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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 Surgeon Jun 21. 2020

"간이식"이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이유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고

요즘 간이식이 뜬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에서 이익준 (조정석  분)이라는 외과의사가 간이식을 하는 의사로 나오면서 간이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듯하다. 실제로 간이식을 하는 외과의사로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간이식 관련 이야기들은 꽤 현실감 있는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고 느껴진다. 심지어 필자가 경험했던 사건들과 비슷한 내용들도 많이 다루어져서, 간이식을 하는 외과의사로서도 무척 공감하며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슬의생' 뿐만 아니라, 이미 2019년부터 드라마에 '간이식'이 많이 등장하였다. 2019년인 작년에 KBS 2TV 주말극 ‘하나뿐인 내편’, KBS 2TV 수목극 ‘왜그래 풍상씨’, KBS 1TV 일일극 ‘비켜라 운명아’ 등이 비슷한 시기에 극 중 간이식을 소재로 다루었다.


그렇다면 왜 많은 드라마에서 간이식을 소재로 다루는 것일까?

의학에는 많은 분야와 세부 전공이 존재하는데, 환자를 보는 임상영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내과계열 (Medical)과 외과계열 (Surgery)이 그것이다. 나도 어릴 적 조금 헷갈린 적이 많았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내과는 신체 내부 장기를 다루는 영역이고, 외과는 신체 외부를 다루는 영역으로 오해한다. 처음 surgery라는 단어가 왜 외과로 번역이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surgery'라는 단어는 라틴어 ‘키 루르 기아(chirurgia)’에서 왔고, 이것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손'을 뜻하는 단어와 '일'을 뜻하는 단어가 결합한 형태로 ‘손으로 하는 일’이란 뜻이라고 한다. 아마도 'internal medicine' 이 내과로 번역되면서, 상대적으로 surgery가 외과로 번역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임상의학에서 내과는 주로 약물 투여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외과는 수술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간편하다 (물론, 요즘은 그 영역을 넘나드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세부 전공에 '외과'가 들어가는 진료과목명은 수술을 주로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성형외과 등등....


그중 간이식을 하는 의사가 되려면 과거에 '일반외과'라고 불렸던 '외과' 전문의가 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는 외과의 여러 세부 분야를 전공하기에 앞서 general surgery (일반외과)를 기본적인 과정으로 배우도록 하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인턴을 마치고 전공의가 될 때 이미 세부 분야를 정하여 교육을 받게 된다.


환자들이 경험하는 질환들 중 상당수는 주로 내과적인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고혈압, 당뇨 등과 같은 대부분의 만성질환, 감기와 같은 기본적인 감염성 질환들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수술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암이라든가, 외상, 선천성 기형 등이 해당되겠다. 수술이라는 과정을 위해서는 환자의 의식을 일시 정지시키는 마취가 동반되어야 하고, 외과의사의 손끝에 환자의 생명이 달려있다는 개념이 있어서 조금 더 드라마틱한 연출이 가능하다. 수술실로 환자를 들여보내고, 애타게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보호자들의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의 감정적 동기화가 가능할 것이고,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는 수술실 내의 상황, 즉, 모니터에서 울리는 환자의 심박동 소리, 마취된 환자의 배를 가르고 수술을 하는 장면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의학 드라마라고 불리는 많은 드라마들이 주로 외과 영역을 다루게 되는 것 같다. 과거 '의가형제'라는 드라마에서는 장동건이 신경외과의사로 나왔고, '하얀 거탑'에서는 김명민이 외과의사로, '뉴하트'의 지성은 흉부외과의사로 나온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10회 포스터 ⓒ tvN


그렇다면, 간이식이 다른 수술 영역과 다른 점들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외과계열들이 갖는 그런 드라마틱함에 더하여, 간이식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 상황들 중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하기에 좋은 극적인 내용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1. 간이식은 혼자 받는 수술이 아니다.


대부분의 수술은 환자 본인이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혼자 받는 수술이다. 즉, 본인만 수술실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간이식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기증자 역시 함께 수술을 받아야 하는 수술이다. 물론, 뇌사 기증자의 간을 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뇌사 기증자의 수가 너무 제한적이라 80% 정도의 간이식이 생체 기증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다 보니,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가족들 중 한 명이 간을 기증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환자 한 명의 스토리가 아니라, 가족과 얽혀 있는 스토리로 구성을 할 수가 있어 좀 더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상황 설정이 가능하다.

