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해변에서 출발해 삼척으로 가는 내내 비가 내렸다. 야속한 날씨였다. 이놈의 비가하루만 참아주면 좋았으련만.
삼척 도착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리조트에 도착했는데 이제 막 체크인이 시작돼 사람들이 꽤나 몰려 있었으나 다행히 먼저 도착해 있던 형들 덕에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형들이 강릉에서 먼저 간다고 했을 땐 좀 그랬는데 이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이야.
예약해 둔 저녁식사 시간까지는 2시간이 넘게 남아있었지만 비가 와서 어딜 다녀오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부모님과 방을 나와 리조트 주변을 산책하려 했는데 이마저도 비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고 방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들어와 보니 형들은 피곤한지 자고 있었고 부모님과 난 식탁에 앉아 엄마가 집에서 싸 온 과일을 먹었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나왔으면 뭐라도 같이 좀 하지 저렇게 잠만 자네요."
살짝 불만 섞인 내 얘기에
"형들이 바쁘잖어. 평소에 많이 못 자니까 여기서라도 자야제." 라고 말씀하시는 엄마.
이에 "엄마, 저도 바빠요 저도."라고 말씀드렸더니 엄마도 민망하신지 깔깔 웃으셨다.
물론 형들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도 오랜만의 가족여행인 만큼 뭐라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부모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식당 예약시간이 다 됐다. 오늘 저녁은 숙소 근처 대게집으로 예약을 했는데 식당에서 리조트까지 왕복으로 픽업을 해준다 했다. 픽업 시간에 맞춰 나가 보니 식당 승합차가 와 있어서 비는 오지만 편하게 식당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되게 맛있는 대게
식당 예약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었는데(이후 시간은 다 예약이 차 있었다.) 저녁시간 치고는 좀 이르다 생각했건만 웬걸, 식당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가 이 정도인가 싶은 생각에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며 다른 테이블을 봤더니 살이 가득 찬 대게가 보기에도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갑자기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테이블도 음식이 나왔다. 먼저 오징어순대, 튀김, 닭강정, 회 등 다양한 음식들이 나왔는데 보이는 것만큼 꽤나 맛이 있었고 드디어 나온 메인요리 대게도 우리의 기대치를 충분히 채워주고 남을 만큼 맛이 있었다. 러시아산 대게라 했는데 사이즈도 크고 살이 꽉 차 있어 너무 맛있었다. 가족들 모두 만족해하며 함께 나온 홍게라면과 마지막으로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먹은 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당구
식당 승합차에서 내려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옆을 보니 당구대가 몇 개 있었다. 작년 추석에 가족여행을 갔을 때 아빠와 당구를 쳤던 게 생각났는데 큰형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당구 한 게임 치고 가자고 해서 온 가족이 발걸음을 돌려 당구장으로 들어갔다. 역시 아빠는 당구를 잘 치신다. 예전 내가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서 당구장에 갔던 기억이 드문드문 나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그때도 내 기억에 아빠는 당구를 꽤나 잘 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구를 치시는 아빠의 얼굴은 이번 여행 중 가장 밝아 보이시는 듯했다.
당구를 치고 들어와서 다들 잘 준비를 시작했는데 난 그래도 뭔가 아쉬워 혼자 밤 산책을 하러 나갔다. 이놈의 비는 아직까지도 내리고 있었고 날씨가 짓궂어서인지 숙소 앞 바다의 파도소리가 꽤나 거칠게 들리는 듯했다.
산책을 다녀오니 아빠와 형들은 잠들어 있었고 엄마만 소파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안 피곤하셔요?"
"그래도 이건 보고 자야제."
엄마가 보고 계셨던 건 거의 빼먹지 않고 챙겨보시는 KBS주말 드라마였다. 하긴, 나도 결혼 전에는 집에서 일요일 저녁마다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 주말 드라마를 함께 보곤 했었다. 지금은 집에서 TV를 치워버렸지만.
피곤하신 엄마는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음과 사투를 벌이셨고 안 되겠다 싶어 엄마를 침대로 모셔다 드리고 나도 잘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