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또 하나의 가족 1
2022년 6월 27일 Asia Teaching Artist 프로젝트가 있어 싱가포르에서 일을 봐야 하는 상황. 보통 출장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서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많이 생각할 텐데 싱가포르 호텔은 워낙 비싸기 때문에 프로젝트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코 워커 J는 자신의 집에서 머무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겠지만, 워낙 여행하면서 하숙 생활을 많이 해본지라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고 프로젝트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좋은 호텔보다는 불편함을 마다하고 J의 집에 머무르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판단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나의 대답은 "Why not?"이었다. 물론 중요한 점은 아시아 가족특성상 결혼 전이기에 그들의 가족이 다 같이 산다는 것이었고 나는 또 이렇게 새로운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J는 자신의 언니와 방을 함께 사용했다며 자신의 침대 하나를 건네주었고, 또 내가 편하게 옷을 걸 수 있게 행거도 하나 설치해주었다. 방은 굉장히 아시아식으로 코 지함을 느낄 수 있었고 싱가포르의 더욱 날씨 특성상 벌레는 많았지만 지금 내가 이것저것 마다할 때인가. 몸을 누일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저 너무 감사했고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하숙하며 다른 가족들과 동고동락하기로 마음먹은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다.
첫날에는 적응하기 많이 어색하기도 했고, 한국에서 마음이 많이 무너진 상태로 출발해서 그런지 모든 것들이 살짝쿵 쉽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로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고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다른 가족의 집에서 머문다는 게 얼마나 실례인가 싶기도 하며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도 되고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생각하지 말고 있는 내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자. 한번 사는 인생 생각하다가 머리 터지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30평 정도 되는 집은 수많은 붉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들은 영어, 말레이시아어, 중국어를 섞어 쓰며 대화를 했다. 물론 제1 언어는 영어라서 소통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말이 통한다는 건 또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곳에서 7박 8일이 어땟냐고 물어보면 딱 한 단어가 생각난다. '가족' 그 자체였다. 그냥 상투적인 가족 말고 진짜 가족, 정말로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필 출발 날부터 생리를 시작해서 애를 먹었는데, J의 엄마는 나를 위해 말레이시아 유이 오일을 마트에서 사 왔다.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고, 바르는 방법과 애정 어린 눈빛을 보여주는 것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함께 보낸 시간이 몇 시간도 안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고 싶어 하는 '엄마' 그 자체의 모습이 보여서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에는 한창 자존감이 많이 내려갔던 나에게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 사랑의 위로들을 누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사랑을 잘 주는 것만큼 사랑을 잘 받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었을까?
싱가포르 도심에서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마치 내가 경기도에 살았을 때 느꼈던 기분이랄까,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이곳의 풍경은 나를 조금 더 침착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풍성한 시간들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고 싱가포르는 '내가 인생에서 꼭 한번 살아봐야 할 나라'라는 마음이 굳게 들었다. 그리고 집에 오면 망고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가족들이 망고를 잔뜩 사놓았다. 정말 웃긴 건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망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렇게 무한한 사랑 속에서의 싱가포르 하숙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