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고도 희망적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그러나 아이들은 선택하고.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 2004 제작
일본 / 드라마 / 104분 / 전체관람가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무도 모른다>는 자극적인 장면을 태연하게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세상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이는 모두 '어쩔 수 없는 삶의 방식'이라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햇살을 그들에게 비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이 가득 하단 오해는 곧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하고, 이내 그 마음을 아무렇지 말할 수 없어 슬프게 한다. '다 그렇게 사는 거지'란 철없는 생각도, 그보다 더 나은 말을 찾을 수도 없게 한다.
'아무도 모른다'란 제목부터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출생기록부에도 남지 못한 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까지 들게 하는 걸 보니, 감독은 그 지점에서 절대 이탈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햇빛을 통해 내비치고 있는 것 같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아이들에게 내려앉은 어둠을 고발하지 않는다. 용기 내 다가와 함께 하지 않을 거면 함부로 '불쌍하다', '안타깝다' 말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아이들이 빈 컵라면 통으로 버려진 꽃을 심어 화분을 만드는 장면으로, 공중전화 박스에서 잔돈을 찾는 셋째의 모습으로, 각자 맡은 일을 들고 집으로 함께 걸어가는 장면으로 대신 보여준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장면들은 너무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서 눈물을 쏟아내기도 어렵게 한다.
그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따뜻한 시선이 뿜어져 나오는지 알기 때문이다.
홀로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장남, 아키라. 그는 어김없이 남자와 여행을 떠나 놀고 오겠다는 철없는 엄마의 요구에 어떠한 비난도 하지 못한다. 비난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겠지.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고, 또 그 이상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없었으니까. 결정적으로 엄마가 존재했던 때에도 가족을 책임진 것은 오직 아키라뿐이었다.
아키라는 엄마가 남기고 간 돈으로 그녀가 올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아니, 내일이 오기까지 또 하루를 버텨내야 한다. 그러나 어린 동생들은 집주인에게 절대 들키면 안 되지만 한창 뛰어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고, 돈은 점차 떨어져 간다. 결국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받아먹고, 밀린 월세를 요구하는 집주인을 모른 척하고, 공원에서 몰래 빨래하며 간신히 낮과 밤을 보내고 만다.
사실 모두 같이 살아가기 위해 아키라는 자아를 형성하기 이전부터 당연하게 자신을 희생해 왔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이라면, 내가 해야 하니까. 야구 선수가 꿈이었고,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동생들에게 '엄마'의 존재를 지켜주기 위해선 그저 학교 정문을 바라보며 가슴 뛰는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일찍 철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의 몫을 버림으로써 책임감을 배웠던 아이였다.
현실은 어떠한 희생도 끊임없이 요구한다. 매몰차게 또 너무나 손쉽게 주어진 상황에 또 다른 비극을 끼워놓고 '현실'이라 말한다. 새로 사귄 친구 사키는 그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아키라 앞에서 아저씨의 손을 잡고 낯선 건물로 들어간다. 돈을 건네며 대화만 했다는 사키의 말은 아키라의 마음에 더 큰 생채기를 남기고 만다. 매번 새로운 남자와 밤을 지새우는 엄마를 보고 자랐던 아들이었고, 소중한 친구에게서 그런 동정과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자기 발로 자신을 버린 아빠를 찾아가 돈을 구걸한다.
사건들은 그에게 작은 숨구멍도 내어주지 않고 휘몰아친다. 놀러 간 엄마는 사실 자신들을 일찌감치 버린 것이며, 집주인에게 더 이상 동생들을 숨길 수 없다는 것도, 계속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울 수 없다는 것도, 동생들의 '엄마'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도, 전부 말이다.
그래서 막내 유키의 죽음은 그저 또 하나 생겨난 비극적 사건으로 그려진다. 겨우 촛불 하나와 트렁크, 그리고 비행기가 지나가는 호수 앞 모래사장에서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고 조용하게 흘러가는 이유다. "오늘 아침에 유키를 만져봤어. 싸늘한 느낌이 안 좋았어."라며 막내를 묻었던 손을 떠는 아키라의 모습만이 더 많은 이의 마음을 무너지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른다>는 밝고 애정 어린 시선을 끝까지 유지한다. 사키와의 처음 만났던 날부터, 베버려진 꽃을 심은 화분들, 아키라를 활짝 웃게 했던 야구 시합, 셋째의 베란다 탐방기, 날마다 뒷문으로 남은 음식을 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마지막으로 유키를 배웅하는 아키라.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뒷모습까지.
온기는 말 그대로 아이들의 삶 속 곳곳에 담겨있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에서 나온 그 따뜻한 마음 사랑. 그것은 타인들 틈이 아닌, 온전히 그들 안에서 함께 피워낸 꽃이었다. 아키라의 결단에 기꺼이 따르는 동생들의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이는 이유다. 물론 사회가, 가족이 외면했던 아이들의 미래에 또다시 싸늘한 한기가 들이닥치겠지. 하지만 항상 마지막엔 각자 양동이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아키라와 동생들의 뒷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들에 대해 우린 앞으로도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끝까지 햇빛을 선물한 <아무도 모른다>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