예술은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바르다와 JR은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잃어버린 얼굴들과 장소의 모습을 되찾아줬다. 예술은 사람과 인생을 이어주는 통로이며 자유를 위한 최후의 보루이다. 예술의 가치를 지켜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