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없어도 괜히 기분 좋은 금요일을 사무실에서 보내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누군가 해서 봤더니 인사과 팀장님이셨다.
'무슨 일이지?'
웬일인가 싶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네 실장님, ***입니다."
"*과장, 지금 사무실이에요?"
"네 사무실에 있습니다."
"그럼 올라갈 테니까 잠깐 얘기 좀 해요."
"네 알겠습니다."
믿을 수 없는, 정말 믿기 싫은 이야기
무슨 일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떠오르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제 수습기간이 끝나간다는 것. 입사 첫날,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면 근로계약서를 다시 쓸거라 했는데 11월에 입사해 이제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가고 있었으니 근로계약서 쓰는 거 때문에 보자고 하는 건가 싶었다. 이것 말고 인사팀에서 날 찾을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올라오신 인사팀장님과 회의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과장, 3개월 정도 일해보니 어때요?"
"가구 쪽이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았는데 하나하나 배우면서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음.."
무슨 얘길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걸까.
"정말 미안한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과장, 미안한데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수습기간 끝나고 재계약은 좀 어려울 것 같아."
"네?"
이게 무슨 얘기인 걸까.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에 뭐에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잠깐 넋이 나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하니 얼굴이 굳어지고 심장은 쿵쾅대고 온몸이 떨려왔다.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마주 앉아 계신 팀장님은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계셨는데 큰 충격을 받은 내겐 그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서 웅웅 거릴 뿐이었다.
무슨 얘길 해야 하는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고개가 절로 숙여졌고 숙여진 고개를 따라 내 시선도 땅으로 떨어졌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고 도저히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왜? 대체 왜? 내가 뭘 어쨌다고?'
머릿속은 온통 이 생각뿐이었고 한참을 이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한 번 물어보기나 해야겠다 싶어 고개를 들어 맞은편 팀장님을 바라봤다.
"*과장은 모르겠지만 *과장 입사하고나서부터 매일같이 *과장에 대한 평가가 있었어요. 공장에 있을 때도 그랬고 특히 여기 오면서부터는 매일 대표님이 보고를 받고 계셨고. 어제까지도 *과장 거취에 대한 회의가 꽤 길게 있었어요.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직원인건 알겠는데 우리가 바라는 영업 과장으로서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부서이동도 고려해 봤는데 지금 T.O가 나는 부서도 없고. 어쩔 수 없게 됐어요. 미안해요 *과장."
"팀장님, 제가 지금 이 상황이 납득이 안 되는데요. 제가 여기 영업으로 입사해서 지금까지 11월은 공장에서 제조파트로 일했고 12월부터는 계속 현장 돌면서 시공업무만 했거든요? 제가 영업업무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도대체 뭘 보고 평가를 하셨다는 거죠? 여기 계신 분들 제가 영업하는 거 한 번도 보신 적이 없는데.. 제가 영업을 하다가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다던지, 영업시켜 봤더니 영 못하더라 이런 평가 때문이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이건 진짜 누구라도 납득 못하는 상황 아닌가요?"
눈물이 왈칵 날 뻔한 걸 꾹 참느라, 온몸으로 밀려드는 억울함을 잠시 밀어 두고 말하느라 목소리가 꽤나 떨렸다.
내 질문에 대한 팀장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지금 우리 회사엔 밖에 나가서 공격적으로 영업을 할 사람이 필요한데 난 그런 타입은 아닌 것 같다고.
이 얘기에 결국 나도 화가 나서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그러니까 제가 거래처에 나가서 어떻게 하는지 한 분이라도 보셨나고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멘탈붕괴
"죄송합니다. 제가 좀 격해져서 목소리가 커졌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과장, 그럴 수 있지. 아무튼 회사 입장은 이래요."
팀장님의 얘기가 이어졌다.
이제 이직준비를 해야 할 테니당장 내일부터라도 출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급여도 1월 말일분까지 계산돼서 똑같이 나갈 거니까 편하게, 나오고 싶은 날까지만 나오라 했다.
난 알았다고, 같은 팀 차장과 얘기해서 언제까지 근무할지 알려드리겠다 했다.
내 얘길 끝으로 팀장님은 회의실을 나가셨다.
11월에 입사하면서 경력직 입사지만 3개월의 수습기간이 있고 그 기간동안 나에 대한 평가가 있을 거란 얘길 듣긴 했다. 그리고 수습기간이 끝나면 근로계약서도 다시 쓸 거란 것도. 하지만 지금껏 이직을 몇 번 하면서 그때마다 들었던 얘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명목상 있는 수습이라 생각했고 평가가 안 좋아서 잘릴 정도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으니까. 지금껏 일했던 회사에서 내 업무능력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좋은 편이었다. 그랬기에 이 상황은 내게 더 놀랍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