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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 Surgeon Feb 11. 2020

우정


고등학생 때부터 둘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늘 함께 놀고, 학교도 같이 다니고,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슬퍼하고.......

둘은 이것이 우정인지도 몰랐다.

이 우정을 굳이 확인하려 하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친구가 간경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친구는 B형 간염 보균자였으나,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굳이 병원을 찾지도 않았다. 20대때 잠깐 간염으로 인해 황달이 발생한 적은 있었지만, 병원 치료 이후로 15년이 넘도록 아무런 증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배가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저 살이 찌는 것이려니 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배는 점점 나오기 시작했고, 배꼽도 튀어나오기 시작하였다.

병원을 찾았던 친구는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믿겨지지 않았다. 간경화라니?

간경화의 합병증으로 배 안에 복수가 가득 찬 것이었다. 복수가 너무 많아 복압이 증가하여 복부의 가장 취약한 부위인 배꼽의 근막이 벌어지면서, 배꼽 탈장이 발생한 것이다.

이뇨제를 처방받아 복용하였으나, 이뇨제에도 잘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복수가 많았다.

문제는 간경화만이 아니었다. 간경화와 함께 간암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간기능이 좋지 못하여 간암에 대해서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간이식을 위해 기증자를 찾아야 했다.

한 명뿐인 누나 역시 B형 간염 보균자라서 간 기증이 불가했다.

부모님들은 모두 고령이시고 지병이 있었다.

가족 중에 기증이 가능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친구에게 부탁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좀 어때?"

그저 친구의 물음에 대답을 한 것 뿐이었다.

"간이식을 해야 한대......"


"그래? 그럼 간을 어떻게 받아?"

"......"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친구는 자기가 줄 수 없냐고 물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복수가 점점 심해지고, 간암에 대한 불안함이 밀려올 때는 친구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살고자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병원에 가는 날, 친구는 동행을 제안했다.

그렇게, 두 친구는 진료실에 함께 들어왔다.




친구의 간은 크기와 모양이 기증하기에 적합하였다.

친구의 왼쪽간 40% 정도를 절개해서 기증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그래도, 몇 가지 문제는 있었다.

첫번째, 혈액형이 맞지 않았다. 환자는 O형, 친구는 A형.

물론, 혈액형이 달라도 이식은 가능하다. 이식 전에 탈감작요법을 통해 이식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안 맞는 혈액형에 대한 항체 수치가 너무 높았다. 1:4096. 그동안 했던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 환자들 중 최고의 수치였다.

두번째 문제는, 친구에게 지방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방간이 심하여 바로 기증을 할 수는 없고, 체중 감량을 통해 지방간을 줄여야만 기증이 가능하다.

친구는 이제부터 운동과 식이 조절을 하겠다고 하였다.




사실, 혈액형 부적합이나 지방간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관계 증명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시행되는 모든 장기이식은 국립장기기증관리본부에서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이는 물론, 불법 장기매매를 근절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기증자의 순수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증명이 어렵기 때문에, 혈연관계에 대해서는 쉽게 승인이 나지만, 비혈연관계인 경우에는 승인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 승인이 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간암과 복수 때문에 이식을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비혈연간의 기증 순수성을 증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둘의 순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서류들을 제출해야 했다.

그간 둘이 찍은 사진들, 친구들의 증언 등등


수술을 담당한 나 역시 초조했다.

승인 과정이 늦어져, 그 사이 간암이 악화되거나 간 밖으로 전이되면 그동안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한 달이 조금 지나서, 결국에는 승인을 얻었다.

승인을 얻었지만, 지금부터 혈액형 부적합을 극복하기 위한 탈감작요법을 시작해야 했다. 그 과정이 2주나 걸리는 것이다.


지난한 승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친구는 열심히 운동하고 다이어트 하면서 체중을 줄였다.

다시 받은 검사에서 지방간 수치가 많이 좋아졌다.




수술이 결정되고, 두 친구는 다시 내 진료실에 들렀다.

간이식에 대한 구체적인 과정들을 다시 설명하고,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에 따른 몇 가지 위험성들, 간이식 후 간암 재발에 대한 우려 등등 조금 무거운 이야기들을 꺼냈다.

간을 기증해 줄 친구는 여전히 밝은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가벼운 성격은 아니고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할만한 잔잔한 농담을 던질 줄 아는, 그런 여유있는 친구로 보였다.

"선생님, 그래도 간이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친구에게는 다행인거죠?"

"저는 가급적 안 아프게 수술해 주세요~"

"이 친구는 조금 아프게 해 주셔도 되요~^^"

친구의 농담에, 이식을 받을 친구도 한결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드디어 수술 하루 전.

수술 전날까지 혈액형 부적합 항체가 목표하는 만큼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수술 당일 오전에 혈장교환술을 한차례 더 하고 수술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간이식 후 이로 인한 거부반응의 발생을 막기 위해 비장적출술도 함께 진행하기로 하였다.

수술 전 최종면담. 간이식 관련 합병증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 전 설명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모든 가능성을 다 설명한다.)

환자는 설명을 듣고나서 눈물을 글썽이며, 애써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 믿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간이식까지 올 수 있게 도와주셨잖아요. 안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죠.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아요. 걱정하지 말고 수술해 주세요."


그렇게,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환자는 중환자실로, 친구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회진을 돌러가니, 기증자 친구는 환자 상태를 먼저 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분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좋은 간을 주셔서 친구분도 잘 회복하실 겁니다. 우선은 본인 몸 먼저 추스리세요."


며칠 후,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올라왔다.

일반병실로 옮겨운 친구를 보기 위해 기증자 친구가 제일 먼저 병실로 찾아왔다.

그 뒤로 회진을 갈 때마다 둘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두 친구는 모두 잘 회복되었다.




우정의 깊이는 측정할 수 있을까?

우정의 순수성을 평가할 수 있을까?


간이식을 하면서 많은 관계들을 보게 된다.

가족 간에도 하기 힘든 일을 친구가 해주기도 한다.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친구는 서로 선택한 관계로 시작된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함께 보낸 시간들과 그 속에서의 애와 증이 모여 관계의 깊이를 형성하는 것이리라.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정이 결코 혈연보다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 두 친구는 비로소 피(간)를 나눈 사이가 되었다.

둘의 우정이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며, 두 친구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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