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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Feb 21. 2024

갑자기 백수가 되었습니다.

#4 미아


꽉 막힌 도로 위에서 터진 눈물.

아무도 없어서였을까. 뭐가 그리 서러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한테 정말 왜 이러는 건데..'


들어줄 사람 없는 넋두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미아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차 시동을 끄고 잠시 의자를 젖혀 누웠다. 다른 직장을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어 막막함에 겁이 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아파트 대출금을 포함해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은 어떻게 충당해야 까.

오늘 회식을 하고 온다는 아내에겐 뭐라 지?

당장 월요일부턴 뭘 해야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워 잠시 그대로 누워있었다.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일단 들어가자.'


트렁크에 넣어뒀던 짐을 챙겨 집으로 올라갔다.

오늘따라 텅 빈집에 혼자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거실에 짐과 가방을 대충 던져두고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현관의 센서등이 꺼지자 집안이 캄캄해졌다. 원래는 배가 고파야 할 시간인데 밥 생각 없었다. 그냥 이대로 누워있고 싶었다.


'한숨 잘까?'


하지만 아내가 집에 와서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딱 봐도 퇴사한 사람처럼 짐을 잔뜩 싸 온 체 그대로 소파에서 자고 있는 나를 보면 놀라겠구나 싶었다.


일어나 거실 불을 켰다.

옷을 갈아입고 일단 챙겨 온 짐은 아내가 보지 못하도록 창고에 넣어뒀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소파에 앉아 TV를 켰지만 머리가 멍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냉장고엔 전에 사다 놓은 병맥주가 두 병 있었고 급하게 안주로 라볶이를 만들어 맥주와 함께 먹었다. 밥 생각이 없는 줄 알았는데 먹으니 또 들어갔다.


소주 세 잔이 주량인 내가 오늘은 맥주 한 병을 그새 비워버렸다. 남은 한 병도 마저 가져와 금방 마다. 그렇게 두 병을 마시고 조금 있으려니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온몸이 새빨게 졌다. 부모님을 닮아 알콜분해가 잘 안 되는 난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을 비롯해 온몸과 손바닥, 발바닥까지 다 빨개진다. 그런 내가 500ml 맥주를 두 병이나 연거푸 마셔버렸으니 취기가 확 올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취기가 올라오자 졸음이 쏟아졌다. 안 되겠다 싶어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고백


"여보, 여보!"

 

아내 목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회식을 마치고 집에 온 아내가 소파에서 자고 있는 나를 깨우고 있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누워있는 내게 아내는 웬일로 맥주를 두 병이나 마셨냐며, 뭔 일 있는 거냐 물었다. 여자의 직감이었던 걸까. 안 그래도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걱정이 됐던 아직 알딸딸하게 남아있는 취기를 빌어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오늘 회사에서 잘렸다?"

"뭐? 무슨 소리야 여보. 뭐라는 거야~"


놀란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다.


"자세히  말해봐. 회사에서 잘렸다니. 왜? 무슨 일인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아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줬다.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딨어. 이거 노동부에 신고해야 하는거 아냐? 담당업무는 시켜보지도 않고 이렇게 자르는 게 말이 돼? 근로계약서 좀 봐보자. 진짜 웃기는 회사네. 여보 이거 신고하자."

"여보, 조금만 진정해 봐."


놀라고 흥분해 목소리가 커진 아내를 달래고 근로계약서를 찾았다. 분한 마음에 할 수 있다면 아내말대로 하고 싶었다. 술이 덜 깨 계약서를 어디 뒀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그렇게 한 참을 여기저기 뒤져가며 찾은 계약서의 담당업무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영업 업무 외'


하, 이건 신고도 못하겠구나.


세 번째 눈물


아내를 볼 낯이 없었다. 무능력한 남편이 된 것 같아 미안하고 창피했다. 뜬금없이 이런 얘길 들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도저히 고개를 들어 아내를 바라볼 수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이내 아내가 말했다.


"괜찮아 여보, 내가 있잖아. 잠시 쉬어간다 생각하자. 조급해하지 말고 쉬면서 천천히 회사 찾아보면 되지. 아님 그냥 살림할래?"


겁이 많고 나만큼 소심한 아내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얘기에 오늘의 세 번째 울음이 터졌다.


 "미안해 여보. 진짜 내가 뭐라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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