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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 Surgeon Jan 17. 2020

죽음을 향해 가는 환자 되돌리기

외과의사의 마음

그로부터 3주의 시간이 흘렀다.  

평소 건강했던 그였기에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애써 태연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나 싱거운 농담을 건낸 후 짖는 쓴 웃음 뒤에 비쳐지는 그의 슬픈 눈빛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간 상태를 평가하는 점수인 MELD 점수가 만점 (40점)이 된 지 3주째가 되면서 죽음의 문턱에 바짝 다가서는 듯한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환자는 건강했었고, 가족 부양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가장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황달로 병원에 내원한 것이 그의 생애 몇 안되는 병원 방문이었다. 병원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명들이 쏟아져 나왔다. 간경화가 심하게 진행되었고, B형 간염으로 인한 간부전으로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믿기지 않았다. 애써 부인하였다.

 



내가 환자를 만나러 응급실에 방문한 것은 두 달 전쯤이었다. 소화기내과에서 간이식에 대하여 면담을 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온 몸과 눈 흰자위가 노랗게 변하여 있었고, 복수로 인해 복부는 남산만큼 커져 있었다. 간이식이 필요함을 설명하였으나 본인은 그냥 약물 치료하다가 퇴원할 것이라고 더이상의 면담을 원치 않았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나서 그가 외래 진료실에 방문한 때였다. 환자는 내과적인 치료를 받았으나 간기능의 큰 호전 없이 퇴원을 하였다가 내 외래로 내원한 것이었다. 황달과 복수는 남아 있었으나 거동이 가능하였고 의식도 명료하였다. 그러나 그날 시행한 혈액검사에서는 이전에 보이지 않던 신장기능 저하를 보이면서 MELD 점수 37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간신증후군이 온 것이다. 나는 당장 입원을 권유하였고, 당장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곧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 올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환자에게는 외동딸이 있었고, 입원과 동시에 딸의 기증자 적합성 검사를 시행하였다. "우리 딸 예쁘죠?"하며 태연한 척 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지난번 보다 더 마음이 약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딸의 간은 기증에 적합하지 않은 크기와 모양을 하고 있었다. MELD 점수가 높으니 뇌사자 간이식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며칠을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환자에게 좋은 성탄절 선물이 올 것이니 기다려 보자고 하였다. 그러나, 1주가 지나고, 성탄절도 지나고, 새해를 맞이할 때까지 뇌사자 소식은 전혀 없었다. 작년부터 뇌사자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이 정도일 줄이라곤 상상도 못하였다. MELD가 40점이 된 채로 3주가 지나면서 환자는 의식이 혼탁해지고 공격적인 성격을 보이기 시작했다. 간성뇌증(간성혼수)이 온 것이다. 신장기능도 나빠져 혈액투석이 필요한 단계까지 이르렀다. 주말 사이 환자를 중환자실로 내리면서 더이상은 가망이 없을 것이라 직감했다. 이대로 이식을 못 받으면, 뇌가 부어 뇌손상이 일어나 간이식을 하더라도 회복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환자의 이복동생의 아내가 간을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응급으로 기증자 검사를 시행하였고, 기증 수술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토요일 오후에 응급으로 간이식을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의식을 잃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혈액투석기까지 달고 있는 환자를 보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살릴 수 있을까? 수술 전 뇌파검사에서는 좌뇌에 이상 소견이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간이식을 하고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래도 지금 이식을 하지 않으면 저 환자에게 다른 기회는 없다. 무거운 마음으로 주말 저녁에 간이식을 시행하였다. 장장 7시간을 쉬지 않고 수술하였다. 모든 혈관들을 이어주고 마지막으로 담도를 연결한 후 초음파를 보니 모든 것이 잘 작동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환자가 잘 회복하기를 기도하는 것뿐.


수술  이틀째, 드디어 환자가 조금씩 움직이는 반응을 보인다. 마취약을 줄이고 환자를 깨우기 시작하였다. 의식이 돌아오고 자발호흡이 있었다. ~ 그동안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  같았다. 그래도 아직  길이 멀다. 혈액투석을 지속해야 했고, 의식도  명료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간기능은  회복되고 있었다. 수술  2주가 지나자 소변양이 많이 늘기 시작하여 혈액투석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환자는 이제 제법 농담도 하는 여유를 보여준다. 이식 전에는 본인의 불안함을 감추고자 하던 농담을 이제는 삶을 되찾았다는 안도의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마음이 놓인다.

그는 이제 곧 퇴원을 할 것이다. 다시금 든든한 가장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뇌사자 장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 3주의 시간. 수술방에서 보낸 주말 저녁. 나의 수명이 그 만큼 깎인 듯하다. 외과의사는 자기 수명을 깎아 환자의 수명을 늘려주는 직업인 것 같다.


사실, 이 환자를 수술한 다음날인 일요일도, 급성 전격성 간부전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은 환자의 응급 생체 간이식을 하였다. 그 환자도 병실에서 방긋 방긋 웃으며 회진을 맞이한다. 힘들어도 이런 환자들의 미소때문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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