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또 하나의 가족 3
정말이지 7박의 짧은 하숙이라고 하기엔 이곳에 있는 동안 나의 감정은 70박 정도로 올라와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큰 사랑을 매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매일 신기하고 놀라웠다. 일단 무엇보다 J의 엄마는 누구보다 나를 너무 많이 사랑해주었다. 아낌없고 넘치는 사랑을 주며 더 넓은 세계를 알려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유쾌한 여성이었다. 같이 있으면 웃음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웃을 수 있는 관계라고나 할까? 지금의 남편과 8년 동안 연애를 하고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더 쇼킹 그 자체였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매일 같이 붙어 다니고 다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도 즐겁다는 것이었다. 이 부부를 보며 정말 자기 짝은 따로 있나 보다 싶다.
그렇게 멋진 어른들의 삶을 통해 좋은 삶이 무엇인지 또 배워간다. 내가 기존에 살아왔던 삶의 기준을 부시고 진짜 살아야 하는 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사람이 변화하는 데는 역시나 그렇듯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J의 엄마가 나에게 준 사랑은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또다시 고민하게 된다. 왜냐면 나도 그녀처럼 멋지고 쿨하게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존경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Never Mind"를 외치고 다프트 펑크의 "One more time"을 노래 부르며 멋쟁이 언니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때론 "Crazy"를 말하고, 그녀의 나이는 66세임에도 불구하고 자유 그 자체였다. 나도 저렇게 멋지게 늙어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진짜 크레이지 한 경험은 따로 있다. J엄마는 11명의 자매, 형제가 있는데 그들이 매일같이 나를 만나러 왔다는 것이다. 무슨 유학 다녀온 딸도 아니고 이건 무슨 상황이람. 그들은 나를 보며 넘치는 칭찬과 사랑과 선물을 주고 매일같이 삶의 큰 격려를 해주고 갔다. '너는 너무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야, 이곳까지 혼자 온 너는 너무 용기 있는 사람이야.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니?'등등. 그들이 나에 대해 아는 건 J의 친구라는 것과 1~2시간 정도의 대화뿐인데 다시 한번 '내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가? 나는 어떻게 이 사랑을 삶에서 베풀며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와 사랑이 넘치는 대화 속에서 잔뜩 성장해가는 모습은 감사와 기쁨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 그들은 나에게 싱가포르 전통의상을 사주었고 그 옷을 입자마자 정말 딸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모두들 쳐다보았다. 사실 조금 충격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는데, 이런 따뜻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의 한 없는 따뜻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지난 나의 삶을 저절로 반성하게 된다. 얼마나 나를 지키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는가? 그 행동들이 옳았는가? 아니, 옳지 않을 일이었다. 그저 사랑받고 주는 일 그것이면 충분한데 나는 무엇을 원했는가?' 지난날의 어리석은 내 모습들을 돌아보며 반성했다. 사랑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저 나를 지키고 싶었고, 내 마음을 어찌할지 모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곳에서 배운 사랑을 그대로 내 삶에서 가져와 실천하면 되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건 내 친구 J, 나보다 6살이나 많지만 초절정 동안에 러블리 그 자체인 그녀. 그녀의 사랑의 원천은 아마도 화목한 가정 안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36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 집, 하나 구하기 힘든 청년 아티스트. 조금 부족하고 없더라도 가족 안에서 감사하고 행복해야 하는 삶을 J에게 배웠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랑과 선물들을 받았는지 돌아와서 보니 샐 수 없었다. 그래도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J의 엄마가 노래 부르던 다프트 펑크 LP, 덕분에 턴테이블 하나 사고, 취미 생활 하나 더 생기게 되었으니 더 풍성한 인생을 살아가겠다 싶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 나이 많은 딸내미에게 방한 구석 내어주는 부모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누군가는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해'라고 하지만 결국 어디서나 타인과 함께 사는 인생, 내 공간과 시간만 확보된다면 함께라면 얼마나 행복한가. 함께라서 100배로 행복한 것들을 알기에 10의 고통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알아간다. 이전에는 함께하는 것이 100의 고통이고 함께하는 것이 10의 행복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내 관점은 너무 좁고 어리석었다. 함께하면 더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서 전전긍긍했던 과거의 시절들이 떠오른다. 이제 그 마음을 떨치고 함께하면 더 기쁘다는 본질을 온몸으로 느꼈기에 기존의 생각과 그에 따른 오해들을 피하지 않고 하나둘씩 부시려 한다.
어른이 될수록 자기 자신을 바꾸기가 힘들어진다는데, 계속해서 나는 변화하기 위해 지금의 고통에 맞서고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더 멋지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기 위해서 자아를 세상에 던져 놓으련다.
가기 전 작별인사는 역시 크레이지 가족답게, 모두 다들 택시 타는 곳으로 나와서 'I love you'를 외치며 슬퍼했다. 나 한국으로 유학 가는 딸 같은 기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렇게나 충만하게 받은 사랑을 통해 2022년 하반기 한국에서의 삶을 써 내려가려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다시 돌아올게'라고 말했고, 그 말을 또 잘 지킬 나 자신을 너무도 잘 안다. 우리의 작별은 영원한 작별이 아니라 시작의 인사였다. 나의 관계성은 항상 그렇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인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들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함께했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또 인생을 꿋꿋이 살아 내다 보면 다시 만나겠지.
떠난 후 가족들의 연락 또한 너무 감사했다. 마을 전체가 나를 위해서 슬퍼하고 있다고 말해주었고 그만큼 나도 '이곳에서 사랑을 많이 나눴구나.'라고 느꼈다. 나에게 2022년 싱가포르에서의 시간은 정말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이 되었고 내 지난 삶을 직면하며 관점 또한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혹시 싱가포르에 간다면 현지인 집에 머물러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아니 싱가포르가 아닌 다른 곳에 가더라도 말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함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불편함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음을 느끼기를 바란다. 작은 시 하나로 오늘의 글을 마친다.
<오늘 하루> - 공영구
모처럼 저녁놀을 바라보며 퇴근했다
저녁밥은 산나물에 고추장 된장 넣고 비벼먹었다
뉴스 보며 흥분하고 연속극 보면서 또 웃었다
무사히 하루가 지났건만 보람될 만한 일이 없다
그저 별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고 자책하면서도
남들처럼 세상을 탓해보지만
늘 그 자리에서 맴돌다 만다
세상살이 역시 별 것 아니라고
남들도 다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살라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 생각났다
사실 별 것도 아닌 것이 별 것도 아닌 곳에서
별 것처럼 살려고 바둥거리니 너무 초라해진다
한심한 생각에 눈감고 잠 청하려니
별의별 생각들 다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오늘 하루 우리 가족
건강하게 잘 먹고 무탈한 모습들 보니
그저 고맙고 다행스러워
행복의 미소 눈언저리까지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