또한, 마땅한 생체 기증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뇌사 기증자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 뇌사 기증자가 언제 어떠한 상황으로 발생할지, 또 그 간이 어떻게 배정이 될지 알 수 없는 막연한 상황에서 생명의 끝단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상황 역시 극적인 긴장감으로 표현될 수 있는 부분이다.

슬의생에서는 이러한 내용들을 잘 다루었다. 본인은 원치 않았으나 시댁 식구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간 기증자 검사를 받아야 했던 며느리, 딸에게 간을 주기 위해 극적으로 짧은 시간에 체중을 감량하여 지방간 문제를 해결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러한 것이다. 또한 간부전으로 위태한 상황 속에 있는 환자에게 다른 곳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된 뇌사 기증자의 장기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이익준의 모습 역시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사람의 장기는 적출 후 저온 보관을 하게 되는데,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장기에 손상을 입게 되어 가급적 서둘러 이식을 해야 한다). 슬의생에서 다룬 이러한 내용들은 실제로 임상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상황들이다.


2. 간이식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받는 수술이다.


간이식 이외에도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급박하게 수술을 하는 경우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학병원급에서 이루어지는 정규 수술의 경우, 대부분은 암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들이고, 이러한 경우 지금 당장 삶의 끝단에 서 있다기보다는, 증상이 없더라도 병을 치료하여 장기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수술인 경우가 많다. 즉, 건강검진에서 암이 진단되어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간이식은 말기간부전으로 간기능의 회복이 어려워 곧 이식을 받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 받는 경우들이 많다 보니, 좀 더 극적인 요소들을 넣을 수 있겠다.


3. 수술의 난이도가 높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수술에 있어서 쉬운 수술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간이식은 현대 외과 영역에서 그 범위와 소요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수술임에 틀림없다. 특히 수술을 받는 환자의 상태가 매우 위중하다 보니, 수술 중 출혈도 많이 되고, 심지어 수술 중 심정지가 발생할 수 있는 등 외과의사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상황이 종종 있게 된다. 생체 기증자의 간의 일부를 안전하게 절제하여야 하고, 병든 환자의 간을 통째로 제거하고, 다시 안전하게 기증받은 간을 섬세하게 연결해 주는 과정이 모두 한 번에 이루어져야 하기에 수술 시간도 오래 걸리고 (8-12시간), 참여하는 외과의사의 수도 많다. 그러하기에, 수술 중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급박하게 대처하는 모습들을 드라마로 찍어내기에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슬의생에서 외과 펠로우가 간 수혜자의 수술을 진행하는 중 출혈량이 많아 이익준의 도움을 청하는 장면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4. 간이식은 수술이 끝이 아니다.


대부분의 외과 영역의 수술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환자가 잘 회복되면, 이후 외과의사의 역할이 크지 않은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간이식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이후 면역억제 요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식받은 간 상태를 잘 유지하도록 관리해 주는 것까지도 외과의사의 역할로 남는다. 감염이나 기타 합병증들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고, 환자가 면역억제제를 잘 복용하는지도 확인하고 관리해야 한다. 슬의생에서는 간이식을 받은 부인이 결국 남편이 외도 후 미안한 마음에 간을 주었다는 것을 알고서 면역억제제 복용을 하지 않아 거부반응이 발생하여 재입원하게 되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익준이 자신의 이혼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자를 설득하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끝나 기쁜 마음으로 환자를 퇴원시켰는데, 외래에서 환자를 추적하고 관리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 중에 드라마로 다루어도 될 정도의 극적인 일들도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이렇듯, 간이식은 수술 전/후 드라마틱한 환자의 변화를 보게 되고, 환자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들의 상황까지 함께 고려하면서 진행해야 하는 수술이라 드라마 및 영화의 소재로 많이 활용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환자들의 결과가 드라마처럼 다 좋지는 않기에, 안타깝고 좌절스러운 경험도 하게 되는 것이 간이식을 하는 외과의사의 삶이다. 야간 응급 수술이 많고 수술 이후 환자의 상태에 따라 밤낮없이 마음을 졸여야 하는지라 외과 영역 중에서도 3D로 통하는 것이 바로 간이식이다. 자신의 수명을 깎아서 환자를 살리는 과라고들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드라마와 같은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에 보람되고 기쁘게 간이식을 하며 살아간다. 엊그제 급성간부전으로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온 28살의 젊은 여자 환자가 지난밤사이 응급으로 간이식을 받고 오늘 아침 의식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밤샘 수술의 피로는 기억도 못한 채 행복해하는 것이 바로 간이식을 하는 외과의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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