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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Oct 19. 2022

티칭 아티스트의 첫사랑

너희들을 생각하며 쓰는 편지


 3차시 '집속의 집' 수업을 들어준 우리 명일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에게,


안녕 친구들, 반짝 선생님이야. 선생님이 예술로 플러스 TA를 하며 처음 만난 친구들이 너희여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매주 너희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단다. 이번 수업은 선생님이 처음으로 연구 주제를 맡아서 전담으로 진행했었어. 그래서 마치 너희를 처음 만나기 전처럼 이번 수업 시간은 정말 긴장이 많이 됐어. '내가 만든 수업을 너희들이 지루해하면 어쩌지?, 흥미가 없으면 어쩌지?'등등 내 머릿속에는 많은 불안한 감정이 떠다녔던 것 같아. 모든 예술로 플러스 수업을 통틀어서 수업 준비에 온 힘을 쓰며 욕심도, 부담도 많이 가졌던 시간이었어.


하지만 수업에 들어와 보니, 너희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굳어있던 마음이 살살 녹더라. 처음 해보는 오늘의 주인공인 예술가의 삶을 표현해야 하는 퍼포먼스도, 함께 만들어 본 집도, 예술가에 관한 전시 큐레이팅도, 어디든지 이동 가능한 집을 함께 만들어 본 시간도 모두 우리에겐 잊지 못할 인생의 챕터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해. 워낙 선생님이 하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것들을 모두 넣어보았던 수업이라 원래의 80분보다 더 긴 거의 100분의 수업을 함께 했잖아. 초등학교 5학년에게 100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데 쉬는 시간 없이 즐겁게 따라와 준 너희들이 신기할 뿐이야. 사실 선생님은 80분 정도 되니 등에서 약간의 식은땀도 나서 중간마다 '헥헥' 거리기도 했어. 아마도 수업 전 후로 두 박스의 전시 설치가 만만치 않았던 것 같아. 비밀인데 선생님은 엄청 약한 체력을 가졌거든. 그래서 너희들 생각하면서 더욱이 헬스장에 가서 10kg의 아령을 들고 요즘은 운동한단다. 수업시간만 되면 한 순간도 지치지 않는 너희들 덕분에 내 인생에서 없을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전시 큐레이팅을 하는 과정

특히 선생님이 가장 좋았던 시간은 전시를 큐레이팅 하던 시간이었어. 처음 전시를 볼 때 선생님이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작품을 바라보고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라고 했잖아. 아마도 시각 예술가로서 너희가 나중에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았을 때 가만히 1분이라도 그 자리에 서서 작품의 의도와 생각들을 가만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서였을 거야. 이 날 배웠던 것처럼 너희가 어른이 돼서도 매 순간 자신의 눈에 들어온 아름다운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감상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요즘 쌀쌀한 10월 붉게 물든 낙엽도 작품처럼 느낄 수 있는 마음 말이야!


그리고 이 시간 동안 너희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졌던 게 기억이 날지 모르겠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희들이 찾아야 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더 좋은 질문으로 걸어가는 길이라는 걸 잠시나마 알려주고 싶었어. 준비한 10개의 질문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잘 따라와 줘서 너무 고마워. 그 질문 기억나니? 마지막에 "예술가가 되는 게 꿈인 친구 있나요?"라고 물어봤잖아. 그때 번쩍 손을 들어주며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해줬던 친구들은 꼭 예술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예술가가 세상을 빛내주면 좋겠다. 혹시라도 가는 길이 어렵지 않게 선생님은 이 길을 지키며 갈고닦고 있을 테니 걱정 마.


지금 너희가 예술로 플러스를 함께하는 시간에 예술에 관한 시야가 점점 넓어지는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 그리고 나 또한 너희들을 통해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 몰라. 수업 전날 마음이 두근거리고, 찡하고, 애틋하고, 보고 싶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무수한 감정을 느낀다는 거 이거 아마도 사랑인 것 같은데, 사춘기가 온 너희들에게 말하면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이 마음은 편지를 대신해서 적어.


우리 소중한 명일초등학교 5학년 친구들, 언제나 반짝거리는 눈으로 반짝 선생님을 바라봐주는, 때로는 반짝 거리는 손 모양으로 나를 반겨주는 너희가 있어 첫 티칭 아티스트를 씩씩하게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더 많이 행복하자. 정말 온 맘 다해 고맙고 사랑해.


- 2022년 10월 19일 수요일, 너희들을 너무 사랑하는 반짝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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