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섯 식구가 여행을 갔던 게 언제였더라. 내 기억엔 초등학교 4학년때였나, 외삼촌네와 강원도 송지호 해수욕장으로 놀러 갔던 게 마지막이었는데 그것도 우리 가족만 간 게 아니었으니 다섯 식구만의 여행으로 따지자면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기억력 좋은 큰형도 결국 기억해내지 못해 부모님께 여쭤봤더니 당일치기가 아니라 이렇게 2박 3일의 가족여행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거라 말씀하셨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내가 태어나고도 40년이 훌쩍 지났는데 이번이 첫 가족여행이라니.
사실 가족여행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추석연휴엔 대부도 독채펜션을 빌려 온 가족(형수님들, 조카들, 아내까지)이 1박 2일로 다녀왔었고 그 이전에도 큰형이 결혼하고 나서, 그리고 내 결혼식 직전에도 형수님들, 조카들과 여행을 다녀왔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형들, 그리고 나 이렇게 원래 가족(?)이 여행을 갔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거다. 직업군인이셨던 아빠 덕에 다른 군인가족들과 당일치기나 숙박으로 여행을 간 적은 종종 있었지만.
그래서였는지 출발 전부터 엄마가 말씀하셨다.
"첫 가족여행이라 긍가, 소풍 가는 기분이여."
봄날의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4월 중순의 금요일. 우리 다섯 명은 부모님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든 지 50년이 다 되어서야 첫 여행을 떠났다.
출발
형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숙소(이건 큰형이 회원권을 가지고 있어서 한다고 했다.)를 제외한 모든 일정을 내가 짰다. 이렇게 얘기하면 난 한가하게 보이겠지만 물론 나도 지금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는 아무 계획이 없이 가게 될 것 같아서 급하게 내가 총대를 맸고 출발 이틀 전쯤 어디에 갈지, 뭘 먹을지 등을 다 정해서 형제 단톡방에 공유를 하고 부모님께도 알려드렸다.
[내가 짠 여행일정]
여행은 내 차와 큰형 차, 이렇게 두대로 가는 것으로 했다. 큰형차는 작은형이 함께 타고 내 차론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걸로. 출발일 아침 부모님 댁에 가보니 엄마가 차 안에서 먹을 주전부리며 숙소에서 먹을 과일까지 한 보따리 준비해 놓으신 게 보였다. 그렇게 그냥 몸만 가시면 된다 말씀드렸건만 한껏 들뜬 표정으로 신이 나셔서 이것저것 준비하셨다는 엄마를 보니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 마음이 이해도 돼서 잘하셨다고, 가서 맛있게 먹자 말씀드리고 차로 짐을 옮겼다. 오.. 옮기고 보니 짐이 꽤 많았다.
속초, 고성
2박 3일의 여행 중 첫 일정은 속초였다.
설악산 쪽에서 점심을 먹고 설악산 소공원으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가는 것으로 첫 일정을 잡았다. 낮 12시가 조금 넘어 도착해 점심을 먹고 설악산 소공원으로 갔는데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아내와는 종종 오는 이곳에 이렇게 가족과 함께 있으니 느낌이 또 달랐다. 형들은 권금성에 처음 왔다 했는데 경치를 보고선 입을 다물지 못했고 부모님도 오랜만이라며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가족사진도 하나 멋지게 찍었는데 아마도 이 사진이 이번 여행의 베스트 샷이 아닐까 싶다.
설악산을 나와 이번엔 고성에 있는 카페로 이동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언젠가 부모님을 모시고 꼭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카페 야외의 소나무숲이 해변 모래사장과 맞닿아 있어 여기에 앉아 눈앞의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내 상상이 현실이 됐다. 부모님을 비롯한 우리 가족은 소나무숲 속 바다가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 멍하게 바다를 바라봤다. 좋았다. 4월이고 그늘에 있으니 바닷바람의 선선한 공기가 마음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그렇게 앉아있는데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따 춥다."
