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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시기에,
<사랑해도 괜찮아>

꿈만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보여주는 영화.

by 우란

* 본 리뷰는 영화의 반전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해도 괜찮아 The Sense of Wonder, 2015

프랑스 | 로맨스/멜로 | 전체관람가 | 101분

감독: 에릭 베스나르



지금 같은 시기에, <사랑해도 괜찮아>


프랑스 영화의 매력은 아름다운 언어와 카메라에 가득 담긴 자연경관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드넓은 프로방스를 주무대로 한 이야기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관객에게 진정한 힐링을 경험하게 한다. <사랑해도 괜찮아> 역시 다르지 않다.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새로운 관계 앞에 놓인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 넣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시기에, 활짝 핀 꽃들을 직접 볼 수 없어 슬픈 이들에게 참 좋은 영화다. 주인공들의 밀고 당기는 멜로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지만, 이 작품의 묘미는 그들의 로맨스를 한층 더 아름답게 하는 배경에 있으니까. 눈에 선한 꽃들은 물론이고 답답한 마음을 한방에 뚫어줄 프로방스로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생각날 영화다. 물론 '인물들과 함께 섞인 자연'에 초점이 맞춰 있기에 알랑 그스포너 감독의 <하이디>(2015)처럼 독일, 스위스의 광활한 대자연을 감상할 수는 없다. (만약에 가슴 뛰는 대자연을 감상하고 싶다면, <하이디>를 추천한다.)

6c4c61f881eb481fb58f4b4216e37c2d1537317953887.jpg 출처: 영화<사랑해도 괜찮아> 스틸컷

루이즈는 남편을 스카이다이빙 사고로 한순간에 잃고,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대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반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농장일을 전문적으로 맡았던 남편의 부재는 그녀에게 막대한 빚으로 넘어왔다. 그녀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웃 주인(남편 친구)에게 농장을 팔고 빚을 갚는 방법뿐이다. 농장을 팔고 싶지 않은 마음은 대대로 물려받은 그녀나, 이미 농장을 집으로 여기는 두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기에, 루이즈는 오늘도 직접 키운 과일과 만든 잼, 과자를 마켓으로 가지고 나가 팔면서 꾸역꾸역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런 그녀 앞에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 한순간의 부주의로 남자를 차로 박아버린 루이즈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치료를 해주고 잠을 재워준다. 마치 운명처럼. 자신만의 규칙으로 만든 세계에 빠져있는 그 남자는 다음 해가 뜰 때까지 루이즈의 난장판인 집 안을 깔끔하게 치우기까지 한다. 마치 그녀의 집이 자신의 세계가 되었다는 듯, 새로운 미지의 땅을 발견한 것처럼 마법에 홀린 듯 움직여 루이즈와 두 아이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896fe18d520eb917bfb7a00b40b8dd8738bc90c0.jpg 출처: 영화<사랑해도 괜찮아> 스틸컷

그의 이름은 피에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해킹 천재다. 다만, 정부기관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한 까닭에 보호관찰을 명 받아, 정기적으로 정신감정을 받고 있었다.
그는 루이즈의 집안을 단 하룻밤 사이에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입력하고, 그녀의 농장에 푹 빠진다. 분명 평범한 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지만, 피에르는 단 한 번도 루이즈에게 특별하다거나 다른 느낌의 대우를 받지 않는다. 아마 이 부분이 <사랑해도 괜찮아>의 편견 없는 시선이자 따뜻한 시각일 것이다.

그들의 하루는 일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로맨틱함을 불러일으킨다. 피에르의 거짓말 못하는 말과 행동이 그 핵심 축을 담당하고. 그의 수많은 수신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루이즈의 수줍은 미소와 맑은 웃음이 자연스러운 멜로 공식으로 이어져 익숙함과 신선함을 제공한다. 피에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 37이 루이즈의 나이여서 그녀에게 꽃다발을 37개를 보낸 것도, 모든 물건에 동그란 스티커를 붙이는 행동과 질문에 질문을 얻는 그의 독특한 대화법도 전부 루이즈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수신된다. 그런 자유롭고도 애정 어린 감정의 곡선이 루이즈의 딸과 아들에게도 이어지면서, 그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공허하고 외로운 마음의 구멍을 서로를 통해 채워간다.

