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는 마음
세밑. 일본 사는 고등학교 친구가 고향에 왔대서 부산, 대구, 창원. 근처에 사는 친구들 모두가 모였다. 서울에 있는 나는 못 갔지만,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한 해가 가는 게 실감이 나더라. 그간 못 보던 얼굴도 연말이라고 시간 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마침 오늘, 아빠가 고등학교 시절 사진과 책 속에 숨겨진 편지를 찾아 보내줬다. 그 사진 속 친구들이 그 시간 모였으니 신기할 따름.
고 2 때, 짝지가 스키선수였다. 훈련으로 늘 수업을 빠졌기 때문에 나는 거의 짝지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한 번씩 학교를 올 때면 미안하다고 내가 좋아하던 초콜릿을 사다 주거나, 방과 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했다.
편지의 내용도 그랬다. 늘 OOO에게 뒤처진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친구는 본인이 더 많이 사귄 것 같아 기쁘다고. 2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마음이 찡했다. 운동선수로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냈을까. (해준 것도 없는데) 좋은 친구를 만난 게 더 기쁘다는 그 마음이, 늘 비교하기 바쁜 경쟁 속에서 본인만의 멘털 관리가 아니었을까. 그 시절 짝지에게서 다시 배우게 된다.
“나중에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지금 한 순간만 잘 버티면 된다”라고 위로해 준, 나보다 더 큰 마음의 아이. 지금 이런 삶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함께해 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새삼 또 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해도 잘 보냈으니, 새로운 한 해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 기록하고, 표현하고, 안아주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년 뒤에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니 말이다. 두고두고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