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 프레임에 가려진 "진짜' 창업의 철학
제 고교시절에는 다음과 같은 인삿말을 친구들과 나누었어요.
"응~ 잘가~ 공부 열심히해~ "
야자를 하는 친구에게 건네기 좋은 인사죠.
그리고, 취직에 처음 성공하고 나서도, 창업을 하고나서도 다음같은 격려를 들었어요.
"그래, 열심히 해봐라. 잘 될거다."
세상에나, 열심히 하기도 어려운데 잘해야 한다니...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누구나 아실 테지만, 세상은 가혹합니다.
치킨을 시켜도 잘하는 맛집에 시키고 싶은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아마 여기까지도 쉽게 납득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달라요.
열심히 무언가를 해내는 것은, 결국 시간과 관련있는 이야기 입니다.
야자를 하는 고등학생, 졸업작품을 위해 철야를 해낸 미대생 처럼 말이죠.
열심히 하는 것이 순전히 개인 자신의 문제인 것에 반해서, 잘하는 것은 상대적인 문제입니다.
비교 대상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혼자서 무언가를 "잘" 하기 힘듭니다.
물론,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서 평가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 경우도 기준과 개인의 수행을 비교한거죠.
힘 빠지는 이야기 입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고, "잘"해야 한다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어요.
창업을 시작하신 대표님과 사장님들은 보통 각오로 시작하신 것이 아니실 거에요.
그동안 힘들게 일했던 기간이 고스란히 담긴 퇴직금을 내놓은 것일 수도 있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뛰어드시는 분들은 젊음의 시간들을 투자하는 것이죠.
투자한 것들을 생각하면, 비장해지고 각오가 남다를 거에요.
창업은 단순히 남들보다 열심히하고 잘해서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었거나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이 시대의 누군가가 원해야 합니다.
단순한 붕어빵을 팔더라도, 여름보다는 겨울이 낫습니다.
과자를 팔려면 학교 앞이 회사 앞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결국 소비자와 고객, 시장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창업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하는 것은, 24시간 중에 10시간이나 15시간을 들이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퇴근하고 자기계발서적을 읽거나, 컨퍼런스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정해진 시간 안에서, 절대적으로 일정 시간 이상을 들이거나 매주, 매월 , 매일 꾸준히 하면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즉, 성실함은 절대성을 중심으로 평가합니다.
이와 다르게, "잘" 하려면 옆의 동료보다, 채용시장의 경쟁자들 보다, 경쟁사보다 나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탁월함은 상대성을 평가의 특징으로 합니다. 더 나아야 하기 때문에 끝 없는 경쟁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4보다 아이폰12가 나은 것을 보면,
아마 아이폰999 같은게 나온다면 더 나으리라 기대 할 수 있겠습니다.
잘 팔려면, "지금" "여기서" 우리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고흐는 살아 생전에 높은 가격을 받고 본인의 그림을 팔지 못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화가 였고 본인의 적성과 실력에 큰 의심이 없었습니다. 매우 성실하게 작업을 진행했어요. 그러나, 그는 당대에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동생이 아니었다면, 더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요. 창업이란 이런 것입니다.
고흐의 세계관과 실력이 듬뿍 담긴 작품도 사업적으로 실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사업 성공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것입니다.
그럼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시대성입니다.
세상에는 구성원들 모두 열심히하는 스타트업과 소규모 사업체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잘 하는 분들이나 팀도 실은 꽤 많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타고나는 것이나 시대를 읽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수행입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CTO로 있는 회사의 주력 상품은 한 모바일 게임입니다.
대단한 3D 렌더링이나 레이트레이싱은 커녕, 픽셀아트로 꾸민 모바일 게임이지요.
또한, 치열한 실시간 대전 기능이나 멋드러지고 화려한 특수효과를 자랑하지도 않지요.
그럼에도, 약 글로벌 15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면서, 10억 이상의 매출을 낼 수 있었습니다.
대단하거나, 화려하거나, 최고가 되어야 생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당시 게이머분들이 즐겁게 플레이 해주셨을 뿐이죠.
우리의 게임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다면, 가능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단순한 진리입니다.
머물기 좋은 쉼터와 화려한 축제는 다릅니다.
어느 게임사가 화려한 그래픽으로 승부한다면, 누군가는 투박함과 소통을 무기로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창업과 게임사, 개발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풀어나가겠습니다.