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됐다. 하지만 이는 경찰이나 법원을 통한 정식 절차가 아닌 민간(유튜버 및 구의원) 차원의 공개였는데 비록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냈다 하더라도 안타깝지만 이는 한국에선 불법이다.
솔직히 이 뉴스를 듣고 잘했다 싶었다.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신상이 공개되는 것은 충분히 공익을 위함이 맞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또 궁금하다. 왜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신상이 다 공개되지는 않는 것일까.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
우리나라에 피의자 신상 공개제도가 생겨난 건 2010년이다. 이전까지는 경찰에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면 언론에서 이를 취재, 보도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에게로 정보가 퍼져나갔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이런 분위기는 급변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 경찰은 내부 규정을 변경해 피의자의 신상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이를 기점으로 국내 언론의 피의자 신상정보 보도는 대폭 감소하게 된다.
그러나 연쇄살인과 같은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난여론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결국 이 점을 반영하여 2010년에 피의자 신상 공개제도가 신설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제도로 피의자의 신상 공개가 가능한 범죄는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살인, 살인미수 등)와 성폭력 범죄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강력범죄는 기소 전 피의자 신분일 때, 성폭력 범죄는 피의자 신분이거나 판결이 확정된 이후 법원의 명령이 있을 때 신상 공개가 가능한데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결국 이 점 때문에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도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피의자 신상 공개제도의 장단점
어떤 범죄든 용의자가 경찰에 잡혀 수사가 시작되면 그 용의자는 '피의자'신분으로 전환된다. 경찰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면 혐의 입증을 위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는데 이때 피의자는 '피고인'신분으로 다시 전환되며 법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되면 그제서야 최초 용의자였던 사람은 최종적으로 '범죄자'가 된다.
(용의자 → 피의자 → 피고인 → 범죄자)
피의자 신상 공개제도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그것은 전체 사법절차 중 가장 이른 시기인 '피의자' 단계에서 신상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그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신상 공개가 되지 않았던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되어 피고인이 된 후 새로운 여죄(강력범죄, 성폭력범죄)가 발견되어 신상공개 대상이 되더라도 이미 적용대상인 '피의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신상공개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 n번방 사건에서도 주범인 조주빈, 문형욱 외 유죄 선고를 받은 피고인들 대부분이 같은 이유로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 범죄혐의가 아직 입증되지 않은 '피의자'의 신상 공개 후 그가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을 때다. 이미 사회에서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혀 완전히 무너져버렸을 그의 삶을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은 신상 공개 대상을 피의자가 아닌 피고인 신분으로 변경한다면 어느 정도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연좌제라 불리는 신상 공개제도로 인해 받는 범죄자 가족들의 고통이다. 범죄자 본인이야 두 말할 게 없지만 그 가족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범죄를 공모했거나 또는 가족이라고 피의자를 감싸지 않는 이상, 그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받고 지탄받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③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이 존재한다 해도 국민들의 알 권리 충족, 범죄 재발방지, 해당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피의자 신상공개는 필요한 제도이기도 하다.
실제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많은 국가들에서 언론의 자체적인 판단 하에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허용하고 있으며 단지 허위사실 적시일 경우에만 관련법으로 처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 또한 북미의 경우엔 주마다 법률의 차이는 있지만 범죄자의 신원은 공적 정보로 여긴다.
한국의 신상 공개 시스템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신상공개 제도는 경찰에 그 권한을 주고 외부위원, 경찰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신상공개 개최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개여부를 결정하고 있는데 이런 시스템으로 신상공개가 이뤄지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비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는 독일에서도 사건의 중대성이나 사회적 중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특별한 절차 없이 신원이나 재판절차를 공개하고 있고 다른 국가들에서도 재판을 관할하는 판사 재량으로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이 제도에 대해선 어떤 게 맞는 건지 판단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듯하다.
돌려차기 사건
다시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으로 돌아와 보자.
얼마 전 피해자가 경찰과 검찰에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요청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한 유튜버와 서울의 구의원이 가해자의 신상을 사적으로 공개했는데 왜 경찰과 검찰은 신상 공개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일까?
앞서 얘기했듯이 신상 공개는 '피의자' 신분일 때만, 즉 검찰로 송치되기 전에만 가능한데 이미 가해자는 재판이 진행 중인 '피고인'신분이었기에 신상 공개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또한 1심 재판에서 가해자의 혐의는 중상해죄로 신상 공개가 적용되는 특정강력범죄와 성폭력 범죄가 아니었기에 신상 공개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게다가 가해자는 1심에서 징역 12년 형이 선고되자 바로 항소함으로써 법원의 신상 공개 명령을 피해 갈 수 있었다. 1심 때 혐의가 중상해죄였던 건 경찰의 초기 수사가 부실했기 때문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이후 진행된 보강 수사로 2심에선 검찰의 공소장에 가해자의 혐의가 강간살인미수로 변경되었고 결국 징역 20년형이 선고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재판을 지켜보는 마음은 너무나 불편하다. 1심 판결인 징역 12년보다 무거워지긴 했지만 2심 재판 후 자신의 형량이 과하다는 이 가해자에게, 출소 후 보복범죄를 예고하는 전과 18범 범죄자에게 20년이라는 형량이 과연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검찰의 구형량이 징역 35년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꽤나 아쉬운 대목이다.
일벌백계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다는 뜻의 일벌백계.
이 사건은 분명 법원이 범죄자에게 일벌백계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끔찍한 범죄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나라의 형량은 선진국에 비하면 너무 가볍고 낮다. 이래서는 범죄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소위 법치 국가라는 곳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범죄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속이 터지고 화가 나는데 당사자는 어떤 심정일지 가늠조차 어렵다. 언제쯤 이런 강력범죄에 대해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이 내려질는지.
마무리
피의자 신상 공개는 장점과 함께 여러 단점 또한 존재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가 단지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변질되는 건 원치 않는다. 범죄의 심각성과 국민 정서, 사회적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여 공정하게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또한 실낱 같은 기대일지라도 이 제도로 인해 범죄율이 조금이라도 낮아지기를 바라본다. 범죄 전 자신의 가족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나 때문에 고통받고 힘들어할 가족을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바꾸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