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8개월 동안 공부하기
수업을 듣던 중 놀이터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동네 주변의 Museum of World Culture 안에 있는 실내 놀이터를 발견하였다. 뮤지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Tillsammans =Together'이라는 단어. '어린아이들에게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도 오늘만큼은 어린이가 되어보자!'라는 강한 열망을 품고 뮤지엄 입구 주변에 줄 서있는 많은 어린이들과 함께 호기심 투성이인 공간에 한 발자국 발걸음을 두었다.
다정한 놀이공원 같은 뮤지엄에 들어가려면 일단 신발을 가지런히 두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규칙이었다. 귀여운 어린이들은 입구에 신발을 가지런히 두었고, 나도 그 옆에 신발을 벗어보니 촉감에 대한 경험이 크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신발이 없이 뛰어놀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짜 놀이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과 동시에 다양한 색깔로 이루어진 동굴을 들어가면 막 태어난 신생아부터 어린이까지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뮤지엄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기어 다니고, 돌아다니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정말이지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이 뮤지엄 덕분에 아이 키우는 게 걱정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스웨덴의 육아정책은 굉장히 좋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 계속해서 출산율이 늘어나고 있다. 정책이 좋은 것도 있지만 이렇게 좋은 뮤지엄이 동네에 있으니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것을 걱정을 할 이유가 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그림자놀이였다. 사계절 중 겨울 그리고 어둠이 반절 이상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스웨덴 사람들은 빛을 다루는 것에 있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어떤 화려한 장치도 없이 오직 조명 다섯 개로 모든 무대 공간을 디자인했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 환경 덕분에 스웨덴에서 가장 많이 배웠던 건 빛에 대한 이해였던 것 같다. 빛을 어떻게 다뤄야 좋은지, 빛으로 얼마나 큰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빛이 예술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등.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도 뮤지엄 안에는 빛을 통해 배우는 놀이들이 굉장히 잘 구성되어 있었고, 이를 통해 스웨덴의 어린이들은 이른 나이부터 빛에 대한 미적 감각을 깨우칠 수 있는 교육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두운 나라에서도 빛을 그림 그리듯이 그려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스웨덴 조명 디자인의 특출남이 분명하게 사실로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 가운데 쉬는 공간이 함께 있는 것도 참으로 좋았다. 쉰다는 것은 삶을 살면서도 큰 의미일 텐데 뮤지엄 한가운데 놓여있던 의자는 큰 위로처럼 느껴졌다. 사실 어렸을 때 거의 뛰어놀던 경험이 없던 나에게는 이곳에 놓여있는 의자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마치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어린이들이 있기 꼭 필요한 공간임이 분명했다.
반면 활동적인 공간은 언제나 활발한 어린이들로 가득했다. 진정한 즐거움을 거짓 없이 내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분이 한껏 들떠 있었다. 그 가운데 있다 보니 잔뜩 흥이 올랐고 레퍼런스를 찾겠다는 핑계로 어린이들을 따라 이것저것 다양한 놀이들을 경험해보았다. 아주 다행히도 스웨덴은 바이킹족이기에 어린이들도 큰 체구를 가지고 있었고 그만큼 놀이기구들도 튼튼해서 성인인 내가 놀아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한참을 신나게 놀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놀이를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웃음과 삶에 활력을 주는지 느끼게 되었고 입구에 들어설 때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마냥 부러웠었는데 어느새 이 공간에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뮤지엄을 방문한 덕에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게 되었고 '놀이'가 정말 많은 부분 어린이들의 삶을 차지하며 어린 시절 마음껏 놀아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일수록 삶을 마음껏 만끽할 기회를 알아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다양한 놀이를 경험하면서 나는 오히려 한층 더 즐거운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너무 많은 시간 우리 어린이들은 폐쇄된 놀이터만을 바라보고 있다. 더 이상의 다른 대책은 없는 것일까? 이 시대의 어린이가 어린이 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스크 없이 마음껏 놀이터에서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필요한 시대가 다가오지 않았는가?
누군가 폐쇄된 놀이터를 대체할만한 놀이공간을 빨리 만들어주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같은 편이 되고 싶지 않던 아이와 한편이 되어 보고, 박수도 받아 보고, 믿기지 않는 승리나 아까운 패배를 경험하는 것은 어떤가. 같은 편이 되고 싶지 않던 아이와 한편이 되어 보고, 힘을 합치고, 의외로 손발이 맞아 가까워졌다가 다시 실망하고 다시 기대하는 것도 소득이 아닐까? 복잡한 감정들을 곱씹으며 집에 갔다가 다음 날이면 모든 것을 깨끗이 잊고 어린이는 다시 놀이터로 달려 나간다. 나는 이런 순간들이 어린이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잊고 자기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노는 그 순간이 어린이의 현재를 빛나게 한다. '놀기'에는 아주 큰 소득이 있다.
-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