6ea12956c2aea64d6ce6acc01eaa9d305a306202.jpg 출처: 영화<사랑해도 괜찮아> 스틸컷

특히 피에르가 던지는 말들은 전부 의미심장하거나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의 집합이 아니다.
일방적인 언어를 조합해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데, 이 부분이 참 영화 내내 인상적이다. 엄마 몰래 돈을 벌어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딸에게 "네가 너무 빨리 자라서 얘기하려고 왔어."라고 말한다거나, 정신감정을 받아야만 정신병원에 갇히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루이즈에게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되묻는 장면은 <사랑해도 괜찮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여러 상황을 주시하고 눈치 보기 바쁜 루이즈'가 아닌, '오롯이 하나,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피에르'에게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해도 괜찮아>는 그가 인간관계에서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과거에서 벗어나 타인과 함께 상생하는 주체로 성장하는 메인 이야기를 로맨스 바로 밑에 숨겨 놓고, 조금씩 밖으로 꺼내 선물 보따리처럼 풀어놓는다.

따라서 우린 루이즈를 떠나 정신과 의사에게 간 피에르의 상처 받은 얼굴을 잊지 못하고, 이후 피에르의 부재에 아쉬움과 어색함을 느끼는 그녀와 아이들의 숨길 수 없는 감정에 쉽게 동화되어, 어느새 그의 컴백을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루이즈가 농장을 팔고 직접 키운 배나무를 자를 때조차도! 얼른 그의 사랑하는 소수를 하늘에서 구름으로 찾고 싶고, 알록달록한 스티커로 완성한 우주를 보고 싶어 지는 것이다.


e8aafef368a64082b1af411b5c016d761537317984790.jpg 출처: 영화<사랑해도 괜찮아> 스틸컷

<사랑해도 괜찮아>는 명백히 해피엔딩을 그린 작품이다. 이제 망설이는 루이즈와 깊은 심연에 빠져버린 피에르를 다시 연결해줄 극적 장치만 남아있다. 바로, 피에르의 보호자 역할을 해왔던 서점 주인. 그는 피에르를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며, 루이즈에게 너의 모든 것을 던져보라고 조언한다. 멋진 말과 함께.

"사랑한단 말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아. 하지만 모든 것 걸어볼 만한 게 바로 사랑이지."
"어렵지 않아."


서점 주인의 말처럼 직접 해보지 않으면, 우린 결코 그 망설였던 일에 대해 스스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건 곧 감정을 정리할 수 없단 얘기이며, 평생 후회를 동반한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혀 다시 다가올 일에 편견을 갖게 된다는 말과 같다. 피에르는 평생 그렇게 마음을 굳게 닫아왔다. 미리 겁을 먹었고 대화를 단절했으며 자신만의 신호로 타인에게서 스스로를 지켜냈다. 소통이 아닌 독단으로.

결코 어렵지 않다는 말이 신기하게 딱 들어맞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피에르의 고백이 루이즈의 마음을 녹인 것처럼.
사실, 그의 첫마디도 생생하게 기억 남는다. 그렇게 노골적이면서 안심되는 말을 했는지, 역시 피에르 다웠다.

"난 스카이다이빙 안 해요. 사라지지도 죽지도 않을 게요. 당신을 혼자 두지 않을 거예요."

<사랑해도 괜찮아>의 결말은 예측이 쉽지만, 따뜻함은 끝으로 가면 갈수록 넘쳐흐른다. 서로를 간절히 필요한 이들이 함께 살 미래가 밝을 거란 확신도 가득하다.


프랑스 프로방스의 자연을 담으면서 엉켜있던 가족의 실타래를 풀었던 로즈 보쉬 감독의 <러브 인 프로방스>(2014)보다도 색감과 영상미가 좋다. <러브 인 프로방스>는 사건이 주된 관심사로 중심을 잡고 있었기에 자연이 주는 본능적이면서 입체적인 느낌은 덜했다. 하지만 <사랑해도 괜찮아>는 인물들이 모두 자연에 녹아들어 있어 편안했고, 그림 같은 자연환경에 건강함과 상쾌함까지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은 배경음악을 가득 채우는 자연의 소리에 그대로 몸을 맡긴 인물의 사소하고도 느린 표정, 행동들의 연속에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만큼은 꼭 느껴보길 추천한다.



여러모로 지금 같은 시기에 딱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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