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이 메시지가 빠르게 휘발되지 않길 바란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물의 연대기 The Chronology of Water. 2025
감독 크리스틴 스튜어트
영국, 프랑스, 라트비아 / 128분
집요한 버둥거림, <물의 연대기>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원하지 않은 고통과 간절히 바랐던 마음, 행복했던 찰나의 순간들이 제멋대로 섞인 채 수면 위로 표류한다.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가공됐는지 알 수 없다. 흘러가는 일이 존재 이유이자 목적인 시간도 감히 관여하지 못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함부로 다음을 예측할 수도 없는 그곳에 주인공 리디아가 뛰어들어 버둥거린다. 버둥거리며 자신을 낱낱이 기술한다. <물의 연대기>는 그렇게 우리에게 찾아왔다.
재능 있는 수영 선수 리디아는 대학교를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하면서 마침내 성폭력범(아버지)과 지독한 방관자(어머니)에게서 벗어난다. 탈출과 함께 찾은 ‘나’만의 자유, 행복, 사랑, 꿈으로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처참히 실패한다. 한 번도 안전한 자유를 누려본 적 없고, 사랑을 받아본 적 없기에 그녀의 행복과 꿈은 너무나도 손쉽게 섹스와 마약, 술로 채워진다. 본인 의지였는지 타인의 강제였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파괴적인 행위에 중독된다. 끝내 방황을 멈출 수 없던 그녀에게 남은 건 추락뿐이었다. 유일한 탈출구이자, 유일한 배움이었던 수영도 리디아를 구원하지 못한다. 아기까지 잃고 가장 밑바닥에서 떨어진 그녀는 비로소 깨닫는다. 자기 몸과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처참히 망가졌고, 현재 본인에게 필요한 건 도피가 아니라 해방이란 사실을.
사실 글쓰기는 수영보다 더 먼저 리디아의 삶에 스며들어 있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 안에서 가장 무력하게 짓이겨질 때마다 그녀는 연필심을 부러트리고 종이를 찢어가며 글을 썼다. 부모에게서 벗어난 후에도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씀을 멈추지 않던 그녀였다. 글쓰기가 삶의 전부이자 희망임을 알아차린 리디아는 본격적으로 자신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벌어졌는지 따지지 않고, 자기에게 일어난, 또 앞으로 일어날 고통을 전부 기록하는 게 집중한다. 감독은 리디아의 버둥거림을 다양한 방식으로 화면에 담아낸다. 특히 절규가 담긴 그녀의 독백, 고통뿐인 기억과 그 파편들의 혼재, 불안을 조성하는 음향,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이야기 전개 내내 반복된다. 심지어 리디아가 보고, 느끼고, 떠오르는 모든 이미지를 모두 보여주기 위해 안달 난 사람처럼 급하게 서두른다. 따라서 지나치게 혼란스러운데, 이는 리디아에게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트라우마를 그려내는 방식으로 풀이된다. 다소 평범하고 과한 건 사실이지만, 관객에게 전달되는 효과는 확실하다. 처음부터 <물의 연대기>는 폭력으로 점철된 리디아의 기록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하는 투쟁기였으니까.
리디아는 두서없이 쏟아내며 휘갈겼던, 그리하여 엉키기만 했던 글들을 다시 하나하나씩 풀어낸다. 오랜 시간 겪었던 고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정리하고, 분류한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말했던 “순서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내 기억엔 순서가 없다”라는 무력한 고백을 기꺼이 뒤집는다. 파편으로 흩어져버린 기억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잔인했던 폭력과 지독히 반복됐던 자학을 구분해, 현재 본인이 마주한 현실을 직면한다. 행복했던 추억 속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리며, 한때 가족이었고 사랑이었던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는 법도 터득한다. 가해자들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고, 조각나있던 자신을 다시 엮어낼 수 있게 되자, 리디아는 마침내 과거에 발이 묶인 오늘을 흘러가게 놔두며, 피해자이자 스스로에게 가해자였던 나를 깊이 이해하고, 위로하며 용서한다. 자기 자신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던 암흑 속에서 글을 쓰며, 멈춰있던 삶의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한 편의 나를 완성한 그녀는 소설 제목을 ‘물의 연대기’로 결정한다. 비로소 <물의 연대기>가 『물의 연대기』가 된 것이다.
리디아는 집요하게 자신을 끌어내렸다. 상처투성이인 내면을 밖으로 끄집어내 외면까지 무참히 짓밟았다. 서슴없이 맨몸으로 물에 뛰어들었고 그만큼 수면 아래에서 버둥거렸다. 그것이 그녀에겐 당연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당연한 결과는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피할 수 없는 폭력들이 각인될 때마다 얽히는 기록에 불과했던 이야기가 리디아의 연대기로 쓰일 수 있었던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희망을 꿈꾸지 않았으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언젠가는 올 따스한 빛을 기다리는 대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직접 찾으려 고군분투했다. 그 방식으로 글쓰기를 택했고, 진짜 나를 찾기 위해 기꺼이 투쟁했다. 그렇게 자신을 해방했고, 구원했으며 생존한다.
첫 장편 연출작으로 리디아 유크나비치가 쓴 동명의 회고록을 선택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감독은 “책을 40페이지가량 읽자마자 세상에 반드시 보여줘야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히며 <물의 연대기>를 “탄생과 재탄생,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이며 언어를 통해 자기 육체를 되찾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기록을 관찰자(제삼자)가 아닌 사건의 당사자 리디아에게 맡긴 건, 원작 속 리디아를 영화 안에 충실히 담고자 했던 감독의 집요한 버둥거림이었다, 그 결과 <물의 연대기>는 주체성 가득한 작품으로 완성됐다. 자기 주도적이고 굉장히 의식적이며 다분히 노골적이다. (분명 감독 본인 일부도 투영됐다) 따라서 엉망진창으로 느껴질 수 있고 난잡하고 충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결론 내긴 어려울 것이다. 감독과 리디아의 집요한 버둥거림은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니까.
용기가 될지, 위로가 될지, 힘이 될지 모르겠으나, <물의 연대기>는 직설적으로 말한다.
우린, 끊임없이 또 집요하게 자신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버둥거려야 한다고.
감독은 이 메시지가 빠르게 휘발되지 않길 바란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