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lo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회사원 D Sep 06. 2020

06. 직업으로서의 직장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발견한 직장인의 마인드셋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였다.


당시만 해도 도서관에는 책마다 '도서 대출 카드'가 - 영화 '러브레터'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그거 - 꽂혀 있었다. 책을 빌리면 사서가 빌려간 사람 이름과 대출 일자, 반납 일자를 적어두는 카드인데, 빳빳한 새 카드에 1등으로 이름을 적는 쾌감(?)이 있었던지라 온갖 기묘한 책을 찾아서 봤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다.

낙서를 하진 않았어요. 정말입니다..(from 영화 'Love letter')


그 뒤로도 '빵가게 재습격', '태엽 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댄스 댄스 댄스'등을 읽었는데, 이 사람 책은 그다지 취향에 안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후 작품은 굳이 찾아보지 않았었다. 읽고 나면 '내가 대체 뭘 본거지?' 하는 느낌이 너무 강했달까.


이번에는 이렇게 취향에는 도통 안 맞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직업 관점에서의 소설가가 왠지 직장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 아무나 될 수 있는 소설가/직장인


소설가, 혹은 작가라고 하면 왠지 특별한 재능이 필요할 것 같다. 덥수룩하게 평소에는 방탕하게 살던 어떤 남자가 일단 펜을 쥐면 앉은자리에서 작품을 써내는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직업 관점에서의 소설가는 글만 알면 아무나 될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아주 낮다고 한다. 저자인 하루키조차 어느 날 야구를 보다가 소설을 쓰고 싶어서 썼다고 하니 말이다.


소설따위 - '소설 따위'라는 말투는 약간 난폭하긴 합니다만 -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피아니스트나 발레리나로 데뷔하려면 어릴 때부터 길고 험난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화가가 되는 데도 어느 정도 전문 지식과 기초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중략) 그런데 소설이라면 문장을 쓸 줄 알고 볼펜과 노트가 손맡에 있다면, 그리고 그 나름의 작화 능력이 있다면 훈련 따위는 받지 않아도 일단 써져버립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조직에서 본인의 업무를 수행하며 급여를 받는다'는 측면에서의 직장인은 - 물론 업종별/기업별 사회적 인식이나 보수, 업무 난이도 등등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 공교육을 충실히 이수하고 당사자의 지적 능력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소설가/직장인이 되고 난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입니다.

(중략) 하지만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중략) 거기에는 뭐랄까, '어떤 특별한 것'이 점점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2. 직업인의 삶 :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일단 직장이라는 링에 오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에게 필요한 '어떤 특별한 것'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해야 얻을 수 있을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는 이런 물음에 관해 오리지낼리티, 신체력, 고독에 대한 면역 등을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직장인 버전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1) 자기 모습 그려보기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그 개략은 처음부터 상당히 확실했습니다.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 시작하면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중략) 만일 그런 정점(定點)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직장에서 업무를 멋들어지게 해내지 못한다고 해도, 심지어 실수하고 혼나는 일이 일상 다반사라고 해도 몇 년 뒤의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롤모델이 있어도 좋고, 그냥 막연하게 언젠가는 '○○업무를 하는 △△한 사람' 정도의 막연한 희망도 좋다. 앞으로의 커리어를 어떻게 그려갈지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 아니 이미지라도 있어야 직장이라는 링위에서 일단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TMI : 개인적으로 많이 반성했던 부분..)


2) 덜어내기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정보 과다라고 할까 짐이 너무 많다고 할까, 주어진 세세한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자기표현을 좀 해보려고 하면 그런 콘텐츠들이 자꾸 충돌을 일으키고 때로는 엔진의 작동 정지 같은 상태에 빠집니다.
만일 당신이 뭔가를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이상적인 미래를 그려보는 것도 좋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기대는 지양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만 가득가득 담다 보면 필연적으로 한없이 공중에 뜨게 되고, 기대와 현실의 차이는 그만큼 내게 스트레스로 돌아오게 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등장하는 '마이너스해간다',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라는 표현은 소설가 관점에서 보자면 본인의 문체나 스타일을 찾게 해주는 과정이지만, 직장인 버전으로는 이상과 현실의 갭을 적절하게 조정해서 일과 회사에 관해 합리적인 기대치를 갖게 해주는 프레임이 될 수도 있다.


'네임밸류도 좋으면서 연봉도 많이 주고, 배울 것도 많지만 워라밸도 지켜지는 회사에서 일할 거야'라는 행복 회로보다는, '나한테는 직장 네임밸류가 중요하니 대기업에 들어가자. 그리고 3년 정도 일하면서 백그라운드 확보와 함께, 인맥을 쌓는 걸 목표로 하겠어'가 보다 합리적이라는 이야기다.


3) 축적하기


어느 시기에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진 표현자가 불쑥 튀어나와 세간의 강한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만일 그/그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면, 혹은 싫증이 나버렸다면, 그/그녀는 '오리지널이었다'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단순히 '한 방'으로 끝나버립니다.

(중략)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마 지속력이나 자기 혁신력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그 스타일의 질을 논하기 전에 어느 정도 '몸집'을 가진 실제 사례를 남기지 않고서는 '검증 대상에 오르지도 못하게'됩니다. 여러 개의 샘플을 펼쳐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지 않고서는 그 표현자의 오리지낼리티가 입체적으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오리지낼리티'에 관해 논한 부분이다. 오리지낼리티는 독창성도 중요한 구성 요소이지만 결국은 샘플을 차곡차곡 쌓은 뒤 시간의 검증을 받아 도출된다는 것인데, 이 또한 직장인의 커리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가능한 미래를 그려본다고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직장인의 Do는 결국 일이고, 일에서 정성적인 경험이든 정량적인 수치든 아웃풋이 쌓여야 다음 커리어로 연결시킬 수 있다.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중략)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 라는 것으로는 규칙성은 생기지 않습니다.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다'는 것은 실로 훌륭한 표현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20장을 쓴다는 말을 다르게 바꾸면 루틴을 만들고 집중한다는 뜻이 될 것 같다. 내가 가장 뜨끔했던 부분인데, 원격근무 초반에 비해서 요즘 특히 해이해진 내 모습과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사니 살림살이 마련이니 뭐니 사적인 일로 그동안 쌓아왔던 루틴이 조금씩 무너졌던 게 새삼스럽게 떠올랐달까..


아웃풋을 쌓기 위해서는 결국 지속적인 do가 필요하며,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데는 루틴을 만들고 집중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소설가도 20장씩 쓰지만, 직장인도 나만의 루틴과 리듬이 있어야 한다.


   



요약하자면 직업으로서의 직장인의 마인드셋은 세 가지가 되겠다.


이상적인 내 모습/커리어를 그릴 수 있다.

그 기대치를 내 현실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나의 정성적/정량적 아웃풋을 꾸준하게 만들어낸다.


나같은 경우에는 최근의 루틴도 루틴이지만, 목표 설정 부분에서 그동안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같다. 나는 대체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남의 직업 궁금해서 책 사봤다가 내 직업이 도리어 문제가 되었다. 역시 하루키책은, 나랑은 안 맞는거 같다 하하..

매거진의 이전글 05. 할 수 있는 일을 잘합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