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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렇게 계속 커가는 중이야,
<우리집>

브런치 무비 패스, 영화 <우리집> 윤가은 감독 신작.

by 우란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집 The House of Us , 2018 제작

한국 | 드라마 외 | 2019.08.22 개봉 | 전체관람가 | 92분

감독: 윤가은


우리도 그렇게 계속 커가는 중이야



<우리집>은 공간에 깃든 가족의 이상적인 형태를 짓누르면서 시작한다.

주인공, 하나는 말싸움 중인 부모님 사이에서 숨죽인 채 식탁에 밥을 차린다. 그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는 하나의 움직임이 첫 장면을 가득 채우는데, 이는 <우리집>이 어른이 아닌 '아이의 시선'에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영화의 분위기가 오롯이 하나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좌지우지될 것임을 확신하게 한다. 플롯(이야기)에 집중하는 영화가 아닌 완벽하게 '인물에만' 중점을 두고, 사건을 전개해나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즉 그만큼 감독이 탄생시킨 인물, 아이들이 건넬 '메시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가족은 존재한다. 하나가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의 형태가 특별히 모나고, 우스운 가정이 아니라는 건, 정말, 말 그대로 '당신에게도 가족이 있으니' 알 것이다. 문제는 우린 자꾸 '나의 가족에 심각한 예외성을 주입'한다는 점이다. 나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함, 나의 가족은 보통 평범한 가족들과 다르다는 믿음, 바로 그것이다. 분명 하나에게도 그 믿음이 커가면서, 그녀에게 엄청난 자신감과 힘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대변하는 <우리집>이 보여주는 집의 모양은 특별한 별 모양을 하고 있지 않다.

제시하고 있는 공간도 참 우리집과 다름없다.


그렇다고,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아야 정상인 집은 사실 거짓이며, 지저분하고 온갖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집이 진실이라는 '일방적인 결론'을 내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특별한 가족이란 굳은 믿음에 금이 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금이 가는 순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

특별히 모난 하나의 가족이 평범한 나의 이야기와는 관련 없다고 딱 잡아뗄 수 있는가.

아무리 돌려봐도 하나의 가족과 유미의 가족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가족이다.


<우리집>이 흥미로웠던 건 아이의 관점에서 가족의 문제를 바라봐서가 아닌, 어른이 돼서도 불안한 형태의 가족을 유지 중인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출처: 영화 <우리집> 스틸컷

하나는 밥 한 끼도 가족들과 함께 먹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한다. 매일 밤마다 서로를 물고 뜯으며 비난하기 바쁜 부모님의 사이가 걱정되는데, 오빠는 오로지 여자 친구에게만 관심을 쏟아 더 걱정이다. 반찬을 만드는 자신에게 화를 내고, 안쓰러워하는 엄마의 모습도 이젠 무섭고 지친다. 다 함께 밥상 주변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있음에도 하나에겐 허용되지 않는다.

절망 속에 빠진 그때, 마트 시식코너에서 아주머니에게 핀잔을 듣고 있는 유진을 발견한다.


유미와 유진이는 맞벌이 부모님의 사정으로 단 둘이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운명처럼 세 아이는 금세 친해진다.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의 마음이 예쁘게 모인 것도 있었지만, 하나와 유미는 서로를 부러워하고 있었기에 함께 할 수 있었다. 하나에겐 유미네가 가진 '우리 가족의 토마토 화분'이 없었고, 유미에겐 '매일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하나 언니의 일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동질감이 존재했다.

하나는 이혼을 앞둔 부모님과 가족여행을 갈 수 없었고, 유미는 더 이상 부모님 없이 또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위험한 선택을 하고 만다.

아주 잘못된 선택은 곧 더 큰 시련을 불러오는데, 이를 하나가 알리는 없으니까.


"뭐든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하나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반드시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거라 믿다.

그 굳은 믿음으로 아이들은 '우리집(종이집)'을 만들고, 아무런 의심 없이 길을 떠난다.

출처: 영화 <우리집> 스틸컷

짐작했겠지만, 세 아이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문제의 시작은 하나였다.

가족여행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하나는 늦은 밤, 이혼을 얘기하는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엿듣고 만다. 그토록 자신이 원했던 가족여행을 갔다 오면, 그 순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거란 진실 이미 예정된 미래였다.

같은 직장 동료와 사랑을 고백하는 아빠의 핸드폰과 오빠와 자신을 데리고 외국으로 이민을 떠날 생각인 엄마의 여권까지 훔쳐 숨겨둔 하나였는데...

하나는 자신이 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자 집에서 몰래 나와 곧장, 유미를 설득해 집에서 멀리 도망친다. 그러나 막연히 버스를 타고 해변을 찾아가면 유미의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하나는 또다른 벽에 부딪힌다.


그렇게 하나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으로 안과 공포에 휩싸인 동생들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된다.


유미 역시 마찬가지다. 동생 유진의 손을 꽉 잡고 있지만, 갈 수 있는 안전한 목적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미는 어두워지는 해변에 길을 잃은 채 서 있는 것도 두렵고 무섭지만, 집이 팔릴 위기에 있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다.


어떠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 하나와 유미는 서로의 마음을 할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는 분에 못 이겨 정성스럽게 만들었던 '우리집'을 발로 밟아 부숴버린다.


"진짜! 이런 걸 왜 만들어가지고!"
(도대체 가족은 누가 만들어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내가 바랬던 건 그냥 함께 밥 먹는 거였는데...!)

출처: 영화 <우리집> 스틸컷

아마 하나가 겪은 가장 첫 번째 통증이었을 것이다. 바로 성장통.


이후 세 아이에게 펼쳐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우리집>이 상처 입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따뜻한 손길에 해당한다. 물론 해변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내어준 것은 너무나 고마웠다. 나란히 누워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대신 잘 전달해줬으니까.

왜 모르겠는가. 아이들의 마음을 다 한 번쯤은 겪어본 우리인데.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름다운 동화 속 이야기로는 단 하루조차도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다. 뭐든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란 순수한 의도와 진심만으로는 우리의 현실을 살아갈 수 없는 법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로 퉁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세상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경험은 누구나 다 겪고 느낀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특히 가족에 대한 '나 자신의 행위'가 모두 긍정 효과를 불러올 수 없다는 것. 동시에 벌어진 일이 그렇게 무섭고 공포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게 처음엔 잔인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흘러간다는 비밀을 알게 될 거라는 것까지 전부.


<우리집>은 끝까지 아이들에게 '괜찮다,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에게 일어날 일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거라고 이해시키고자 한다.

앞으로 꽃길만 있을 거라는 막연하고도 무책임한 희망 대신 "우리 다 같이 밥 먹자."라고 말한 하나를 보여준다. 변하지 않을 현실을 받아들인 유미에게서 울음이 아닌 "하나 언니, 언니는 우리가 이사 가도 계속 우리 언니 해줄 거지?"란 말을 하게 한다.

출처: 영화 <우리집> 스틸컷

"하나 언니, 언니는 우리가 이사 가도 계속 우리 언니 해줄 거지? "

"당연하지! 언니는 계속 너희 언니 할 거야!"


아이들의 마지막 대화에서 <우리집>은 명확하게 우리에게 말한다.

이게 진정한 희망이자,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따뜻함이라고.

다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고,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은 그런 의미에서 성장영화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아이들이 직접 '집'을 부숴준 덕분에, 우리도 밝게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겠다.


"현재 우리도 그렇게 계속 커가는 중이야"고.










PS. 브런치무비패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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