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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May 15. 2024

갑자기 백수가 되었습니다.

#6 백번의 시도, 다섯 번의 기회, 네 번의 성공

 

회사에서 잘리고 4달이 되어간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무심하게 지나 그 추웠던, 잘렸기에 더 추웠을 겨울과 봄을 밀어내고 이제 여름의 문 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믿기지가 않는다. 그새 4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는 게.


백번의 시도


아직도 선명한 1월 19일.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던 난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는데 이건 누가 뭐래도 전적으로 아내덕이었다.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는 거라며 나를 다독여준 아내의 위로에 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아내가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당장 회사 알아보라고 나를 더 구석으로 몰아세웠다면 무너진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저 지하 어딘가에 처박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1월 19일, 금요일에 바로 회사를 관두고 주말 이틀을 보낸 뒤 월요일 아침부터 바로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가방에 노트북 하나와 직접 내린 커피를 담은 텀블러를 담아. 사실 요즘은 핸드폰으로 취업포탈 어플을 통해 입사지원을 쉽게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난 왠지 노트북을 켜고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구직활동을 한다기보다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도서관이 문을 여는 아침 9시에 맞춰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내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혹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어떡하나 싶어 아침마다 서둘러 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찬 바람을 맞으며 도서관으로 향하던 그 길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걱정과 막막함, 한 번 해보자는 의지와 열정, 그럼에도 다시 잘할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 그리고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떠오르곤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금이라도 괜찮다 싶은 입사공고를 보면 지원서를 넣었는데 그러다 보니 며칠 안돼 거의 100여 곳의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넣게 됐다. 리스트를 보니 그동안의 경력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거나 이름을 들어본 회사다 싶으면 별생각 없이 모두 지원을 해버렸던 거다. 이건 아니다 싶어 지원 리스트를 보며 조금 아리송한 회사들은 지원 취소를 했음에도 상당히 많은 회사에 지원을 하게 됐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물론 지원기간이 남아있기도 했지만 분명 회사 입장에서 괜찮다 싶은 지원자에겐 마감기한 전이라도 연락을 할 것이었다. 조급해하지 말자 다짐했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급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다섯 번의 기회


그렇게 열흘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지원했던 회사 한 곳에서 면접제의가 왔다. 광화문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였는데 미국 투자회사로부터 대형 투자를 받았고 회사의 사업분야도 비전이 있어 보여 지원은 했지만 나이가 많아 크게 기대를 하고 있진 않았는데 연락이 왔던 것이다.


면접은 비대면 영상면접으로 진행됐고 믿을 수 없게도 면접이 끝나고 얼마 후 인사 담당자에게서 합격했다고,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냐는 연락을 받았다.

이 말에 나도 놀라 물었다.

"죄송한데, 제대로 연락 주신 거 맞죠?"

인사 담당자는 맞다고, "***님, 합격 맞습니다." 하고 친절하게 한 번 더 얘기해 줬다.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지 몰라서요.. 저 2월 초부터 바로 출근 가능합니다."

그렇게 내 출근 날짜는 구정연휴가 끝나고 나서인 2월 13일로 정해졌는데 더욱 놀라운 건 그다음부터였다.


출근이 확정되고 며칠 사이 4곳의 회사에서 면접제의가 더 들어왔다. 연락이 없다가 이렇게 한 번에 연락이 온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크게 느껴졌던 건 그래도 아직은 내가 어딘가에선 쓸모가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안도감이었다.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통보를 받은 이후로 바닥에 붙어있던 자존감이 조금은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일단 들어온 면접은 다 보는 것으로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면접 일정이 빡빡해서 시간적 여유는 많지 않았지만 각 회사의 주요 사업들, 이슈사항, 앞으로의 비전 등을 검색해 보며 한 곳 한 곳, 최선을 다해 면접을 준비했다.


네 번의 성공


그렇게 1주 만에 회사 4곳의 면접을 끝냈다. 이직을 몇 번 하면서 면접에 대한 나름의 확신이 하나 생겼는데 그건 어렵고 못 본 거 같다 싶은 면접에서 합격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내 경우엔 대부분 그랬다. 잘 본 것 같은 면접은 한 번도 붙은 적이 없었고 합격한 면접들은 대부분 면접시간 내내 진땀 빼고 어렵게 진행됐던 면접들이었다.


이번 면접들이 대부분 그랬다. 나름 준비를 많이 하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꽤나 많았고 이에 대답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싶 때도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면접을 보고 처음 합격했던 스타트업 회사의 출근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면접 본 4곳의 회사 중 3곳에서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5번의 면접 중 4개 회사 합격.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잘려 갈 곳이 없어졌던 내가 이제는 어느 회사를 가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인데 이게 불과 한 달도 안돼서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 일 정말,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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