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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Jun 19. 2024

갑자기 백수가 되었습니다.

#7 다시 직장인으로


오후 6시.

회사일을 마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오니 빌딩들 사이로 무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어디엔가 온풍기를 틀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서울 낮기온이 35℃를 넘었다고 했다. 아직 6월인데 이렇게 더울 수 있는 걸까? 날씨가 너무 더워 지하철역까지 버스를 타려고 대중교통 앱을 봤더니 잘 오지 않는 버스라 그런지 22분 후 도착으로 나왔다. 이 시간이면 걸어가도 남을 시간이라 그냥 천천히 걷기로 했다.


이윽고 자연스럽게 내 주위 퇴근하는 직장인들 틈으로 슬며시 끼어들어 지하철역으로 했다.


다시 직장인으로


아직 겨울이었던 2월.

다섯 번의 면접에서 4곳의 회사에 합격했던 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출근할 곳을 선택했다. 회사의 규모와 비전, 내가 느꼈던 분위기, 그리고 잡플래닛의 평가까지. 어쩌면 직장생활을 마무리할 수도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하는 일이기에 아내와도 충분히 의논을 했고 결국 지금 다니는 회사를 선택했다.


오랜만에 다시 서울에 있는 회사를 다니게 되니 이게 뭐라고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첫 출근을 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다시는 회사에서 잘리는 일이 없게끔 신입사원처럼 열심히 하겠노라, 어렵게 잡은 기회인 만큼 회사에서 인정받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며 회사로 향했다. 건물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기 전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 이 말을 10번 되뇌고 들어가 보이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평소보다 목소리에도 힘을 줬다.


나에겐 이곳이 절벽 끝에서 붙잡은 마지막 희망 같은 곳이었기에 그만큼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개월 하고도 2주가 지났다.

다행히 3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 회사를 다니고 있고 정말 신입사원처럼 열심히 일하고 있다. 물론 가끔 막무가내로 업무지시를 내리는 상사 때문에 불만이 생길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내 입사를 기점으로 5명의 경력직 직원들이 더 들어오게 되면서 마치 신입사원 공채로 입사한 것 같은 동료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혼자 신규인력으로 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든든하고 자연스럽게 회사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직장생활에서 동료들과의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지금의 회사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회상


2007년에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1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 시간을 쭉 돌이켜보니 난 만함남 탓, 자기합리화직장생활을 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운이 좋아 능력 있는 사수를 만나 일을 잘 배운덕에 첫 회사에서 평판이 꽤나 좋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문제였던 것 같다.


티는 내지 않았으나 마음 남들보다 을 잘한다는, 괜한 신감이 있었고 종종 난관에 부딪쳐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답을 찾으려 노력하기보다 상황 자체를 탓하고 내가 아닌 남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회사 업무에 열심히, 성실히 임했던 건 맞다. 하지만 나와 관련된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나에게 있었을 텐데 왜 그땐 나에게서 원인을 찾고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몇 번의 이직을 하면서도 그랬다. 이 회사는 이래서, 저 회사는 저래서 나와 맞지 않다며 얼마 다니지도 않고 다시 회사를 옮기곤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핑계로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왜 그랬을까?

내가 맞춰가면 될 것을, 조금만 더 참고 적응해 갔으면 될 것을 왜 난 내 기준에만 맞추려고 했을까?


우물 안 개구리였을 그 시절에 혼자 뭐가 그리 잘났다고 런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참으로 후회되는 시간들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때의 나를 반면교사 삼아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나보다 나이는 어려도 능력 있는 동료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고 아직도 적응 중이긴 하지만 업무 중에 뭔가 막히는 일이 생겼을 땐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찾으려 이리저리 부딪혀 본다. 역시나  말이 맞다. 회사일 중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을 뿐이다.  


내일도 출근합시다


겨울이 끝나가던 3월 초에 입사해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왔다. 이곳에선 얼마의 시간을 보내게 될까? 지금으로선 여기서 직장생활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현실적으로 더 이직하기도 어려운 나이고 스스로도 그만 자리를 잡고 싶은 생각이 크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일은 또 알 수 없는 거니까. 내게 또 어떤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 지난겨울처럼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지 모르는 거니까.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일할 수 있음에, 내일도 출근할 회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우리, 내일도 출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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