결국 우린 안으로 자리를 옮겼고 모처럼 다섯 가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우리 가족이 남자만 넷이라 얼핏 다 모이면 조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빠는 과묵하시지만 형들과 나, 엄마는 쉴 새 없이 얘길 나눈다. 게다가 첫 여행이니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얼마나 설레고 기분이 좋았을는지. 그래서였을까. 실내로 자리를 옮기고서는 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숙소로
저녁식사는 숙소로 이동하면서 회를 떠가는 걸로 했다. 그래도 강원도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먹어야 할 것 같았고 첫날인데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하려면 숙소에서 먹는 게 편하고 좋을 것 같았다. 카페에서 멀지 않은 대포항에 아내 지인의 가족이 하는 회집이 있는데 속초에 올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다. 확실히 맛있고 가격도 착하다. 하지만 아내 없이 가는 게 처음이라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같이 간 작은형이 예고도 없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사장님, 저희 지인 소개로 왔어요. 대포항 가면 꼭 가보라고, 정말 맛있다고 하셨거든요. 동생 분하고 같이 근무하셨다고 하던데."
오잉? 작은형이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나?
이 말에 사장님은, 그러냐며 알아서 횟감을 잘 골라주셨고 서비스도 가득 챙겨주셨다. 이런 서비스를 받는 게 왠지 조금 불편하고 사장님께 죄송스럽기도 해서 그냥 사가려고 했던 건데 작은형이 이렇게 선수를 칠 줄이야.형이 얘기했다.
"그래도 말하는 게 낫지. 여기 봐. 이렇게 가게가 많잖아? 그 많은 가게 중에 우리라도 와서 매출 올려주니까 사장님도 나쁘지 않으실 거고 서비스도, 솔직히 밑지고 장사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리고 괜찮으면 나도 여기 올일 있을 때 또 오면 되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회를 사고 오는데 튀김 골목에서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이미 저녁시간이 다 된 터라 이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어 튀김도 한 보따리 샀다. 튀김이 눅눅해지기 전에 얼른 숙소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술 한잔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라, 근데 생각보다 숙소가 작았다. 침대방, 온돌방, 거실, 주방이었는데 온돌방 사이즈가 생각보다 작아 삼 형제 중 한 명은 거실에서 자야 할 판이었다.일단 짐을 대충 풀고 서둘러 마트로 가서 맥주를 사 왔다. 그사이 식탁에 회와 튀김이 세팅됐고 모처럼 우리 가족 다섯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이번 여행도 그렇지만 이렇게 다섯이 한 식탁에 앉아본 것도 꽤나 오랜만이었을 터였다. 큰형은 군 전역 후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며 집을 떠났고작은형도 당시 지방에 있던 회사로 입사를 하게 되면서 집을 떠났다. 그러다 보니 그 이후(아마도 2001년쯤부터) 이렇게 다섯 식구가 식탁에서 마주하게 된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젠 며느리, 손주들과 함께 하는 식사자리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우실 부모님.
예전 생각이 났다. 엄마가 식사 준비를 하시면 형들과 난 어슬렁어슬렁 나와 식탁에 둘러앉았다. 엄마는 항상 싱크대와 가까운 쪽에 앉으셨고 엄마 옆으로는 작은형이 앉았다. 그 맞은편으로 나와 큰형이 앉았고 아빠는 항상 마지막에 오셔서 가운데 자리(왕 자리)에 앉으셨다. 식사 전 부모님은 항상 기도를 하셨고 아빠가 숟가락을 먼저 드셔야 비로소 우리의 식사도 시작됐다. 생각해 보니 참 오래됐다 싶은 일이다.
시원하게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난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온몸이 빨개진다. 이건 부모님의 영향인데 부모님이 두 분 다 술을 못하셔서 우리 삼 형제는, 아니 우리 가족은 모두 술 한잔에 발바닥까지 빨개지는 상황이 된다. 술을 드시지 않은 엄마만 빼고 다들 뻘건 얼굴로 회와 튀김을 먹고 있는 모습이 뭔가 재미있었다. 누가 보면 소주 몇 병씩은 마신줄 알았으리라. 회는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형들은 다음에 속초 올일이 있다면 꼭 그 집에 들르겠노라 얘기했다.
그렇게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우리 가족은 서로의 얘기들을 꺼내놓았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얘기들, 같은 상황이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했던 일들, 조금은 서운함이 남았던 일들, 미안했던 일들, 재미있었던 기억, 그리고 감사했던 모든 시간. 부모의 마음이란게 그런건지 언제나 부족했다 생각하시는 부모님과 두 분의 사랑을 비롯해 충분히 받을 만큼 받고 자랐다 생각하는 우리 삼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