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치해 보이는 감정과 사소한 기록이 내 삶을 바꾸었다
나의 창작은 늘 쓸모없어 보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길을 걷다가 문득 발에 걸린 조약돌을 보고 멈추게 될 때.
기차역 대합실의 벤치에 앉아, 누구도 들리지 않을 속삭임을 떠올릴 때.
작은 메모장에 의미 없는 단어들을 나열할 때.
누군가 보기에는 낙서고, 시간 낭비이며, 잡생각일 뿐이지만
그 안에서 나는 온전한 ‘나’로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늘 묻는다.
“그게 뭐에 쓰이죠?”
“그걸 하면 뭐가 남죠?”
“돈은 벌리나요?”
그 물음은 내가 마주했던 세상의 언어였다.
그 안에서 감정은 언제나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진짜 감정은, 계산에서 도망칠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나는 그 도망의 끝에서 창작을 발견했다.
나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내 감정은 잘 포장되지 못했고, 자주 오해받았고, 어딘가 항상 ‘과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스스로를 감추려 했다.
‘이런 감정은 안 보여야 해.’
‘쓸모없는 감정은 흘려보내야 해.’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에게 불필요하다고 여긴 감정들이, 사실은 나의 가장 진실한 일부였다는 것.
그날 이후, 나는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속상함도, 고요함도, 소외감도.
어디에도 쓰이지 않을 것 같은 그 감정들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아무도 몰랐던 그 순간들,
‘내가 나를 보고 있었구나’라고, 되새겨주었다.
누군가 보기엔 ‘별 거 아닌 말’
하지만 나에겐 그 말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이 있다.
시 한 줄이,
시선 하나가,
내 하루의 균형을 되찾아준다.
창작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내가 나를 보듬기 위한 몸짓이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걸 잊지 않기 위해 매일 한 줄씩, 무의미한 듯한 글을 쓴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괜찮다.
그 글은 나를 위해 존재하니까.
우리는 사회가 정한 가치 척도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려 한다.
결과는?
숫자는?
조회수는?
수익은?
그 숫자들이 나를 압박할 때,
나는 점점 나의 언어를 잃어간다.
하지만 존재는 쓸모를 요구하지 않는다.
존재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쓸모없는 시간 속에서,
무의미한 말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찾는다.
한때 나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기대었다.
누군가 나를 끌어줄 거라는 기대,
내 삶의 방향을 누군가 대신 결정해주기를 바랐다.
기다림은 늘 실망이 되었고,
기대는 오히려 더 깊은 외로움으로 돌아왔다.
그런 삶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사람에게 기대지 않겠다.
사람 대신 예수님만 의지하겠다.
그리고 ‘나홀로 기업가’로,
내가 받은 사명대로 살아가겠다.
사람에게 버림받을 때마다,
나는 주님 안에서 나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의 승인 없이도
내가 가야 할 길을 걷기로 결단했다.
이 글을 쓴다고 누가 나를 알아주는 건 아니다.
이 글이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글은 내 안에서 울려오는 생존의 외침이라는 것을.
세상이 무시해도 괜찮다.
이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나는 매일 쓸모 없는 글을 쓴다.
그리고 그 쓸모 없는 글이
내 삶을 단단하게 지켜주고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쓸모를 증명하려 애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창작은,
어떤 감정은,
어떤 기록은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의 존재는
이미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답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글을 쓴다.
쓸모 없음 속에서 발견한 창작.
그 안에 살아 있는 나를 안아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