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네모의 방에
처음처럼, 순하리, 참이슬……
이름도 예쁜 병들이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다
어찌 될 운명인지 알지 못해도 불러 주길 기다린다
더위가 온몸에 감겨드는 여름밤
이름 불려 선술집 탁자에 올려지는 병
긴장감을 견디지 못해 온몸에 땀을 흘린다
병마개에 쇠 올가미를 걸자
‘뻥’하는 짧은 신음 토하며 뒹구는 마개
서로가 서로에게 떨어질 수 없을 듯 꽉 밀착되었지만
한순간의 이별에는 인사도 없다
시원한 술 한 모금이
고단한 사람들의 목젖을 타고 내려간다
오가는 술잔 속에 채움과 비움
오가는 정담 속에 막힌 곳을 뚫고 마른 곳을 적신다
몸을 추스른 병은
선술집 탁자에 쏟아지는 사연을 제 일 인양 듣는다
비워지는 병이 많을수록 사람들 얼굴이 노을에 물들고
밤이 깊을수록 선술집 바닥에 마개가 쌓여간다
선술집 구석에는 봉인 해제된 입들이 늘어난다
억압에서 풀려난 빈병들의 속 앓는 소리가 밤을 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