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또 하나의 가족 2
나는 단순히 하숙생도, 게스트도 아닌 정말 딸로서 그들의 케어를 받았다. 정말 재밌는 스토리는 J의 남동생과 나는 생년월일이 똑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Twin이라 부르며 지냈고, 그들의 그 사실을 알고 나서 J의 부모님도 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또 그간 여행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넉살을 쌓아왔는가. 당연히 그들은 나의 파파이자 마마였다. 이런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얼마나 쉬웠는지 모른다. 내가 하는 표현, 표정들을 너무 사랑해주었고 아낌없이 매일같이 칭찬해주었다.
그래도 좀 웃기지 않은가. 무엇이 그렇게 통했길래 가족까지 되어버렸는지 생각해보면 아마도 비슷한 아시아 문화권의 가족이 나에겐 어색하지 않았고, 실은 매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도 한 몫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짜 말 그대로 Funny Family였고, 서로 장난치고 부대끼며 그 순간들을 즐거워하는데 정말이지 개그코드가 딱 맞았다고나 할까. 한번 사는 인생 심각한 고민할 것 없이 한참 웃다 보면 시간이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 유쾌하고 행복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고, 그동안 삶을 너무 심각하고 무겁게 대한 태도 자체가 조금 나 자신에 미안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해외에 나가지 못하면서 나 자신에게 '너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해.'라고 스스로를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압박했는지 모른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 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예기치 않은 아름다운 기회와 선택들은 무수하게 세상에 존재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보는 눈은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분별된다.
내가 경험한 이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자산이다. 가족이라는 게 무엇인지, 문화라는 게 무엇인지,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 모든 것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말이지 이곳은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있어 다문화의 끝을 보여주었다. 평소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사색하기엔 최적의 도시였고 너무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쇼핑몰 한군 대만 가도 수많은 나라의 음식들이 있어 선택의 폭이 정말 넓다. 동서양의 문화과 함께 어우러져 모든 것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느껴졌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밖으로 나와 말로는 표현 못할 상쾌함이 내 머리를 흔들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의 기여는 J가족이 큰 몫을 한다. 그들의 따뜻하고 넓은 마음은 나의 좁은 생각을 활짝 열게끔 만들었다. J의 엄마는 가족의 어린 시절 앨범을 보여주며 즐거움과 어려움이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매일 아웅다웅하더라도 튼튼하고 견고하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웃으면서 견뎌낸 이야기까지도 모든 과정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결국 이렇게 또 하나의 세상을 배워간다. 내가 가진 틀을 깨고 나가기 위해서는 삶에서 순례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떠돌면서 사는 삶이지만 그 안에서 무엇이 내 것이고 아닌지 분별하며 난 더욱이 나 자신이 되어간다.
'세상에 이렇게 스윗 할 수 있어?'라고 할 만큼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J의 가족들은 내가 집에 머무는 동안 그저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을 1순위로 여겼다. 재밌는 건 내가 없더라도 그들은 행복을 1순위로 여기고 무엇을 하면 더 행복할지 매 순간 고민하고 선택한다는 것. 그리고 또 제일 많이 들었던 문장은 "Never Mind", 삶을 가벼이 즐겁게 여기는 태도. 물론 여유가 넘치는 싱가포르 삶에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문장을 이제 한국에서의 삶에 가져와 내 것으로 만드려고 한다.
지나간 삶에 대해서는 Never Mind, 그리고 현재의 삶은 Be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