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지 않고 살아내기
사람들 사이에서 ‘특이한 놈’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때론 외계인처럼, 때론 고장 난 기계처럼.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라고 생각했고, 한때는 우울증과 ADHD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오해하며 50여 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HSP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습니다. Highly Sensitive Person. ‘아, 이게 나였구나’라는 깨달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위안이었습니다. 동시에 INTP라는 성향도 알게 되었고, 내 안의 복잡한 생각 구조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평생 짝이 안 맞았던 퍼즐이 드디어 끼워지는 기분이었죠.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HSP니까’, ‘나는 INTP라서’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의 언어였지만, 나중에는 그 라벨 안에 숨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회피가 습관이 되었고, ‘난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이 내 성장의 속도를 늦추고 있었습니다. 힐링을 원하지 않았고, 해결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치 ‘HSP니까 안 해도 돼’라는 변명 속에 스스로를 숨기는 삶을 살고 있었던 거죠.
나의 기질과 성향은, 단지 나를 설명하는 일부일 뿐이었습니다. 삶은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예민함이라는 선물을 주셨지만, 그것이 내가 움츠러들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민감함으로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작은 신호에도 반응하며, 조용하지만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질은 나의 ‘운영체제’일 뿐, 인생의 결과를 결정짓는 조건은 아닙니다. 나는 나의 민감함(HSP)을 지혜로 바꾸는 법을 배우고 있고, 나의 논리적 성향(INTP)이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감정의 본질을 해석하는 도구가 되도록 훈련 중입니다.
이제는 회피가 아닌 선택, 분석 마비가 아닌 실행, 방패가 아닌 도구를 들기로 했습니다. 감정의 파도 앞에서도,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의 존재를 바라보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예전에는 ‘왜 이렇게 나만 힘든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나는 이제 안다.
예민하다는 것은 ‘이상함’이 아니라, 다르게 느끼는 능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숨지 않기로 했다.
하나님 안에서, 내 삶을 책임지고 살아내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진짜 나답게 살아가는 첫걸음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